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9월중 채권단 확정 후 올 말 회사정리계획안 최종 의결 방침정리계획안 마련 위해선 채권단 의견조율 필수 … 안되면 청산절차진로그룹의 진로가 안개 속에 휩싸였다. 장진호 진로그룹 회장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가 하면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자본과 대한전선 등 국내 기업들이 진로의 향배에 위협을 주고 있다. 진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 법정관리 상태에 놓인 진로는 실사를 통해 청산보다는 존속가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 진로는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그러나 진로의 운명은 자기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외국계와 국내 몇몇 자본에 의해 좌우될 조짐이다. 이런 가운데 전 경영진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부실채권 매입에 나섰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진로의 진로는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다.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가 호시탐탐 진로를 삼키려 하고 있고, 대한전선 등 국내 자본은 진로의 운명을 거머쥘 채권을 대거 사들여 놓은 상태.

◆외국계의 채권매입 목적은

= 진로의 가장 위협적인 외국계 자본은 골드만삭스. 골드만삭스는 진로의 자체적인 외자 유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법정관리로 몰아넣은 장본인. 골드막삭스를 포함한 외국계 자본이 법정관리중인 진로의 정리채권 35%를 확보, 향후 정리계획안 처리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만에 하나 외국계 자본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자동적으로 파산 절차를 밟도록 돼있어 회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진로 로선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특히 아일랜드계로 알려진 외국계 자본이 전략적으로 시중가보다 높은 가격을 주고 채권 매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다른 외국계 자본의 기업사냥 표적이 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아일랜드계 외국계 자본이 JP모건 창구를 통해 국내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진로의 정리채권 923억원어치를 매입했다.

은행별 채권 규모는 △경남은행 213억원 △부산은행 200억원 △제주은행 510억원 등이다. 이들 외국계 자본이 매입한 채권가격은 액면가의 60% 수준으로, 최근 진로 채권이 40∼45%에서 거래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시중가보다 상당히 높은 가격에 인수한 것이다. 특히 골드만 삭스는 진로의 3천억원대에 이르는 채권을 확보해놓고 있다. 이밖에 또 다른외국계는 1천억원, 여기에 이번에 외국계 자본이 확보한 채권 923억원을 합할 경우 외국계 자본이 확보한 진로의 전체 정리채권 규모는 35.16%인 4천923억원에 달한다. 현행 법정관리 절차에 따르면 담보채권의 25%이상이거나 정리채권의 34%이상일 경우 정리계획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다.그렇다면 외국계가 왜 부실채권 인수에 집착을 할까. 금융권에 따르면, 외국계의 경우 경영권을 인수해 비싼 가격에 되팔려는 의도가 다분히 내포돼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진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진호 회장은 아직도 경영권 방어 중

= 진로의 옛 경영진들은 자구계획을 통해 조달된 자금을 재무구조 개선보다는 자기 채권 및 백화점 매입자금으로 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원 진로 법정관리인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지방법원 제3파산부에 제출한 ‘관리인 보고서’에 따르면 진로는 화의기간중인 지난 2002년 2월 얼라이드 도멕(AD)사와 합작 설립한 진로발렌타인스에 위스키 사업에 관한 권리와 자산을 1억2천만달러(약 1천400억원)에 양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매각은 자구계획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진로는 자구계획을 통해 조달된 자금을 화의채무의 상환에 사용했어야만 했다. 사용내역은 회사의 자기채권 매입에 1천194억원, 아크리스백화점 매입에 100억원을 사용하는 등 결과적으로 회사의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방향으로 투자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옛 경영인들이 회사 자기 채권 매입에 나선 이유가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 98년 9월 진로가 계열회사에 지원한 자금 규모는 출자금 1천208억원, 대여금 1조3천262억원, 지급보증 7천482억원 등 모두 2조1천952억원 등이다. 출자 및 대여금 중 1조4천억원은 회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전례에도 불구, 진로가 부실채권 매입에 나선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일각에선 인수를 노린 외국계와 국내기업들의 틈바구니에서 진로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을 것이란 관측이다.

◆국내 기업 군침

= 골드만 삭스 못지 않게 진로의 진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회사로는 대한전선이 꼽히고 있다. 특히 대한전선이 골드만삭스에 이어 2대 채권자로 급부상했다. 대한전선은 지난 6월10일 1차로 액면가가 793억원인 진로 채권을 640억원에 산 데 있어 한달 뒤인 7월10일 2차로 1천802억원어치의 채권을 1천750억원에 추가 매입했다. 2개월 새 무려 2천595억원어치를 사들인 셈이다. 대한전선은 주로 담보부 채권을 사들인 것이 특징. 진로가 발행한 담보부채권이 약 3천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담보부채권에 관한 한 대한전선이 최대 채권자이다. 반면 골드만삭스의 진로 채권 보유액은 3천3백억원이나 담보부채권은 500억원선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대한전선 측은 “투자 목적일 뿐 진로 인수 의사는 없다”고 말했다. 담보부채권을 보유한 대한전선은 진로에 대해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정리계획안을 통과시키려면 담보부채권자의 4분의3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한전선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최대 채권자로서 진로를 법정관리로 몰아넣었던 골드만삭스도 대한전선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법원은 앞으로 3∼4차례 관계인(채권단) 집회를 더 열어 채권단 명단과 채권규모 등을 확정한 뒤 회사정리계획안을 의결하게 된다. 법원은 당초 이날 채권단과 채권액 규모를 확정할 예정이었으나 채권규모가 큰데다 채권자 파악이 쉽지 않아 한달 뒤인 오는 9월24일 관계인 집회에서 이를 확정키로 했다. 채권액 확정에 이어 오는 12월12일까지 진로 측으로부터 회사정리계획안을 넘겨받아 심의를 거친 뒤 정리계획안을 최종 의결하게 된다. 그러나 현행법상 법정관리기업의 정리계획안은 무담보채권의 3분의2(채권액 기준) 또는 담보부채권의 4분의3 이상으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채권단간 의견조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리계획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진로는 청산절차를 밟게 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힘으로 밀어붙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대한전선과 외국계 진로 등의 합종연횡이 불가피할 예정이며, 어떤 밑그림이 그려질지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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