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도 급추락 ‘재계 저승사자’ 공정거래위원회
신뢰도 급추락 ‘재계 저승사자’ 공정거래위원회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8-08-03 17:46
  • 승인 2018.08.03 17:46
  • 호수 1266
  • 4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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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적 불공정 취업 알선 의혹…김상조 취임 이후에도 지속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의 불법 재취업을 도운 혐의를 받는 정재찬 전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구속됐다.

노대래-김동수 전 공정위원장도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삼성, LG 등 우리나라 5대 그룹에 공정위원회 출신을 위한 고정된 재취업 자리가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도 나와 충격을 안긴다. 이러한 그릇된 관행(?)이 김상조 위원장 취임 이후에도 계속된 것으로 알려진다.

‘재계 저승사자’라는 권한을 남용, 퇴직공무원의 채취업을 알선한 혐의가 드러난 만큼 공정위의 신뢰가 급추락하고 있다. 일각에선 김상조 위원장에 대한 검찰의 압박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5대 그룹 ‘공정위 퇴직자 전용’보직 마련…정재찬 전 위원장 구속
관행이었다는 해명 오히려 화근…검의 칼날 김상조 겨눌지도 주목


공정거래위원회가 퇴직자들을 대기업에 재취업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30일 검찰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퇴직을 앞둔 직원들을 분류해 퇴직 후 재취업할 기업들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등 취업을 ‘알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고위공직자는 퇴직 직전 5년간 본인 업무와 관련 있는 기관·기업에 3년간 재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퇴직 예정자들은 이같은 규정 적용을 피하기 위해 퇴직 3~5년 전부터 기업 등과 무관한 부서에서만 근무하는 등 경력을 관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을 ‘자회사’ 다루듯

국내 5대 기업은 공정위 퇴직자를 위한 ‘전용 보직’을 마련했고, 이 자리를 후배들에게 대물림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카드는 2010년 공정위 대구사무소장 출신 이 모 서기관을 채용했는데, 5년 뒤, 공정위 제조하도급 과장 출신 한 모 서기관으로 같은 자리를 채웠다. LG경영개발원과 기아차, GS리테일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연봉은 2억 원 선으로 연봉과 임기 등에 따라 3급은 3급 끼리, 4급은 4급 끼리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들은 재취업한 기업이 불공정 거래 등으로 공정위 조사를 받게 되면 공정위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 방안 등을 제시하는 이른바 ‘정보원’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이런 퇴직자들의 자리 챙겨주기를 공정위에 과거사라고 부르면서 척결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진행된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앞으로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임기 내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대기업 자리 대물림은 김 위원장 취임 이후에도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3월 공정위에서 퇴직한 4급 이 모 과장은 지난 5월 SK하이닉스의 고문으로 취업했다. 이는 퇴직한 지 한 달 반 만이다. 통상적인 재취업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과장이 옮겨간 자리의 전임자 역시 공정위 4급 출신이다.

공정위 퇴직자 중 재취업을 원하는 4급 이상의 간부들은 의무적으로 심사를 받게 돼 있다.

검찰은 공정위의 조직적인 퇴직 간부 취업 알선이 관행적으로 이뤄졌으며 운영지원과장과 사무처장, 부위원장을 통해 위원장에게까지 보고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한 지난 2일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노 전 위원장은 2013년 4월부터 2014년 말까지 공정위 위원장을 지내면서 퇴직 간부들의 재취업에 관여한 혐의(업무방해)를 받고 있다.
김동수 전 공정위원장도 같은 혐의로 3일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재벌 개혁 의지로만 가능할까

공정위의 이번 검찰조사와 관련해 공정위가 시장의 공정한 심판자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나아가 공정위가 시장의 룰을 공정하고 엄격하게 집행하는 과정에서 권위를 상실하고 영이 서지 않게 됐다는 것은 현재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재벌개혁 작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특별위원회는 29일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방안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재벌개혁이 주요 안건인데 5대 그룹과의 연관성이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만큼 수사를 제대로 할 수나 있겠냐는 것이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공정위의 신뢰가 무너질 위기에 놓이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공정위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반성하는 내부 노력을 더 하겠다”면서 “수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고 결과가 나온다면 겸허히 수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최근 김 위원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재벌개혁의 기조가 느슨해진 것은 절대로 아니며 소득주도 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세 개의 톱니바퀴가 같은 속도로 맞물려 돌아가야만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공정위는 특위의 최종보고서를 바탕으로 8월에 입법예고를 할 예정이다. 김재신 경쟁정책국장은 “이번 권고안에서 어느 정도 범위를 개편안에 담을 것인지는 공정위의 몫으로 남아있다”며 “권고안에 대해 내부적으로 깊이 검토하고 있으며 공정위의 입장은 8월 중순 입법예고하는 시점에 발표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