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1년이 지났다. 그 동안 코드 인사 논란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청와대 내부 권력 지형도 큰 변화를 맞았다. 1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조금씩 내부 균열음이 흘러나오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른바 386 참모 그룹과 부산파, 그리고 시민운동 그룹간의 3각구도 체제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참여정부 1년 동안의 가장 큰 변화는 이른바 코드 인사를 노 대통령이 지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메이저 보수 언론과 이른바 주류 사회에서 끊임없이 비판했던 코드 인사를 노 대통령이 사실상 폐기처분했다. 즉 교육부총리에 안병영 씨, 과기부장관에 오명 씨, 재경부총리에 이헌재 씨를 임명함으로써 이른바 코드가 맞는 인사보다는 실무형의 관록있는 인사를 등용한 것이다.이런 흐름은 청와대 안에서도 감지된다.

연세대 총장 출신의 김우식 비서실장 임명이 이런 노 대통령 인사 변화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명색만의 비서실장이 아니라 노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강력한 힘을 쥐어주는 실무형 비서실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는 지금 청와대 안의 크고 작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집권초 3두마차 체제였던 문희상 전비서실장과 문재인 전정무수석, 이광재 전국정상황실장이 청와대를 떠나면서 김우식 비서실장 단일 체제로 정리됐다는 게 중론.작년 1기 청와대에서 문재인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수석은 당시 문희상 비서실장을 거치지 않고도 언제든지 노 대통령을 독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드시 김우식 비서실장을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인사추천위원회를 통해 압축된 후보군에 대한 보고도 과거와 달리 김 비서실장이 직접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청와대 각 수석과 보좌관실의 업무 보고도 과거에는 각각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형식이었으나, 지금은 노 대통령의 지시로 비서실장을 거치게 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이와 별도로 박봉흠 신임 정책실장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 밀양 출신으로 경남고와 서울상대를 나온 전통 관료 출신 박 실장은 인사에도 힘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표적인 것이 한전 사장 인사 건이다. 애초 인사수석실에서는 박운서 데이콤 사장과 한준호 전 중소기업특별위원장으로 압축된 후보군으로 인사추천위원회에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한전 사장은 결국 박봉흠 실장이 강력하게 민 한준호 전위원장에게 돌아갔다. 청와대 안의 관료 출신들의 발언권이 높아진 것은 그만큼 박 실장이 든든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차출론’으로 궁지에 몰렸던 정찬용 인사수석은 지금 청와대 안의 최장수 수석 중 한 명으로 역시 권력구도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로 꼽힌다. 인사라는 업무 특성상 정 수석은 권력과 무관할 수 없으나 인사 이외의 분야에까지 힘을 미칠 ‘왕수석’은 아니다.

그리고 정 수석 자체가 권력 행사 욕심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정 수석의 퇴임설이 끊임없이 청와대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광주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조만간 사퇴할 것이란 말이 그것이다. 이렇게 볼 때 김우식 비서실장, 박봉흠 정책실장, 정찬용 인사수석이 권력구도 안에서 나름대로 영역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을 ‘권력의 축’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의 독자적인 위상과 힘을 과시하고 있지만, 제세력을 아우르는 ‘축’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애초 참여정부에서 막강한 권력의 핵이었던 386 참모는 지금 겉으로는 퇴조한 상황이다. 안희정 씨와 이광재 전국정상황실장으로 대표되는 386 그룹은 안희정 씨의 구속과 이광재 전실장의 사퇴로 외형적 퇴조를 보이고 있지만, 이광재 전실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힘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이번 김우식 비서실장 임용에도 이광재 전실장이 영향력을 미쳤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다시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과 모교 부산상고 인맥이 급부상하고 있다. 문재인 민정수석 후임에 김해 출신에 부산고를 나온 박정규 변호사가 임명됐다. 또 공직기강비서관에 오정희 감사원 특별조사국장이 낙점됐다. 그는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 공직기강비서관은 장·차관 등 정무직 인사시 인사검증을 담당하고 평소에는 공직 사정을 담당하는 요직이다. 이들은 노 대통령이 직접 발탁한 것으로 알려졌다.또한 지난 달 김희상 국방보좌관 후임에 역시 부산상고 선배인 윤광웅 예비역 해군 중장이 임명되었다. 임기 초 노 대통령은 총무비서관에 부산상고 후배인 최도술씨를 임명했고, 그 후임에도 고향 후배인 정상문 서울시 감사담당관을 직접 발탁했다.총무와 민정은 청와대 비서실 안에서도 가장 은밀한 일을 담당한다.

총무는 자금 등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민정은 사정업무와 측근, 친인척을 관리하는 등 대통령의 수족역할을 한다. 이 모든 것을 노 대통령은 부산 인맥으로 채우고 있다. 그래서 부산파가 청와대 핵심 중의 핵심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이 부산상고 출신이기에 의도적으로 상고와 공고 등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들을 선호한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부산상고 출신들이 모든 영역에서 빠르게 등용되고 있고, 이건 청와대 내부 인사에도 마찬가지다. 부산상고 외에 김우식 비서실장도 강경상고 출신이고, 곽결호 환경부 장관도 부산공고 출신이다. 이는 노 대통령의 실업고 우대 정책과 맞물려 이번 총선 전략으로도 사용된다는 분석이 있다. 청와대는 예전처럼 2인자에게 ‘힘 쏠림 현상’은 없어졌지만 그 안에서도 크고 작은 힘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386 그룹과 노 대통령이 가장 은밀한 부분을 믿고 신뢰하는 부산파 인맥, 그리고 이런 모든 분야를 아우르고 있는 ‘인화와 단결’의 김우식 비서실장의 융화전략으로 청와대 권력 지도는 형성되어 가고 있다.과거에는 비서실장이 2인자였으나 이번 참여 정부에서는 실무형 관리자로 통용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눈에 띄지도 않고 힘도 쓰지 않는 비서실장으로 가겠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의중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점점 비서실장 중심의 청와대 권력 지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386의 막후 영향력도 김우식 비서실장이 융화해 나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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