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계급사회인가’ 최근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인하대 산업경제연구소, 그리고 MBC 팀이 공동으로 ‘52개 재벌가의 친인척과 3,000여 명의 정관계 지도층’을 대상으로 ‘한국사회 지도층의 혼맥도’를 작성, 이중 일부를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 혼맥도를 통해 한국의 상류층들이 혈연으로 맺어진 일종의 계약을 통해, 거미줄 같이 얽히고 설켜 있음이 드러났다.참여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이번 혼맥도의 가장 큰 줄기는 LG그룹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 LG는 지난 57년 삼성그룹과의 혼사로 재계 통혼의 효시 역할을 했으며, 이어 삼성·현대·대림·두산·한일·한진·금호 등 굴지의 재벌과 직접 사돈을 맺어 왔다.

그뿐 아니라 해당 시기의 실세 정치인들과도 직접적인 사돈관계를 맺어오며 상류층 혼맥의 큰 줄기를 형성해 왔다고 연구소는 전했다.고 구인회 LG 창업주는 6남 4녀를 출가시키면서 정계, 관계, 재계의 명문가들과 사돈을 맺었다. 우선, 지난 57년 구인회 창업주의 3남인 자학(현 아워홈 회장)씨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둘째딸 숙희씨가 결혼을 했다. 재계 정상을 다투는 두 기업이 사실은 ‘결혼으로 맺어진 혈맹관계’인 셈이다.이와 함께 LG는 현대와도 사돈지간이다. 지난 96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 일선씨와 구태회 LG창업 고문의 손녀 은희씨가 결혼했다. 이에 따라 LG, 삼성, 현대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가깝고도 먼 친척’인 사돈지간이 됐다. 여기에 LG는 삼성으로 장가를 간 자학씨의 차녀 명진씨가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아들 명호씨와 결혼하게 됨으로써 한진그룹과도 사돈이 됐다.

또 고 박두병 두산그룹회장의 3남 용훈씨의 경우에는 구인회 회장의 조카사위이며, 구인회 회장의 차녀 자혜씨는 대림산업 창업주인 이규덕 회장의 아들 재연씨와 결혼, LG가는 한진·대림·두산그룹과도 사돈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 구인회 회장의 막내동생인 두회씨의 장녀 은정씨가 김한수 한일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김택수씨의 아들인 중민씨와 결혼했고, 구자훈 LG화재해상보험 회장의 3녀 문정씨가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LG 일가의 혼맥은 재계뿐만 아니라 언론계, 관계, 재계, 학계 등으로 이어진다. LG의 또다른 창업 일가인 허동수 LG칼텍스정유 회장의 조카는 조선일보의 고 방일영 회장의 아들인 방상훈 사장과 결혼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도 그룹규모 만큼이나 정·재계의 거대한 ‘혼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연구소에 따르면 삼성은 조선·중앙·동아 등 메이저 언론사 3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중앙일보 홍진기 회장의 장녀 홍라희와 혼인한 것부터 출발한 이 혼맥은 재벌과 언론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중앙일보 홍 회장의 차녀 라영씨가 노신영 전국무총리의 차남 철수씨와 혼인했고, 노 전총리의 장남 경수씨는 현대그룹의 조카사위가 됐다. 그리고 다시 정몽준 의원이 김동조 전외무부장관의 4녀인 김영명씨와 백년가약을 맺었고, 김 전장관의 3녀 영자씨는 LG그룹의 허정구씨의 3남 광수씨와 결혼했다. 이어 허정구씨의 손녀 유정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장남과 혼사를 치렀다. 또한 삼성 이 회장의 차녀 서현씨는 동아일보 김재열씨와도 혼사로 연결되어 결국 삼성을 중심으로 ‘조-중-동’ 언론3사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세번째는 조선일보 중심으로도 거대한 혼맥도가 형성된다.

조선일보 역시 태평양, 롯데(농심), 조양상선, 김치열 전 내무부 차관, 대전 피혁, 효성그룹을 거쳐 이명박 현서울시장의 자제에게 연결되어 있다. 이와 같이 정·재계간 혼맥을 살펴보면, 도저히 사돈관계라고 볼 수 없는 결과도 나오곤 한다는 것이 연구소측 설명이다.연구소는 “흔히 서로 반목관계에 있다고 생각되는 전두환 전대통령과 권노갑 전민주당 고문도 사돈관계에 놓여 있었다”며 “마찬가지로 노태우 전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이 혼맥들로 연결되며 이 혼맥은 전두환 전대통령과 권노갑 전고문에게까지 이어진다”고 밝혔다.우선, 70∼80년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군사정권의 정점에 서 있던 박정희 전대통령과 전두환 전대통령도 혼맥으로 연결돼 있다.

권 전고문의 장녀 수현씨가 전두환 전대통령의 조카와 결혼한 것을 기점으로 한국제분, 효성 등을 거쳐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한일, 양택식 전서울시장, 노신영 전국무총리, 풍산 등을 거쳐 박정희 전대통령까지 혼맥이 이르게 된다. 노 전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거대한 혼맥도에 함께 포함된다. 노 전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는 신동방 신명수 회장의 장녀 정화씨와 결혼했고 신 회장은 송인상 전재무부장관의 차녀와 혼인했고, 이어 손 전장관은 이봉서 전동자부장관과 동서였다. 다시 이 전장관의 3녀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장남 정연씨와 결혼, 결과적으로 노 전대통령과 이회창 전총재도 먼 사돈지간이 되는 셈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혼맥도를 통해 이른바 한국의 상류층이라고 하는 정·재계 인사들이 서로간의 혈연맺음을 통해 ‘기득권의 재생산’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며 “이들이 이러한 질긴 인연을 통해 부의 축적은 물론 권력의 안정화 및 세습을 공고하게 만들어 특권을 공유해 왔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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