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민간구조대 ‘하얀 헬멧’ 국외 탈출

시리아 정부는 내전 기록자인 하얀 헬멧을 적대시
하얀 헬멧 요르단 입국 작전은 이스라엘군이 수행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이스라엘 보안군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이하 같음) 대담한 작전을 펼쳐 위험에 처한 ‘하얀 헬멧’ 구조대원과 가족 422명을 시리아로부터 구출해 요르단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현재 ‘폐쇄된 장소’에서 보호 받고 있으며 앞으로 석 달 안에 영국, 독일, 캐나다로 망명할 것이라고 이스라엘 영문 일간지 예루살렘 포스트가  지난 24일 보도했다. 베냐민 네타나휴 이스라엘 총리는 그들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 각국 지도자들의 요청에 따라 이스라엘이 이번 소개(疏開) 작전을 수행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하얀 헬멧을 쓰고 일한다고 해서 흔히 ‘하얀 헬멧’으로 불리는 이 구조대의 정식 명칭은 ‘시리아 민방위대(SCD)’다. 네덜란드의 국제 구호기관인 ‘메이데이 레스큐(Mayday Rescue) 재단’이 SCD를 지원한다. SCD는 시리아 내전지에서 5년간의 구조 활동에 ‘대안 노벨상'으로 알려진 바른생활상을 받았으며, 2016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2013년 초, 영국 보병 출신인 제임스 르 메슈리어(James Le Mesurier)가 시리아 공군이 반군 장악 지역을 무차별 폭격하는 것을 보고 민간인들을 구하기 위해 구조대를 조직했다. 이 구조대에 터키의 비정부 기구 AKUT와 ARK가 훈련과 교육을 제공했다. 구조대의 규모는 점차 커져 알레포 등 8곳에 지부를 두었고 지역 민방위대 114개를 통해 3000명에 가까운 구조대원이 활동해 왔다. 이들이 지난 6년간 구한 생명만 10만 명에 달한다. 위험한 전쟁터에서 구조 활동을 하는 동안 SCD 대원도 250여 명이 사망했다. SCD의 목표는 “최단 시간 내 최대 인명 구조, 부상자 및 재산 피해 최소화"이며, 15가지의 민방위 임무를 수행한다. 또 이념과 종교 등을 초월해 정부군과 반군을 가리지 않고 인명을 구조한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전체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를 모토로 삼는 SCD 구조대원은 현재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
2011년 이후 현재까지 반군과 내전을 벌이고 있는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시리아 정부는 인명 구조라는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는 SCD를 서방의 꼭두각시로 간주하면서 이들의 구조 작업을 ‘이스라엘과 그 도구들이 수행하는 범죄 작전’이라고 헐뜯는다. SCD 대원들은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시리아 정부군이 내전에서 승기를 잡으면서 생명의 위협을 호소해 왔다. 요르단 외교부는 지난 22일 SCD 대원 98명을 포함한 시리아인 422명의 입국을 허용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시리아 반군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남서부 다라, 쿠네이트라 지역에 고립돼 있다가 이스라엘군에 구출됐다.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에 SCD는 눈엣가시였다. SCD는 구조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통해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끊임없이 고발해 왔다. SCD는 지난해 4월에 시리아 정부군이 금지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SCD 대원들은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의 마지막 거점을 압박하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정부군이 SCD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와 연결돼 있다고 주장하며 적대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SCD 대원들이 서방 국가의 도움으로 이번에 대규모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SCD 대원이 시리아를 떠난 것은 아니다. 탈출을 거부한 한 대원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시리아가 우리 나라고 이곳에서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며 “우리는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테러리스트나 군부대가 아니고 인도주의 단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 인근 국경 지역 곳곳에 몸을 숨긴 SCD 대원들은 시리아군이 접근 중인 소리를 들으며 숨을 죽인 채 ‘작전 개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밤 집결 장소 2곳으로 출발하라는 통보를 받은 대원들은 가족을 이끌고 목숨을 건 탈출 길에 올랐다. 국경의 집결지까지 가는 동안 어디서 시리아군이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반군 세력이 무너진 틈을 타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도 곳곳에서 출몰하는 험악한 상황이었다. 안전하게 국경을 넘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 방법이 고립된 SCD 대원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다고 AP통신이 이번 작전에 정통한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23일 보도했다. 시리아 남서부 꾸네이트라 지역 반군은 지난 19일 시리아군에 투항했다. 시리아정부는 항복한 반군 중 잔류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북서부 반군 지역 이들립 주(州)로 가도록 허용했으나, SCD는 제외했다. SCD는 구조대인 동시에 내전의 기록자로 활동하면서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외부에 알려 왔다. 이런 행동을 통해 아사드 정권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것이다. 앞서 다른 지역의 항복 협상 후에도 시리아군은 SCD 대원을 체포하고, 이들로부터 SCD가 극단주의 조직에 연계됐다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선전했다. 서방은 이러한 ‘증언'이나 ‘자백'이 시리아 당국의 고문과 압박, 회유에 따른 것으로 본다. 시리아군의 남서부 탈환이 가시화하자 이러한 상황이 재현될 것을 우려한 유럽과 캐나다는 2주 전 SCD 대원 구출에 나섰다. 
캐나다, 영국, 독일이 계획 추진을 주도하고, 이스라엘, 요르단, 미국이 지원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도 참여했다. 이에 따라 21일 밤 숨 가쁜 작전이 현장에서 시작됐다. 약속된 시간에 집결장소 2곳에 SCD 대원 98명과 가족 320여명 등 총 421명이 도착했다. 약 400명이 더 오기로 돼 있었으나 그들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국경을 눈앞에 두고 만삭의 임부가 응급 제왕절개수술을 받고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그래서 일행은 422명이 됐다. 이번에 시리아를 벗어난 대원은 98명뿐이며 대원 3000여 명 대부분은 시리아에 있다. 또 이번 탈출에 합류하지 못한 남서부 SCD 대원과 가족 약 400명은 시리아 당국의 체포와 박해 위험 아래 있다. SCD는 지난 23일 밤 성명을 내고 대원 피란에 협력한 각국에 감사하고, 시리아 남부 주민 수십 만 명이 보호 받도록 국제사회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SCD는 그러면서 “시리아 전역에 남은 대원 3000여 명은 앞으로도 활동을 멈추지 않고 시리아인을 도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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