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구씨와 허씨 일가의 분가가 임박한 가운데, 계열분리 시기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일각에서는 “올해 안으로 계열분리가 추진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반면, 그룹측에서는 “아직 지분정리가 안된 만큼, 당분간 계열분리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특히 허씨일가 계열로 편입되는 회사들이 ‘LG’라는 브랜드를 사용할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LG건설, LG유통 등 허씨측 회사들이 ‘LG’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측이 ‘LG’란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구씨와 허씨가 60년 가까이 동업관계를 유지했던 ‘상징성’마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LG그룹은 현재 (주)LG를 중심으로 한 구씨 직계, LG전선을 주축으로 하는 구씨 방계, 그리고 공동창업가문인 허씨 일가 등 3개 소그룹으로 계열분리되고 있다.

이중 허씨측 계열로 편입될 회사로는 LG건설, LG칼텍스정유, LG유통, LG홈쇼핑 등이 꼽히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구씨와 허씨 일가의 ‘계열 분리’를 놓고 각종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구씨와 허씨 일가가 ‘계열분리시기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허씨 일가가 올해나 아니면 늦어도 내년까지 계열분리를 추진하지 않겠느냐. 이에 반해 구씨측에서는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조기 계열분리를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계열분리 시기’를 놓고 구씨와 허씨간 갈등이 불거지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실제로 일부언론에서는 “허씨측에서도 올해 안에 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이처럼 구씨와 허씨간 ‘계열분리’를 놓고 ‘갈등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데에는 LG그룹내의 여러 가지 배경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우선 조기 계열분리가 될 경우, 재계 2위인 LG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허씨측 계열인 건설·칼텍스정유·유통·홈쇼핑 등이 조기에 계열분리되면, 현대차그룹에 밀려 재계 3위로 한단계 밀려날 수 있다. 이에 따라 구씨측이 재계 2위의 수성을 위해, 허씨와 계열분리를 미루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이다.여기에 구씨측으로서는 LG카드문제, 검찰수사 등 그룹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허씨 일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실제로 구본무 회장은 LG카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지주회사인 (주)LG 지분을 담보로 제공, 경영 안정을 위해 허씨 일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LG그룹 관계자도 “최근 그룹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허씨 일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조기 계열분리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이와 함께 허씨측에 편입된 회사들의‘LG 브랜드’사용여부도 ‘갈등설’을 부추기고 있다. (주)LG는 오는 2005년부터 계열분리되는 회사로부터 LG 브랜드에 대한 사용료를 받을 계획이다. 그룹 관계자는 “브랜드 사용료 책정은 각 계열사마다의 재무상황, 업종 등 종합적으로 고려될 것”이라고 밝혔다.현재 ‘LG 브랜드 사용료’로 각 계열사는 ‘매출액의 0.1%∼0.8%’까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허씨 계열의 회사들은 ‘LG’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막대한 브랜드 사용료도 문제지만, ‘LG’브랜드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즉 최근의 카드 사태와 ‘차떼기 불법자금 제공’ 등 LG와 관련된 부정적인 사건이 터지면서, LG브랜드 사용여부를 신중히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허씨 계열사가 ‘LG’브랜드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구·허씨 동업관계의 ‘상징성’마저 사라지게 된다. 즉 허씨와 구씨 일가는 60년 가까이 유지됐던 동업관계를 청산하고, 계열분리와 함께 회사 브랜드까지 달리하며 완전히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는 셈이다.이처럼, 일각에서 계열분리 시기를 놓고 ‘갈등설’이 불거지면서, 해당기업들은 ‘사실무근’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구씨측 그룹 관계자는 “올해 안에 구씨와 허씨간 계열분리가 이뤄지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계열 분리 시기를 놓고 구씨·허씨간 갈등을 빚고 있다는 항간의 소문은 사실 무근이다. 현재 계열분리시기를 놓고 논의중일 뿐이다”라며 ‘갈등설’을 일축했다.

그는 또 “LG건설 등 4개사에 대한 계열분리 방침이 정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계열분리를 위해서는 지분정리가 필요해 분리시점은 속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이어 이 관계자는 “허씨측 계열사에 대한 브랜드 사용료 징수 등도 계획 수립단계일 뿐, 현재 어떠한 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허씨측 계열사로 분류된 LG정유 관계자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구씨·허씨 일가의 ‘갈등’은 없다. 현재 지분 정리작업 중인만큼 계열분리 시기는 속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허씨측 LG건설 관계자도 “허씨 집안에서 건설 지분을 이미 30%이상 확보하는 등 지분 정리 작업이 마무리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향후 5년간 LG브랜드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만큼, 당분간 LG명칭을 사용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계열분리 시기는 2∼3년쯤 미뤄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구씨-허씨 ‘60년 동업’

LG그룹 본사가 있는 여의도‘쌍둥이’빌딩처럼, LG그룹을 이끄는 양축이 있다. 바로 구씨와 허씨 일가다. LG그룹의 역사는 지난 47년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이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면서부터. 당시 구씨의 사돈인 만석꾼 허만정씨가 자본만 투자하고 경영은 구 회장에게 일임하며, 60년 가까이 동업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허만정씨의 셋째아들인 고 허준구 회장은 허씨 가문을 대표하는 경영자로 LG경영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허준구 회장이 사망하면서, LG그룹내 허씨 일가들이 독립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허씨가 자본을, 구씨가 경영한다’는 틀이 깨지고 있는 것. 그룹내 허씨 인사들 중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고 있는 인물로는 허동수 LG칼텍스 회장과 허창수 LG건설 회장을 꼽을 수 있다. 허동수 회장은 허준구 회장의 사촌으로, LG내 허씨 가문의 대표자 역할을 하고 있다. 허준구 회장의 장남 허창수 회장은 최근 그룹 계열분리과정에 막강한 입김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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