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골프 대회는 4일 동안 18홀을 4라운드로 도는데, 1, 2라운드를 마치고 성적이 좋지 못한 선수는 탈락하게 된다. 이것을 컷오프라고 한다. 골프대회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른데 미국 PGA의 컷오프 기준은 2라운드 종료시점에서 선두와 10타 차가 나는 선수, 상위 70위에 들지 못한 선수는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없다.
 
야구에서도 컷오프라는 용어를 쓰는데 외야수가 던진 공을 중간에서 잡아채는 경우를 말한다. 패션 쪽에서는 바지 끝단을 잘라버리는 것을 컷오프라고 한단다. 정치에서도 바지 끝단 잘리듯 잘려 나가는 컷오프가 있다.
 
정치권에서 컷오프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공천 배제와 예비 경선. 지난 2016년 2월,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정부의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시도에 맞서 필리버스터를 했다. 아홉 번째 발언자로 나선 강기정 의원은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필리버스터를 이어 나갔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주도한 총선공천에서 바지 끝단처럼 잘려 나가며 공천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결국 강기정은 그해 4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지 못했고,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광주시장에 출마했지만 경선에 패하면서 현재까지도 야인으로 있다.
 
오늘 8월에 치러질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지난 26일 당대표 후보를 3인으로 압축하는 예비경선을 치렀다. 8명의 후보 가운데 김진표, 이해찬, 송영길 후보가 본선인 8월 전당대회에 뛸 자격을 얻었다.
 
이종걸, 김두관, 최재성, 박범계, 이인영 후보는 바지 끝단 신세가 되었다. 이해찬, 김진표 후보가 범친문 표를 양분하고 송영길 후보가 유일한 호남 후보로 두각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송영길과 이종걸은 2016년 전당대회에서와는 반대의 결과를 얻었다. 당시에는 송영길이 본인 주장으로는 1표 차로 컷오프를 당했다.
 
박범계가 전당대회에 나온다고 했을 때 격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최고위원에 출마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다. 박범계는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체급을 키우는 소득을 얻었다. 안희정 이후 충청권 대표주자로 커 나갈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종걸도 출마를 두고 막판까지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이해찬의 출마로 “당선 가능성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하면서도 출마를 했지만, 친문진영에게 압도적으로 기운 중앙위원 구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원내대표를 하면서 쌓은 문 대통령과의 악연에 대해 사과한 것이 유일한 소득이라고 하겠다.
 
최재성은 이해찬의 출마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이 출마하지 않았다면 갈 곳 없는 친문표가 그에게 쏠릴 수도 있었다. 이인영은 586 정치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가진 인물이다.
 
이인영을 비롯한 586세대는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훈련된 까닭에 쉽게 정치권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이후 별다른 정치적 성취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김두관은 2012년 대선 출마 당시에 보여줬던 몇 가지 과오를 청산하지 못하면 정치적 앞날이 순탄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8월 25일에 열릴 전당대회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선두주자로 평가되는 이해찬이 건강에 대한 염려, 강성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8월 3일 제주도에서 시작해 25일 서울에서 끝나는 경선기간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 예비경선이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당원의 선택권을 제한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예비경선을 거치면서 당원, 대의원들은 컷오프 당한 5명의 후보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맞춤복 재단사가 바지 끝단을 잘라 내는 것은 옷을 입을 주인의 치수를 재고 허락을 얻은 뒤의 일이다. 절차적 편리를 위해 정해진 치수에 몸을 맞추는 기성복 정치로는 주인인 당원이 만족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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