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실익적은 전경련 회장직 수락 꺼려 재계비자금 사건 수사 확대 등으로 공멸감 고조전경련 회장 후보 물망에 오른 빅3 회장들은 재계의 요청에도 손사래치고 있다.재계의 대변자 ‘전경련’이 휘청거리고 있다. 대선자금 유탄을 맞은 손길승 회장이 회장직을 사퇴함에 따라 공석중인 회장 추대에 전경련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계 회장 중 누구 하나 선뜻 전경련 회장을 맡으려 하지 않고 있어 ‘전경련 무용론’까지 급부상 중이다. 재계 일각에선 “재계를 대변하는 전경련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선 삼성, 현대, LG그룹 등 ‘빅3’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삼성, 현대차, LG 등 빅3 재계 회장들은 재계 여론에도 불구하고 전경련 회장으로 선뜻 나서려 하지 않고 있다.

전경련 회장직을 맡아왔던 손길승 SK회장이 지난 9월 30일 전경련 회장을 공식 사퇴한 뒤 물망에 오른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구본무 LG회장, 이건희 삼성회장 등 빅3 회장 중에서 한 사람을 전경련 회장에 추대하려 했으나 빅3 회장들이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이들 빅3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거절하는 이유는 제 각각이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실익이 적고 할 일이 많은 전경련 회장은 맡지 않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현대차그룹은 “회장의 의중을 파악하기도 어려우며, (회장이)그룹 안팎으로 챙겨야 할 현안이 많아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어 전경련 회장직 수락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 ”고 전했다. 이건희 삼성회장은 그룹 일 이외에 외부활동 등에 거의 나선 적이 없는 데다 회장후보로 물망에 오를 때마다 거절했었다. 당초 이건희 회장은 그룹 계열사 사장인 현명관 부회장을 전경련의 상근부회장으로 앉힐 때 ‘전경련 회장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기도 했다.

이와 관련, 삼성그룹 관계자는 “전경련 회장후보에 이건희 회장이 물망에 오르긴 했으나 전경련 회장직을 수락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구본무 LG회장도 대외활동을 자제하기로 유명하다. 구회장의 대외직함 중 외부활동 직함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환경위원회 위원장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구회장이 전경련회장 후보로도 강력히 떠오르기도 했다. 삼성출신의 현명관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의중을 전달해 구본무 회장을 전경련 회장에 나서도록 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렇듯 재계 빅3 회장들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으려 하지 않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전경련 회장이 정부와 산적한 현안을 풀어야 하는데 현상황에서 돌아오는 이익이 전무하다는 것 때문. 우선 재벌 개혁을 모토로 내건 현정부와의 협상도 전경련 회장에겐 부담이다.

정부와 협상채널을 가동해도 돌아올 대답이 뻔한 상황에서 전경련 회장직을 수락할 리는 만무하다는 게 재계의 시각.아주 극단적인 예지만, 이번에 회장 대행으로 추대된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이 회장대행조차 거절하는 이유가 빅3회장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경련은 지난 9월 30일 회장단 회의에서 적임자를 찾지 못하자 관례에 따라 최고 연장자인 강회장을 회장대행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건강상의 이유로 아직까지 고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강회장은 27년생으로 고령의 나이임에도 경영 일선에서 동아제약을 진두지휘할 만큼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어 건강상의 이유만으로 거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고사 배경에는 힘없는 회장을 맡지 않겠다는 의중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령의 나이 탓도 있지만 강회장이 회장대행을 맡는다 해도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시되기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는 게 재계 한켠의 분석이다.강회장은 4년전 김우중 대우 전 회장에 이어 회장 대행을 맡았던 김각중 경방 회장의 선례를 봐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당시에도 현재 이건희 회장 등 주요 그룹회장들이 외면하는 상황에서 김각중 회장은 혼자서 전경련을 챙기며 고군분투했었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선 강회장이 약체 회장이 될 게 뻔한 회장대행을 맡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따라서 손길승 SK회장의 돌연사퇴로 빚어진 전경련 회장 공석사태는 장기화될 조짐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재계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힘있는 빅3 회장 중에서 나서는 사람이 없어 해법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검찰의 대선 불법자금 수사가 SK에서 삼성 LG 현대차 롯데 등 5대 기업으로 확대되는 데다 중견 기업까지 수사선상에 오르고 있어 재계의 단일한 체제 정비가 시급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인 L사 관계자는 “선거 때 기업에서 자금을 전달한 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검찰에서 여느 역대정권보다 강도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어 누가 유탄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재계의 입장을 전달하는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돈을 주고도 벌을 받아야 하는 악순환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가 재계라는 것이다. 이런 속사정을 정치권뿐만 아니라 검찰도 알고 있으며, 뻔히 알면서도 검찰의 수사 강도가 높아지고 있어 피해를 보는 기업들이 늘어난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결국 이 피해는 경제의 실물주체인 기업의 체력 약화로 이어지고, 기업의 경제활동 위축은 다시 국가경제 하강이라는 나락으로 빠질 공산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또 검찰수사는 해당 기업의 신인도 하락을 불러오고, 기업신인도 하락은 곧바로 국가신인도 하락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재계는 이런 위기의식을 안고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는 단일한 채널을 마련해 정부와 각계 요로에 선의의 피해를 줄이도록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는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빅3 회장들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지 않는 등 현 상황을 외면하고 있어 재계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S사 관계자는 “이럴 바엔 전경련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경총과 통합하는 방안을 고려하거나 빅3 회장들 중 전경련 회장으로 재추대하는 방안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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