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적’ 분간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주로 의존해 정치를 한다. 그는 미국 주류 언론 대부분이 그에게 적대적이며 따라서 그에 관해 ‘가짜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트럼프는 트위터로 대중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한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이하 같음) 트럼프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가 도와 줄 뜻을 밝혔다고 트위터로 말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러시아가 북한 문제와 관련해 도와주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우리와 좋은 관계이며 (북핵 관련) 절차가 진전되고 있다. 서두를 필요가 없으며, 대(對)북한 제재는 상존(尙存)한다! 모든 절차의 끝은 북한의 커다란 혜택 받음과 흥분되는 미래다!”라고 썼다. 트럼프는 최근 부쩍 북한을 치켜세우면서 한국을 상대적으로 홀대한다. 그리고 미국 국채를 1조 달러어치 넘게 보유한 중국에 관세폭탄을 투하했다. 아직 힘이 달리는 데도 불구하고 권위를 세우려고 미국에 강경하게 나갔다가 시진핑 주석이 감당할 수 없는 무역전쟁을 불렀다는 내부 비판이 중국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지난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미국 정보기관의 조사 결과를 부인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옹호했다가 하루 만에 말을 뒤집었다. 보수·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반역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판이 심각하자, 러시아의 선거 개입 사실을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해명은 ‘wouldn't’라고 해야 할 것을 실수로 ‘would’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공화당 하원의원들에게 “내가 어제(16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대선 개입을) 저질렀다(would be)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고 한 것은 ‘러시아가 저지르지 않았다(wouldn't be)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문장은 일종의 이중 부정형으로 했어야 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의 행동이 선거 결과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지만 러시아가 2016년 선거에 개입했다는 정보 당국의 결론을 받아들인다고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트럼프는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푸틴을 믿느냐, 미국 정보기관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자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은 러시아가 개입했다고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아니라고 한다”며 “우리 정보기관을 신뢰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무관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주장했다는 걸 말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처럼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을 적극 옹호하는 모습을 보인 트럼프는 미국 정치권과 언론계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여당인 공화당에서조차 비판이 쏟아졌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disgraceful performance)”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순진함과 독선, 독재자들에 대한 동정심으로 인한 피해는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극적 실수(tragic mistake)”라고 했다.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반역적(treasonous)”이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적국의 범죄 지도자와 공모한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푸틴의 발 아래 누웠다”고 각각 썼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패한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당시 선거 유세에서 “러시아는 의심할 여지 없이 미국의 제1호 지정학적(地政學的) 적(敵)”이라고 말했다. 롬니의 이런 주장에 대해 오바마는 힘이 빠진 러시아보다 이슬람국가(IS) 같은 테러 집단들이 더 뚜렷한 국제적 적(敵)이 아니겠느냐고 반박했다. 6년 전 롬니가 똑 부러지게 밝혔던 미국 공화당의 주적관(主敵觀)이 트럼프에 와서 흔들리다 못해 아예 뒤집히는 모양새다. 미국 CBS 방송의 뉴스 앵커 제프 클로르는 지난 14일 영국을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을 스코틀랜드의 한 골프장에서 인터뷰했다. 이 자리에서 클로르는 이틀 뒤인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푸틴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인 트럼프에게 “현재 세계적으로 미국의 최대 적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트럼프의 답변은 의외였다. 트럼프는 “우리에게 적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유럽연합(EU)이 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무역에서 우리에게 하는 것이 그렇다. 현재 당신은 EU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답변의 연장선상에서 트럼프는 “어떤 측면들에서 러시아는 적이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적이며 확실히 그들은 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최대 적을 꼽아 달라는 기자 요청에 트럼프는 맨 먼저 EU를, 그 다음으로 러시아와 중국을 지목했다. 이것은 미국이 전통적으로 견지해 온 적과 동지의 대상이 정반대인 트럼프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트럼프는 이번 말고도 앞서 여러 차례 EU가 “미국을 이용하기 위해” 형성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트럼프가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이 이처럼 동맹을 적대시하는 것에 분노한 주(駐)에스토니아 미국 대사 제임스 멜빌 주니어는 지난 6월 말 “트럼프와 더 이상 일 못하겠다”며 사임했다. 고위급 외교관이 트럼프의 외교 정책 등에 공개적으로 반발해 사임하기는 이번이 세 번째다. 멜빌 대사는 6월 2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EU가 미국을 이용하고 우리 돼지저금통을 털어간다’거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만큼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내가 떠날 때라는 것을 증명한다”며 사퇴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트럼프의 지난 14일자 발언은 EU와 나토를 비판했던 종래 발언보다 수위가 높다. 미국의 동맹들을 ‘적’으로 칭하는 것은 푸틴을 흡족하게 만드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방 동맹에 균열이 일어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U를 ‘적’이라고 한 트럼프의 발언을 맞받아 도널드 투스크 EU 수반은 15일 트위터에서 “미국과 EU는 가장 친한 친구다. 우리가 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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