<뉴시스>
경찰·지자체 공무원, 근절 의지 있기는 했나
2017년 “최저임금 아닌 ‘농촌 일당’ 지급하라” 첫 판결

 
염전 노예 사건을 제보받은 TV 기자 혜리는 카메라 기자와 섬으로 취재를 떠난다. 하지만, 섬사람들은 언론을 멀리한다. 취재 과정에서 혜리는 의문의 살인사건에 휘말려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로부터 5개월 후,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혜리가 깨어난다. 자칫 묻힐 뻔했던 염전 노예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다. 지난 2016년 3월 3일 개봉한 ‘섬, 사라진 사람들’ 줄거리다. 섬 사라진 사람들은 2014년 전 국민을 경악케했던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장애인 등이 염전에 감금된 채 폭행과 강제 노역을 당해 세간에 충격을 준 사건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섬 노예 사건을 우연히 알게 된 여기자의 호기심에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립된 섬사람들의 미소에 감춰진 악랄한 이중성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는 ‘의도하지 않게’ 지역민들에게 생채기를 남겼다.
 
신안군 주민 A씨는 당시 “시간이 지나면 잊힐 법했던 범죄가 영화로 인해 다시 들춰지게 됐다”며 “영화에 섬이 범죄의 온상인 양 묘사돼 지역사회 이미지 손상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B씨는 “한때 1004(천사)섬(신안군에 1천400개 섬이 있다는 의미)으로 TV 오락프로그램 ‘1박2일’ 단골 촬영지가 됐고 요리 프로그램 ‘삼시세끼’가 촬영돼 개선된 신안의 이미지가 한 편의 영화로 물거품이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잊을만 하면 염전, 어선 종사자들의 인권 유린 사건이 터져 신안의 이미지를 먹칠하고 있다”면서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이 염전 등을 정기적으로 돌며 자세하게 들여다봤으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전남도 관계자는 “영화 개봉으로 신안 주민들이 걱정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자치단체와 지역사회가 잘못된 제도에 대한 감시와 감독, 제도 개선에 힘써야 하는 이유를 다시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영화로 인해 신안과 전남의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길 바란다”며 “지금은 염전 문화가 개선됐고 노동 착취가 근절됐다”고 말했다.
 
염전 노예 피해자 8명은 법원 1심 판결에 따라 염전 업주들로부터 1천500만 원에서 9천여만 원까지 손해배상금을 받았다. 인권단체는 염전 업주가 장애를 악용해 염전에서 노동을 시키고 소금 생산이라는 이득을 취했음에도 3년치의 최저 임금만을 지급한 행위는 피해자들을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은 인권 유린이라고 주장해 정신적 위자료 등을 물라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었다.
 
이후 ‘염전노예’ 사건의 피해 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이 아닌 ‘농촌 일당’을 기준으로 10여 년간의 체불임금을 지급하라고 한 판결도 처음으로 나왔다.
 
그간 법원이 시간당 수천 원에 불과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염전노예들의 노동 가치를 계산해 온 만큼, 당시 판결은 유사 소송을 진행 중이었던 피해자들이 정당한 몫을 되찾는 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5월 광주지법 민사14부(신신호 부장판사)는 염전 노예 피해자 김모씨가 염전주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염전주는 1억6천87만 원을 김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임금은 염전에서 염전주에게 노무를 제공해 온 점에 비춰 ‘농촌일용노임’으로 계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2016년 2월 염전노예 피해자 8명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해 1천500만 원∼9천만 원의 배상액을 산정한 앞선 판례와는 다른 판단이었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농촌일용노임은 농업 종사자의 평균적 소득을 뜻한다.
 
지적장애인인 김 씨는 2003년부터 2014년까지 11년간 전남의 한 염전에서 노예 생활을 해 왔다. 그는 염전주로부터 욕설을 듣거나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구속기소된 염전주는 2016년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장애인 인권단체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의 도움으로 염전주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며 재판부는 “염전은 일이 고되어 도시보다 근로자를 고용하기 어려운 만큼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염전 노예 사건은 2014년 한 피해 장애인이 쓴 편지로 세상에 알려진 뒤 당국의 전수조사 및 경찰의 수사가 이뤄졌고 밝혀진 피해자만 63명에 달했다.
 
한편, ‘염전 노예’ 사건은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사건이며 이를 바로잡으려는 정책적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유엔 장애인 권리협약 위원회는 2014년 9월 17일 오후 스위스 제네바 유엔 인권 최고대표사무소에서 한국 정부가 제출한 제1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심사를 통해 장애인을 노예처럼 폭행하며 일을 시킨 염전 노예 사건은 유엔 고문방지협약에서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인권 침해 정도가 심각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18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유엔 장애인 권리협약 위원회는 또 정신건강증진법이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강제 입원과 같은 비자의적 입원은 협약에 어긋난다고 지적했고, 상법 개정을 통해 장애인도 생명보험에 가입하도록 했으나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한정해 여전히 지적장애인 등에 대한 차별요소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또한, 장애인 권리 보호협약 규정과 상반되는 의학적 손상 정도를 기준으로 한 장애등급제를 철폐하고 인권과 복지 차원에서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검토하도록 권고했다.
 
아울러 건물과 고속버스 등 시외교통 수단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이 여전히 떨어지고, 미혼모들의 장애아동 유기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수화를 공식 언어로 지정할 용의가 없느냐고 반문했다.
 
위원들은 그러나 한국이 장애인 권리협약 비준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모범적으로 각종 법률 제정과 제도의 시행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한국이 장애인 천국과 같다는 얘기도 있다면서 이번 회의는 더 개선할 기회를 찾으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한국대표단 단장을 맡았던 최석영 주제네바대표부 대사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은 장애인권리협약의 채택·발효 과정에서 적극 협조했다”며 “한국 정부가 장애인 복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지만, 아직 사회·문화적 편견과 권리침해가 있는 상황에서 협약 이행에 대한 위원회의 조언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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