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탈을 쓴 악이 몰려오고 있다”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해리'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공지영 작가가 5년 만의 장편소설 ‘해리’를 출간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공지영 작가는 신작 해리를 “한 마디로 어떤 악녀에 관한 보고서”라고 설명하면서 “앞으로 몇십 년간 싸워야 할 악은 아마 민주주의와 진보의 탈을 쓰고 엄청난 위선을 행하는 그런 무리”라고 밝혔다. 또 앞서 공지영 작가는 배우 김부선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관련된 의혹에도 개입했던 터라 대중의 관심은 더욱 높아진 모양새다.

신작 해리 통해 사회적 문제 제기해
“온갖 부정부패 고발하기 위한 소설”

신작 출간 간담회부터 높아진 대중 관심도
이재명·김부선 의혹 개입 관련 생각도 밝혀


서울 태생인 공지영 작가는 연세대 영문학과를 나왔다. 1988년 단편 ‘동트는 새벽’으로 등단했다. 대표작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즐거운 나의 집’ ‘도가니’ 등이다.

신작 해리는 등단 30년을 맞은 공지영 작가가 열두 번째 발표하는 장편소설이다. 대표작 ‘고등어’ ‘도가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사회 문제에 긴밀한 관심을 소설로 형상화해 온 공지영 작가가 또다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공지영 작가는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의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해리’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문학작품으로서의 ‘해리’뿐만 아니라, 그의 발언에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공지영 작가는 “해리는 한 마디로 어떤 악녀에 관한 보고서”라고 말했다. 불의한 인간들이 만들어 낸 부정의 카르텔을 포착하고 맞서 나가는 약한 자들의 투쟁을 담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출간과 관련해선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뒤로는 수많은 약자를 짓밟고, 자신의 사적인 영역에서는 부정부패를 서슴없이 행하고 이런 사람들을 고발한다는 뜻에서 이번 소설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사기꾼이 판을 친다?

또한 공지영 작가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주변에서 목격한 악의 모습은 1980년대, 그 이전과는 굉장히 달라졌다”며 “얼마든지 진보와 민주주의의 탈을 쓸 수 있고 그런 탈을 쓰는 것이 예전과 달리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일찍 체득한 사기꾼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향후 몇십 년간 싸워야 할 악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위선을 행하는 그런 무리가 될 것이라는 점을 소설로 형상화했다. 가톨릭 신자이지만, 소설에서 가톨릭의 비리를 정면으로 다뤄서 많은 걱정을 했다”고 더했다.

더불어 공지영 작가는 “정의의 투사가 되는 게 쉬워졌다”며 “수많은 개인 매체를 통해 사이비 진보, 사이비 정의꾼 이런 사람들이 등장했고, (이들이)  돈을 모으는 걸 많이 봤었다”고 말했다.   

그는 “70~80년대,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정의를 외치고 좌파가 되는 것은 투옥과 가난을 견뎌야 한다는 걸 의미했지만 (이제는) 좌파인 척하고 정의인 척하면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시대로 바뀌는 전환기에 우리가 있다”며 “정의를 팔아먹는 걸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가능한 시대가 온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예전엔 북한, 종북, 간첩 등 이런 말이 통용되던 수많은 논리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삼성의 배후다’ ‘뭐가 배후다’ 하면 사람들이 손쉽게 넘어가는 시대로 변해 가고 있다”며 “‘어떤 재벌이나 이런 갑질들이 착하다’ ‘그 사람들은 무고하다’ 이런 얘기는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얼마든지 핑계를 대서 자신들의 악을 합리화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사회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공지영 작가는 “작품을 먼저 읽어본 사람들이 의외로 충격을 안 받았다. 그래서 내가 더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전방위적으로 부패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설 해리가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점 역시 주목된다. 공지영 작가는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약 5년간 취재했다. 그는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이 소설은 허구에 의해 씌어졌다. 다만 대구희망원 사건은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그 부분은 거의 실화를 다뤘다”고 밝혔다.

실화 바탕인 ‘해리’

실제 소설의 주인공 ‘한이나’는 어쩌면 그냥 스쳐 지나쳤을지도 모를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악이 사실은 집단의 악을 구성하거나 대표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비리를 덮고 감추기에 급급한 일부 종교단체, 정치활동을 빌미로 개개인의 선의를 갈취하는 사회활동가, 장애인을 돕는다며 모금활동을 하면서도 기부금을 빼돌리고 보호받아야 할 이들을 오히려 학대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람들의 행태 등 비리와 부패를 파헤친다.

책의 제목은 ‘해리성 인격장애’에서 가져왔다. 공지영 작가는 “악인들의 공통점은 거짓말이었다. 극한으로 몰린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 책 제명을 ‘거짓말’로 하고 싶었지만 이미 많은 작품에서 썼기 때문에 내려뒀다. 해리성 인격장애에서 차용했다. 수많은 인격들이 튀어 나오는 정신병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편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광주 장애인 학교의 성폭력과 비리를 고발한 장편소설 도가니의 배경이 된 안개의 도시 ‘무진’을 다시 등장시켰다”며 “이중적인 인격의 해리성 인격장애에 비유될 정도로 표리부동한 인간들의 행태를 한눈에 드러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집필 과정은 “예전에 ‘도가니’가 싸움의 과정을 다뤘다면 이번 소설은 약자들을 괴롭히는 위선과 거짓말을 탐구했다”며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소설을 쓴 것이 아니다. 나는 소설가가 직업이었고 지난 30년 동안 가장 노릇을 하는 데 도움을 줬던 나의 유일한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왕이면 내 소설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지구가 좀 더 좋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문학적인 평가는 알아서 하는 것이고,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면서 소설을 쓰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좋은 사회 되기를…”

공지영 작가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영화배우 김부선 의혹과 관련해 김 씨를 옹호해 구설에 올랐던 것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공지영 작가는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지사와 김부선과 관련된 의혹이 불거지자 2년 전 주진우 기자에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해당 발언 이후 공지영 작가는 지난달 18일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의 스캔들에 깊이 개입된 것으로 알려진 주진우 기자와 김어준 씨 역시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해당 사건과 관련해 공지영 작가는 “내가 워낙 생각도 없고 앞뒤도 잘 못 가려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그 행동을 후회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니다. 내 성격이 어리석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행동이 어리석었다는 것은 아니다. 내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옹호 발언의 배경에 대해선 “한 사람이 울고 있는데, 부당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내가 작품을 내기 얼마 전이라고 해서 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세상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싶었다. 지나가다 맞고 있는 여자를 봤는데 나중에 구하자고 하는 세상에서 책이 잘 팔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행동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소리 지르는 어린아이와 같다. 자연인으로서 살아갈 때 나의 기질도 그렇고 작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공지영 작가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남성·여성 혐오 등으로 파생된 현상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공지영 작가는 지난달 31일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을 잃어버리는 순간 또 다른 인종차별이 되는 것”이라며 “‘일베’를 닮아가는 워마드의 ‘미러링’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천주교 성체 훼손, 성당 방화 협박, 태아 손상 사진 등을 알려 사회적 물의와 공분을 일으킨 남성 혐오 사이트인 ‘워마드’의 폭력행위에 대한 쓴소리를 한 것이다.

사회 문제 비판도

같은 날 공지영 작가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범죄심리학에 ‘당신이 악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악의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본다’는 말이 있다”며 “여성들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그것을 악한 방법으로 풀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어떤 중요한 목적이 있더라도, 나 자신의 성숙과 건강함 같은 수단이 없으면 결국 그 대상과 똑같이 된다는 것을 그간 수없이 보았다”며 “특히 강아지나 고양이 태아 사진도 올려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렇듯 공지영 작가는 일명 이재명·김부선 의혹부터 남성 혐오 논란 등 대중의 관심도가 높은 문제에 대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모습이다. 그가 말하는 ‘진보 탈을 쓴’ 얼굴과 ‘폭력성을 보이는 악’이 실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역시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