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가 ‘재계 총수’를 향해 정조준하고 있다.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수사에 비협조적인 기업에 대해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검찰은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총수들에 대한 구속수사’ 등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 이에 따라 검찰의 칼날이 어느 총수에게 먼저 향할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해당 기업에서는 검찰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사태를 파악하고, 해결책 마련에 고심중이다.“이러다가 우리가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니냐”.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A그룹 임원의 말이다. 최근 대기업 총수들이 검찰에 줄줄이 소환되면서, 누가 사법처리대상에 오를 것인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은 “수사에 협조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간에 차등을 둬 사법처리를 하겠다”는 의지를 누차 밝혀왔다.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그간 기업인 수사에 대해 “죄질 및 자수·자복에 따라사법처리 강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정치권에 제공한 불법대선자금 규모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불법 대선자금의 출처인 비자금 규모와 조성 과정 등 기업 경영상 안될 일을 한 점이 더 고려될 것”이라고 밝혀, ‘불법자금제공 액수에 따라 사법처리 수준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이에 따라 ‘분식회계와 거래내역조작 등 비자금 조성수법’, ‘비자금 규모’, ‘불법자금 제공의 대가성’,‘자수·자복 여부’, ‘경제에 미치는 파장’등이 검찰의 사법 처리 수위를 결정하는 주요 잣대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이를 종합해 볼 때, 검찰의 사법처리 대상으로 롯데그룹이 0순위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그간 수사에 가장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여온 기업이 롯데”라는 얘기가 돈다.

검찰은 이미 롯데건설과 구조본 등에 대한 조사를 통해,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포착했고, 또 신동인 롯데쇼핑 사장이 신경식 한나라당 의원에게 직접 10억원을 준 사실을 확인했다.따라서 검찰은‘비자금 조성과 불법자금 전달’등에 신격호 롯데회장과 신동빈 부회장 등의 개입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이들을 소환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 하지만 일본에 머물고 있는 신 회장과 신 부회장이 검찰 소환에 불응해왔다. 이에 검찰은 “구속 등 사법 강도를 높이겠다”며 롯데를 압박하고 있다.삼성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 역시 주목된다. 재계 1위인 삼성은 불법 대선자금 제공 액수면에서 다른 기업을 압도하고 있다. 현재 삼성은 한나라당에만 372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에 삼성의 경우 사채시장에서 채권을 구입하는 등 ‘돈세탁’ 과정을 거쳐 한나라당에 전달하는 등 수법도 치밀하다.

이에 따라 검찰은‘비자금 조성’과 ‘돈세탁’과정 등에 어느 선까지 개입돼 있는지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특히 검찰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소환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검찰 수뇌부의 경우 “이학수 부회장 등 임원진의 진술을 종합한 뒤, 이 회장의 소환을 신중히 검토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측으로서는 비자금 조성에 이 회장이 직접 개입한 흔적을 찾지 못한데다, 이 회장의 사법처리가 불러올 경제적 여파 등을 고려한 셈이다. 100억원 이상을 한나라당에 제공한 LG, 현대차의 경우도 처벌수위를 놓고 검찰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검찰은 LG 구본무,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비자금 조성 및 사용과정에 개입한 단서를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구 회장과 정 회장은 검찰의 소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일부 임원진의 경우 법정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비자금을 조성, 불법 대선자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한화, 금호, 동부, 한진 등도 총수들의 사법처리 대상 기업으로 떠오른다. 이미 조양호 한진 회장, 김준기 동부 회장, 박삼구 금호 회장 등은 검찰에 소환돼, 비자금 조성 경위 등에 대해 조사받았다.이들 기업 중 비자금 조성 규모가 크고, 거래장부 조작, 횡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일부 총수의 경우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게 검찰 주변의 관측이다. 특히 정치자금을 직접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화의 김승연 회장의 경우 ‘자수·자복’하며 수사에 적극 협조, 엄중 처벌 대상에서는 제외될 것이란 전망이다.이처럼 일부 그룹 총수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재계도 초비상 사태에 들어갔다.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정식회장으로 선임되자마자 송광수 검찰총장을 찾아가 기업인 선처를 요청한 것, 역시 이런 재계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수사 선상에 오른 기업들도 검찰쪽의 공식· 비공식 채널을 총동원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그룹총수가 소환되거나 사법처리되는 것을 막기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삼성의 경우 김인주 사장이 소환된데 이어 이학수 부회장의 소환이 임박해지면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삼성은 “총수까지 사법처리 대상이 되겠느냐”고 관측하면서도, 수사범위가 총수까지 확대되지 않도록 검찰수사에 적극 협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LG와 현대차 등은 총수가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일단 안심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부 임원의 소환조사 및 사법처리에 대비, 검찰쪽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재계 한 관계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인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총수 등이 사법처리되면 경영전략 수립 및 신규 투자사업 부문 등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