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시작해도 뺏기면 끝…뿌리내린 기술 탈취

<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스타트업 베끼기’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하는 해묵은 이슈다. 최근에도 농촌진흥청이 국내 축산 분야 스타트업이 개발한 것과 유사한 제품을 내놓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농진청과 A 민간기업 제품은 가축 신체활동 정보와 온도 등을 측정하는 기술과 제품 크기도 유사하다. 이에 대해 농진청 측은 민간 기업과 자체 연구팀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A 기업 측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 농진청 측 “데이터 전송 기술 방식과 경제성 측면에서 달라”
- 특허 분쟁 경험한 스타트업 비율 70%… 갈수록 증가 추세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 농업 관련 연구가 활발한 가운데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은 지난 19일 국내 연구진이 가축 생체 정보 수집 장치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제품은 7.8cm 크기의 ‘반추위 삽입형 건강 정보 수집 장치(바이오 캡슐)’로 소의 건강 상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장치다.

알약 모양의 센서(감지기)를 별도의 기구를 이용해 소의 입으로 넣어주면 첫 번째 위에 자리 잡은 채 활동량과 체온 등 생체 정보를 수집한다. 수집된 정보는 인공지능 기술로 분석된 뒤 농장주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무선으로 전송되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전송된 빅데이터를 확인한 농장주는 소의 발정과 분만 시기, 질병 여부 등을 예측할 수 있다. 농진청은 가축 생체 정보 수집 장치의 산업체 기술 이전과 특허 출원 등을 마쳤으며 오는 8월부터 현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소의 체온 측정하는 캡슐
누구의 아이디어?
 


하지만 최근 농진청에서 개발한 제품이 지난 2015년 스타트업 A기업이 내놓은 제품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이 경구형 바이오 캡슐은 지난 2015년 A기업에서 국내 최초로 경구 투여 동물 의료기기 인증을 획득한 ‘라이브케어’ 제품을 개발하면서 보급되기 시작했다.

라이브케어는 농진청이 개발한 제품과 같이 온도 및 pH(물의 산성 및 알칼리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 측정 센서가 달린 바이오 캡슐을 통해 소의 체온을 측정한다.

이 제품을 만드는 데 100억 원이 넘는 연구비를 투자했던 A기업은 지난해 8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2017 4차 산업혁명 파워코리아 대전’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경구형 바이오 캡슐 시장을 개척 중이다.

이와 관련해 A기업 측은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A기업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검토가 더 필요한 상태로 아직 농진청 측이 우리 기술을 베꼈는지 여부에 대한 확답을 줄 단계는 아니다”며 “기술이 유사한 점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회의를 진행 중이다.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아직”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농진청 측은 A기업의 ‘라이브케어’는 소의 위에 안착한 캡슐이 체온과 pH를 측정하고 농진청에서 개발한 바이오 캡슐은 체온과 활동량 변화를 측정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됐다고 해명했다.

이들은 또 하나의 차이점으로 “바이오 캡슐은 체온과 활동량을 동시에 측정한 정보를 바탕으로 소의 신체 상태 변화를 판단할 수 있는 ‘복합적 알고리즘’을 개발한 것”이라고 전했다.
특이 행동과 함께 나타나는 신체 변화를 미리 파악할 수 있게 돼 발정, 질병, 분만 시기 예측 정확도를 70% 수준까지 높여 기존 육안 관찰 방식 정확도 40%보다 우수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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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진청 관계자는 데이터 전송 기술 방식과 경제성 측면에서도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데이터 전송 기술 방식의 경우 통신비용이 발생(1마리당 통신 사용료=1500원/월)하는 ‘라이브케어’의 로라(LoRa)와 달리 ‘와이파이(Wifi)’ 사용으로 기존 인터넷망을 활용하면 비용 발생이 전혀 없다”며 “경제성 측면에서도 농진청 바이오 캡슐은 라이브케어 대비 55%가량 비용을 절감하는 등 축산 농가의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도록 개발됐다”라고 했다.
 

비용 부담 큰 법적 대응
주저하는 현실

 

국내 스타트업은 기술을 탈취당하는 것에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간한 ‘국내외 스타트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특허 분쟁을 경험한 스타트업 비율은 70%에 달하며 응답자의 79%가 이런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B업체는 지난해 한 대형 포털사이트 C사를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및 불공정거래 혐의로 공정위 서울사무소에 신고한 바 있다.

B 업체는 PC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이용하는 ‘관심사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B업체를 운영한다. 이용자가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고 관심 있는 정보만 선별해 받는 서비스다.

B업체는 C사가 지난해 4월 출시한 ‘디스코’가 자사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기술을 그대로 도용해 사업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B업체가 개발한 관심사 기반 인공지능(AI) 추천 큐레이션 서비스를 디스코가 따라 했다는 것.

아울러 이 업체는 개인화된 홈 피드(Home Feed)에서 선택한 관심사에 부합하는 콘텐츠 추천, 회원 가입 시 관심사 선택, 비슷한 관심사 사용자를 추천해 팔로우 유도 등의 사용자 환경·경험(UI·UX)과 핵심기능 등을 유사점으로 들었다.

B업체 측은 “당시 C사 의장을 만나 서비스 특징 등을 설명하고 투자를 제안했지만 C사는 이를 거부했다”며 “우리 월 서비스 실사용자(MAU)가 1000만 명을 넘었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자 C사가 동일 서비스를 기획해 ‘디스코’를 런칭했다”라고 주장했다.

신용카드 본인인증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인 한국 NFC는 지난 2016년부터 D신용평가사와 제휴해 1년여간 아이디어 및 기술 공유 계약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A사는 계약 이행을 해지하고 핵심 노하우만 도용한 채 사업을 개시했다. 이후 한국 NFC는 A사와의 계약 해지로 시기를 놓쳐 다른 거래처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법적 대응은 비용 부담이 크고 경영상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고 호소했다. 구태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 단장은 “스타트업과 대기업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제휴나 협력이지만 사실상 하도급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술 유용 문제가 빈번히 발생할 수 있다”며 “스타트업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대기업과의 거래 기회 자체를 뺏길 수 있기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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