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과 제일은행 등 국내 주요 금융기관이 외국자본에 잠식당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외국자본에 맞설 국내 대항자본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정부는 최근 올해 역점 사업으로 사모펀드 등을 조성하는 방법으로 민간자본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지난 9일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이른바 ‘이헌재 펀드’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금융권과 재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이헌재 전장관이 인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우리금융그룹은 자산규모 2위의 거대 금융그룹으로 국내 주요기업의 70~80%와 거래하는 기업금융 전문은행이다. 정부는 현재 예금보험공사 지분 86.8%에 이르는 우리금융그룹의 민영화 시기를 빠르면 올 상반기 정도로 앞당길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은행의 정부 보유지분 역시 상반기 중 매각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국내 은행 민영화 과정에는 국내 자본의 참여도 활발히 이루어질 전망이다. 정부도 기존의 외국계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민영화 과정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사모주식투자펀드 등 민간 자생 자본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우리금융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약 3조원 규모의 연합 컨소시엄을 구성하겠다고 밝혀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전장관은 지난 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신한,조흥은행 우수경영자 초청 간담회에서 이같은 사실을 공식 선언했다. 우리금융과 같은 거대 국내금융이 외국 자본으로 넘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의 견해이다.

이는 최근 금융계를 중심으로 ‘정부 보유 지분 매각시 국내 자본의 활발한 참여를 보장해야하며, 외국계 자본의 은행 진출에 대한 자격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이헌재 펀드가 아직 선언 상태이기 때문에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지만, 그의 경력이나 재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할 때 상당수의 기업들이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이헌재 펀드는 우리금융 민영화에 참여할 많은 기관 중 하나일 뿐이지만, 국내자본의 투자력이 약한 상태에서 사모펀드 설립 등을 통해 외국 자본에 대항하는 국내 금융자본 육성을 언급했다는 측면은 긍정적”이라는 말했다.이 전 장관은 “기존 펀드 형태가 아닌 직접투자자, 뮤추얼펀드 등이 참여하는 연합 컨소시엄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이번 시도가 향후 철도청 등 국영기업체의 민영화 해법에 있어 새로운 시도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또 펀드 운용과 관련해 “삼일회계법인을 주간사로 선정했다”며 “공무원 출신을 배제하고 시장 전문가 중심으로 펀드를 운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그러나 그가 추진하고 있는 ‘이헌재펀드’가 구성될 경우에도 금융과 기업에 동시에 투자하기는 어렵다. 현행법상 사모펀드는 지주회사에 해당, 금융과 비금융 주식을 동시에 소유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말한 컴소시엄 형태의 경우에도 자산이 2조원을 넘으면 기업집단 규제를 받게 됨에 따라 동시 소유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헌재 전 장관 측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거쳐 재경부장관에 이르기까지 약 2년 반동안 금융정책의 실질적 책임자였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기업과 금융권에 대해 칼날같은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재임기간 동안 5개 시중은행 퇴출이라는 초강수의 구조조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는 최근까지도 공직복귀설이 흘러나올 정도로 재계와 금융계에서는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이헌재 펀드’를 통해 금융계 복귀를 시도하는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재경부 장관 재임시절 금융권 구조조정과정에서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섰던 이 전장관이 이제 와서 외국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지금과 같은 경제 침체기에 그가 재임시절 보여줬던 강력한 카리스마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모주식펀드(Private Equity Fund)란?

사모주식펀드란 소수의 고액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펀드를 말한다. 공모펀드와 달리 펀드에 참여하는 투자자수가 100명이하의 소수로 구성되고 투자자를 비공개로 모집한다고 해서 ‘사모(私募)펀드’라 불린다.이 펀드는 공모펀드와 달리 운용대상에 제한이 없어 자유로운 운용이 가능하다. 예컨대 공모펀드는 펀드 규모의 10%이상을 한 주식에 투자할 수 없지만, 사모펀드의 경우 이익이 발생할 만한 투자대상에는 100%까지도 투자 가능하다.

사모펀드의 주된 목표물은 가치가 저평가된 기업의 지분으로 이를 인수해 기업가치를 높인 다음 기업을 되파는 전략으로 고수익을 챙긴다. 사모펀드는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고, 한국에서는 지난 2000년 7월 사모펀드 발행이 허용됐다. 그러나 초기에는 펀드규모가 수백억원에 불과해 외국계 펀드의 경쟁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한편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이점 때문에 기업들의 내부자금 이동 수단 혹은 검은 자금의 이동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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