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계약해지로 협력업체에 피해” 1심서 배상 판결“재판결과 승복 못한다” 배상금 지불 않고 버티다 수모지난 9월30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저동 쌍용정보통신(사장 강복수) 본사 12층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사장실 집기류에 압류 딱지를 붙이려는 법원 집행관과 이를 저지하려는 직원들간에 언성이 높아진 것이다. 자칫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질 뻔한 이날 상황은 쌍용정보통신과 이 회사의 한 하청업체간 손해배상 소송에서 쌍용이 패소한데서 비롯됐다. 상식적으로 손배소에서 패소하게 되면 재판부가 판결한 배상액을 지급하면 될 일. 어쩌다 사장실에 덕지덕지 압류 딱지가 붙게 됐을까.재판부가 지급을 명령한 배상액이 오고 가면 소송의 모든 절차가 끝나기 마련이다. 만일 패소한 당사자가 재판부의 판결 내용을 고의로 따르지 않거나 배상금 지급 능력이 없을 때 승소한 이는 상대의 재산에 대해 압류 신청을 할 수 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법원 집행관의 입회 아래 압류를 집행하게 된다.서울지법 민사합의 30부(재판장 김동윤 부장판사)가 판결한 쌍용의 배상 부담액은 9,800여만원. 쌍용의 한 관계자는 “돈이 없어 배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며 “재판 결과에 승복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강복수 사장 사무실의 수난을 불러온 이 사건은 지난 2001년 1월 쌍용이 씨쓰리아이티(C3IT)라는 한 벤처기업과 하도급계약을 맺은 데서 시작됐다. 씨쓰리가 맡은 일은 대한광업진흥공사 자원정보센터의 시스템 구축 중 초기단계인 자료입력(GIS). 광물 등 자원 지도를 시스템화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입력하는 업무다. 이 하도급계약은 원 발주처인 광업진흥공사가 쌍용과 용역계약을 맺은 것을 쌍용이 다시 씨쓰리에 하청을 준 것이다.씨쓰리는 쌍용과 계약을 맺은 직후 김모 과장 등 직원 9명을 서울 광업진흥공사 본사에 파견했다. 계약상으로는 당초 올해 12월말까지 약 3년간 하도급 업무를 수행하기로 했으나 씨쓰리는 지난해 1월 쌍용으로부터 계약 파기를 요구받게 된다.

비슷한 시기 씨쓰리의 파견 직원이었던 김모 과장이 돌연 퇴사한 것이 구실로 작용했다. 쌍용이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 더 이상 일을 하기 어렵겠다”며 문제삼은 것. 이때 쌍용은 “광업진흥공사에서 김모 과장이 없으면 우리와 원계약마저 파기하겠다고 말해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한 직원의 퇴사가 훗날 소송의 결정적 원인과 함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됐다는 사실이다.씨쓰리는 쌍용의 요구에 따라 지난해 2월초 하도급계약을 중도 파기하고 광업진흥공사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그러나 2개월 뒤인 2002년 4월, 씨쓰리는 김모 과장을 포함한 일부 직원들이 쌍용의 관계사로 보이는 K사에 입사한 사실을 알게 된다. 김 과장 등은 이미 쌍용측 관계자로서 광업진흥공사에 출근하고 있었다.씨쓰리는 쌍용이 자사 인력을 끌어내고 이를 구실로 계약 파기를 요구했다는 결론에 이르자 쌍용을 상대로 2002년 7월, 1억6,000여만원대 소송을 제기했다.

씨쓰리는 소장에서 “쌍용이 부당하게 회사 인력을 빼내고 이를 구실로 계약을 파기, 잔여 계약기간의 대금에 해당하는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쌍용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쌍용은 “김모 과장 등의 퇴직을 종용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며 광업진흥공사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채용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이 소송의 본질은 쌍용이 부당하게 씨쓰리와 하도급계약을 해지했느냐 여부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씨쓰리는 당연히 계약 해지의 배경이 된 인력 이동의 부당성을 집중 공략했고 쌍용은 이에 대한 방어에 전력을 쏟았다.1년을 넘기던 송사는 막판에 가서야 본질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씨쓰리는 계약 해지의 직접적 원인이 됐던 “핵심인력 유출시 계약을 해지한다”는 광업진흥공사의 통보 진위를 가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증인으로 출석한 광업진흥공사 관계자로부터 “구두상 통보한 적은 있지만 시행할 생각은 없었으며 쌍용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는 증언을 받아냈다.

결론적으로 쌍용이 ‘오버액션’을 취했다는 정황이 제기됐고 재판부는 이를 중요한 증거로 받아들였다. 9월초에 있었던 판결에서 씨쓰리의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 인력 이동의 조작은 규명할 수 없으나 쌍용이 부당하게 계약을 해지해 씨쓰리에 손해를 끼친 사실은 인정된다는 것. 재판부는 소송액 중 일부를 감하고 9,800여만원대 배상판결을 내렸다.씨쓰리와 쌍용의 대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쌍용이 판결대로 손해배상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씨쓰리는 쌍용의 재산을 압류하기에 이르렀다. 씨쓰리는 법원의 허락을 받아 쌍용 본사 12층 강복수 사장실 및 임원 사무실의 집기에 모조리 압류 딱지를 붙여버렸다.

물론 사장실을 지키려는 쌍용 직원들의 만류와 저지가 있었으나 법원 집행관을 대동한 씨쓰리의 기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쌍용은 사장실 내에 덕지덕지 붙은 압류 딱지를 보며 어이없다는 반응. 쌍용의 한 관계자는 “정말 값나가는 재산은 따로 있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한 처사”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관계자는 또 “계약 해지의 건은 씨쓰리의 재무상황이 갑자기 열악해져 일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반박했다.쌍용은 재판부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 9월 19일 서울고법에 항고를 제기한 상태다.

사장실 집기 경매까진 안갈듯

사장실 물건들이 경매 대상이 된 쌍용정보통신 초유의 사태에서 또 다른 관심사는 압류 대상 물품이 실제로 경매될 것이냐 여부다. 10월 중순 현재까지는 사장실 집기들은 일단 씨쓰리의 가소유물로 구분되기는 하나 이를 경매처분할 수 없다. 쌍용이 이를 막기 위해 법적 수단을 강구한 결과다.쌍용은 9월19일 항소를 제기하며 ‘강제집행정지신청’을 냈다. 씨쓰리의 강제 압류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압류를 막지 못한 이유는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인 시점이 압류 딱지를 붙인 이후였기 때문. 이 경우 이미 선행된 채권자의 압류는 유효하지만 채무자의 신청 또한 유효하기 때문에 경매까지는 가지 않는다. 압류 물품의 소유권은 항소에 대한 최종 판결에 따라 좌우된다. 쌍용은 항소 제기에서부터 판결까지 기간이 최소 6개월에서 1년여가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강복수 사장실은 길게는 1년이 넘도록 압류 딱지가 떨어질 일이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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