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 자체 데이터 요금제 내놓으며 도입 효과 ↓

<사진-뉴시스>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정부가 보편요금제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통사들이 데이터 사용량을 늘린 새로운 저가 통신 요금제를 먼저 내놓으면서 보편요금제가 ‘뒷북 요금제’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통사들이 자발적으로 요금제를 손질한 만큼 법안 도입의 실효성이 낮아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회에서도 정부가 보편요금제를 통해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의가 오가면서 국회 법안 통과가 불투명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만약 보편요금제를 추진하지 않았다면 기업들 스스로가 요금제를 개편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보편요금제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회 “도입 불필요” vs 정부 “도입 필요”, 다른 견해로 마찰
통신업계 “저가요금제가 보편요금제보다 낫다” 뒷북 요금제?


보편요금제 도입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월 2만 원대 요금제 출시를 의무화하는 보편요금제 도입은 아직 국회라는 관문을 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보편요금제 도입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시장의 자율경쟁을 막는다는 논리로 이통사 등 업계가 반발해 왔다.

정부가 보편요금제를 밀어붙인 이유는 이통사들의 경쟁이 고가요금제에만 치중돼 상대적으로 저가요금제에서의 혜택은 늘지 않는 등 시장의 경쟁이 제한적이고 이용자 차별이 심화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편요금제는 월 2만 원에 데이터 1기가바이트(GB)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해당 법안은 지난 5월 11일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통과하고 6월 1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됨에 따라 현재 국회에 제출된 상황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정부는 2년마다 보편요금제의 가격 및 혜택을 설정하는 권한을 갖게 된다.

“보편요금제 실효성 의문”

그러나 이통사들이 최근 자발적으로 저가 요금제 혜택을 강화하고 나서면서 정부의 법안 도입 명분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최근 저가 요금제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특히 데이터 사용량이 적은 어르신들이 주로 찾는다. 뒤늦게 보편요금제가 도입돼도 이미 저가요금제에 가입한 고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지 의문이다. 보편요금제가 아닌 뒷북요금제라고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지난 18일 모든 구간의 기본 데이터 제공량을 확대한 신규 요금제 ‘T플랜’을 내놨다. 이 요금제는 ▲스몰(1.2GB, 3만3000원) ▲미디엄(4GB, 5만 원) ▲라지(100GB, 6만9000원) ▲패밀리(150GB, 7만9000원) ▲인피니티(무제한, 10만 원)으로 구성돼 있다. 스몰 요금제는 선택약정할인(25%)을 받을 경우 2만 원 대에 데이터 1.2GB를 제공한다. 보편요금제와 비슷한 수준이다.

KT는 지난 5월 고객들의 데이터 이용 트렌드를 반영한 요금제 ‘데이터ON’을 내놨다. 이 요금제는 ▲베이직(1GB, 3만3000원) ▲톡(3GB, 4만9000원) ▲비디오(100GB, 6만9000원) ▲프리미엄(무제한, 8만9000원)이다. 베이직 요금제 역시 선택약정할인 시 월 2만 원대에 1GB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역시 보편요금제와 비슷하다.

LG유플러스는 지난 2월 ‘속도·용량 걱정 없는 데이터 요금제’를 내놨다. 월 8만8000원으로 무제한 LTE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요금제는 이통 3사 중 가장 저렴한 가격에 무제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하지만 LG유플러스는 아직 중저가 구간 요금제를 개편하지 않은 만큼 월 3만 원대 요금제에서 경쟁사 대비 가장 적은 데이터(300MB)를 제공하고 있다.

법안 국회 통과 가능할까

그러나 보편요금제의 또 다른 문제는 법을 통과시켜야 할 국회가 이 제도가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야당은 대체적으로 이 제도에 대해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고, 여당 내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국회는 보편요금제 도입보다 자급제 활성화에 더 주목하고 있다. 여당은 “실질적으로 통신비 인하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단말 자급제 활성화가 더 의미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면서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열린 알뜰폰 활성화 토론회에서 보편요금제에 대한 우려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 의원은 “기본적으로 정부 정책이 요금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쟁 활성화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통사들의 요금제 개편과 별개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보편요금제 법안이 통과될 경우 정부가 통신비를 조정할 법적 근거가 생긴다. 2년마다 요금제 기준도 재검토하게 돼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이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여전히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법안을 통해 보편요금제를 추진하지 않았으면 이통사들이 자발적으로 요금제를 개편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성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국장은 지난 22일 “현재 시장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면서도 “보편요금제를 추진하지 않았다면 기업이 자동적으로 (요금제 개편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고 본다. 보편요금제 도입 필요성이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정부가 보편요금제를 추진했기에 통신사들이 자발적으로 저가 요금제 개편에 나선 것이라고 판단하고 법안의 국회 통과에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회(이하 과방위, 위원장 노웅래)가 지난 25일 후반기 원 구성 후 첫 회의를 가지면서 보편요금제 도입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이날 보편요금제 도입과 관련해 정부를 지지하는 위원은 없었다.

지경부 차관 시절 정보통신 업무를 담당했던 윤상직 위원(자유한국당)은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통신사 주가가 하락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ISD(투자자-국가 간 국제중재 제도)까지 번질 수 있다. 정부가 통신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적 견해를 드러냈다.

같은 당의 김성태 위원 역시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은 기업 팔 비틀듯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시장 경제 원리를 무시한 것이다. 보편요금제 도입은 모순으로 이것이 혁신성장 성과인가”라고 지적했다.

보편요금제 등 정부의 요금정책에 대한 과방위원들의 입장은 10월 국정감사에서 명확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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