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의 취임 일성은 “노무현 정신은 여기도 대한민국, 저기도 대한민국”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대위 인사를 반(反)보수적으로 했다가 망신살이 뻗쳤다. 
당 최고위원급인 비대위원 자리에 앉힌 사람이 전과 2범으로 지난 6.13 지방선거 도의원 민주당 공천을 신청했다가 컷오프 당한 전력에다 바로 직전까지 민주당원이었음이 드러나서였다. 논란이 일자 문제의 비대위원은 사퇴했지만 영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인사 행태는 만신창이가 된 한국당이 부활을 위해 멍석을 깔아주니 아예 대놓고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속셈이 아닌가 하는 지경이다. 
하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있는 당을 다시 살려내 주기만 한다면 한편으론 이념적 허울 따위는 따질 일 없어 보일만도 할 것이나, 다만 답답한 것은 그래도 보수의 가치를 끝까지 지키려는 인사들이 당내에 몇 명쯤은 있을 법 한데도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사실이다.
고려 말 보수적 개혁가 정몽주는 급진적 개혁가였던 정도전과 군부 실력자 이성계 등이 모의한 역성혁명에 끝내 동참하지 않았다. 대신 쇄신 정책으로 다 쓰러져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하리’ 운운하는 하여가(何如歌)로 동참을 유혹하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을 향해 그는 이념적 가치가 뒤죽박죽되어 살 수는 없다며 단심가(丹心歌)를 외쳤다. 
비록 정몽주는 반역 세력에 의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으나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만고의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지금 한국당은 정몽주와 같이 급진적 세력에 대항해 정치생명을 걸고 맞서며 ‘단심가’를 부를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여기도 대한민국, 저기도 대한민국’이라고 ‘하여가’를 부르는 인사가 필요한 게 아니다. 
김병준 위원장은 겉으로는 계파논쟁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특정 계파를 없애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정 계파 반대편에 있는 인사들을 전면 배치하여 특정 계파를 배제하는 것 자체가 계파 논쟁에 불을 지피는 행위다. 
김 위원장이 영입되기 전에도 한국당은 특정 계파 축출 문제로 내홍을 겪었다. 홍준표·김성태 체제에서의 인위적 인적 청산 작업이 절정에 달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바다. 
그들 체제에서의 도모가 실패하고 밖으로 눈을 돌려 영입해 온 인물이 지금 김 위원장이다. ‘홍준표 따라하기’ ‘차도살인(借刀殺人)’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그의 “박정희 식 국가 개입에 동의하는 사람은 같이갈 수 없다”는 말이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더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는 또 ‘신보수 가치’라는 깃발을 들었다. 말은 그럴 듯한데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하여가’에 다름 아니다. “안보 제일주의로는 미래세대를 이끌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는 지금 적대국이 없는 ‘통일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 같아 보인다. 혹 북한의 핵이 우리의 핵이 될 수 있다는 초등학생 수준의 안보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마저 생긴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에서 안보 없이 어떻게 미래가 보장된다는 것인가 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 내에서는 누구 하나 속 시원히 목소리를 내는 인사가 없는 작금의 자유한국당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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