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 중 엔진 화재…늑장 대응 논란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주행 중인 BMW 520d에서 또 화재가 발생했다. 올해 들어 6번째다. BMW코리아는 자발적으로 리콜을 결정하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지만 이용자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차주들은 당장 서비스센터에 가도 수리를 받을 수 없는 형편이다. 비싼 차 값을 지불하고도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짊어져야 하는 꼴이다.

 
정부·업계, 배기가스 재순환장치 결함 추정…손해배상 소송도
리콜 결정했지만 부품·정비 시설·인력난에 소비자들 ‘불만’

 
국토교통부는 BMW 520d 화재 원인을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결함으로 고온의 배기가스가 냉각되지 않은 상태에서 흡기다기관(매니폴드·manifold)에 유입, 구멍을 발생시키고, 위에 장착된 엔진커버 등에 발화돼 화재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GR은 디젤자동차의 질소산화물 저감을 위해 배기가스의 일부 흡기다기관으로 재순환시키는 장치다.

 
10만6000여 대 리콜 실시


 
통상 배기가스는 400도 이상의 고온 상태이기 때문에 EGR을 통과할 때 쿨러(냉각기)를 통해 열을 식힌다. 하지만 누수 등 쿨러 결함으로 냉각 기능을 상실해 배기가스가 고온을 유지한 채 엔진으로 다시 유입될 때 통로인 흡기다기관 등에서 과열로 불이 붙을 수 있다.

BMW에서 국토부에 제출한 리콜계획서에 따르면 BMW는 27일부터 해당 차량 전체에 대해 긴급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8월 중순부터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 모듈 개선품 교체를 본격 진행할 예정이다.

BMW 520d는 올들어 6월까지 국내에서 1만5369대가 팔렸다. 지난 2월 1945대에 이어 3월 3919대, 4월 3407대 5월 2431대를 기록한 데 이어 6월에는 963대가 판매됐다. 이는 지난해 BMW5 시리즈의 연간 판매량인 2만4220대의 63%에 육박한다.

특히 520d는 ‘강남 쏘나타’라 불리며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로 꼽힌다. 한국은 BMW 520d가 독일을 포함, 전 세계에서 4~5번째 많이 팔린 곳이다.

그러나 관련 부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고, 정비센터 시설과 인력이 부족해 리콜 발표 이후에도 당장 부품 교체나 수리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의 불안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정비시설 부족도 문제다. BMW를 비롯한 대부분의 수입차 업체들이 정비센터 부족으로 수리 기간이 국산 차에 비해 오래 걸리는 실정이다. 불안을 느낀 소비자들이 정비센터에 한꺼번에 몰릴 경우 자칫 ‘정비 대란’이 빚어질 수도 있다.

피해 차주들은  반복되는 사고에도 제조사와 정부가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피해 차주는 “무서워서 못 타겠다”며 “목 돈을 들여 산 차가 목숨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니 겁이 난다”고 밝혔다.

일부 피해자들은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해당 차종의 연이은 화재 사고가 2015년부터 불거졌는데도 BMW코리아는 신속한 원인 규명 조사와 부품 조달 의무를 게을리해 사태를 키웠다”면서 “차주들에게 정신적, 재산상 피해를 끼쳐 이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 변호사에 따르면 차량 소유주들은 잇딴 화재 소식에 공포감과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제작사에서 차량의 결함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원인 미상이라는 식의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해 차주들의 정신적 피해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불이 난 차량 운전자의 경우, 당시 상황에 대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잊을 만하면 화재 사고 발생

 
한편 BMW 520d는 지난 23일 오전 0시 10분 인천시 남동구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장수IC로부터 일산 방면으로 1㎞ 떨어진 지점을 주행하던 BMW 520d 승용차에서 불이 나 20여 분 만에 진화됐다. 차주인 문모(49)씨는 “가속 페달을 밟았는데 말을 듣지 않았고 보닛에서 연기가 나더니 불이 확 붙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5일에는 인천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공항신도시 분기점 인근에서 발생했다. 같은 달 15일에도 경북 영주시 장수면 중앙고속도로 춘천 방향 영주 휴게소 근처를 달리던 2014년식 BMW 승용차 엔진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 19일 오후 6시 34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한 상가 앞 도로에서 주차된 BMW 520d 승용차에서도 불이 났다.

앞서 5월 4일 충남 당진시 서해안 고속도로 목포 방향으로 달리던 2015년식 승용차에서, 또 같은 달 15일 경기도 광주시 제2영동고속도로 곤지암 3터널 내부를 달리던 중 차량에서 같은 방식으로 불이 났다.

BMW가 국토교통부 산하 교통안전공단에 낸 자체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8개월 동안 발생한 BMW 화재 20여 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9건이 520d 모델로 나타났다. 이 중 가속페달에 문제가 생긴 뒤 불이 났다는 사고가 6건이다. 하지만 BMW 측은 9건 모두 화재 원인은 ‘미상’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문제가 된 520d의 디젤차 판매 중지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내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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