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그룹이 열린우리당의 핵심 실세 중의 한 사람인 이강철 외부인사 영입 추진위원회 단장 겸 대구시지부장의 요청으로 대구 지역에 있는 삼성 상용차 부품업체들을 지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구는 열린우리당이 다가오는 4·15 총선에서 영남 공략 거점 지역으로 삼는 곳 중 하나로서 이강철 지부장은 대구 경북 승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부품업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지역 중소기업인이나 노동자에게 좋을 수도 있지만, 그 동안 전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다가 이강철이라는 실세 정치인에 의해 전격적으로 해결됐다는 점이 관심을 끈다.삼성 상용차는 삼성그룹에서 르노에 넘어간 삼성승용차 법인과는 별개로 만들어진 회사로서 결국 회사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부품업체들이 큰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윤상정 전 삼성 상용차 협력업체 생존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사무국장은 “삼성 상용차의 갑작스런 정리로 납품업체의 진성어음과 물품대금, 상용차 요구에 따른 시설 투자 손실 등을 합쳐 모두 1,400억원의 피해가 있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삼성상용차는 법의 보호막 아래서 별다른 피해없이 빠져 나갔지만 고스란히 피해를 뒤집어 쓴 협력업체들의 보상 요구에는 ‘책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전한다.2000년 11월에 삼성 상용차가 퇴출된 이후, 부품업체들은 비대위를 결성하여 삼성측과 투쟁을 했고, 정관계 요로에도 문제 해결을 위한 청원을 했다.대다수 부품업체들이 대구 지역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대구지역 정치인, 특히 대구의 전지역을 석권하고 있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삼성측과 협상을 벌였으나 삼성측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그 과정에서 이강철 지부장이 막후 실세로 등장하면서 사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강철 지부장은 작년 6월에 삼성상용차 비대위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과거 삼성상용차 법인이 발행한 진성어음과 시설투자 자금 등을 삼성그룹이 대신해서 변제하게 해달라는 강력한 요청을 받았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창당되기 전이라 민주당 대구시지부당으로서 이강철 지부장은 이후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을 여러 차례 만났다. 4·15 총선을 앞두고 대구 지역 민심을 붙잡기 위해 이강철 지부장은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 중이던 작년 12월 연말에 이학수 부회장을 만나서 다시 삼성 상용차 문제 해결을 부탁했다. 대구경제살리기 운동본부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대구시지부 김형근 정책실장은 “이강철 지부장은 삼성이 ‘도덕적인 입장에서 나서서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한다.

이 과정에서 이학수 부회장이 “삼성상용차 퇴출은 어디까지나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일로서 삼성이 직접 해결할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구 경제에 대한 삼성의 도덕적 의무를 고려해 삼성이라는 법인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삼성이 발행한 진성어음 185억원 정도를 해결해 주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김형근 정책실장은 “삼성으로서도 삼성이라는 법인이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면 사회 문제가 될 것이고 해서 삼성일가의 개인 돈으로 해결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또한 “그 돈을 비대위에 직접 주면 증여세 등 세금문제가 발생하여 대구시를 통해 지정기탁(기부금)하는 방식으로 정리되었다”고 전했다.그러니까 문제 해결 방식이 철저하게 개인 차원의 ‘도덕적 문제’로 바뀐 것이다.

즉, 삼성상용차와 그의 요청에 따른 부품업체의 분쟁 발생이라는 법적-경제적 차원의 해결이 아니라 철저하게 삼성 일가 개인의 ‘도덕적 시혜’라는 차원에서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제 주체간의 경제 원리에 의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권력과 재벌간의 막후 협상에 의한 ‘정치적 해결’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 단체는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참여연대나 경실련도 삼성상용차 부품업체들의 경제적 고통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된 것에 만족해서인지 구체적인 논평을 자제하고 있다. 결과가 좋으면 그 과정이나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공허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삼성그룹이 대구지역 발전 기금을 대구시청에 기부하고, 기부를 받은 대구시청에서 이를 기업자금으로 돌려 삼성상용차 진성어음를 갖고 있는 부품업체들을 지원하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대구 지역 한 정당 관계자는 “삼성그룹에서 삼성상용차 진성어음을 이런 식으로 대신 결제하게 된 것은 열린우리당에서 대구지역 총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강철 전 대통령특보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이 주효했기 때문”이라며 “삼성으로서는 가뜩이나 한나라당에 거액의 대선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강철씨를 통한 삼성상용차 부품업체들의 피해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충환 우리당 대구시지부 사무처장이나 김형근 정책실장도 삼성상용차 부품업체 문제 해결에서 이강철 지부장이 막후 역할을 한 것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이번 사안이 명분은 대구 지역 경제 살리기였지만, 그 방법의 정당성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열린우리당이 도덕성을 내세우며 민주당과 분열되어 창당된 정당이기에 더욱 더 그러하다.

문제 해결이 경제 원리와 상도덕에 근거한 방식이 아니라 ‘편법’에 의거했기에 그 부작용은 더욱 클 수 있다.하지만 이미 해체된 윤상정 전 생존 비대위 사무국장은 그 때 일을 떠올리며 지금도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우리가 애초 요구했던 1,400억원 보상에 대해 삼성은 전혀 신경쓰지 않다가 우리의 3년 넘은 투쟁 끝에 겨우 작년 연말에 94억원을 내 던지며 받으려면 받고 말려면 말라”고 했다며 분노를 표한다. 아무튼 이번에 진성어음 문제가 해결돼 수 년 간 자금난을 겪었던 대구 지역의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소생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대선 자금 관련 건으로 재벌 총수가 검찰 조사를 받고, 정치인들이 구속되는 시점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해 검찰은 아무런 대응책을 내 놓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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