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구멍‧정부 은폐 의심‧늑장 발표’ 3대 미스터리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북한산 석탄 밀반입’과 관련해 정부 당국이 10일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관련 첩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지 10개월여 만이다. 그간 북한산 석탄 밀반입을 둘러싸고 진실 공방이 벌어졌으나, 결국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밀반입은 사실로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를 위반한 셈이 됐다. 

정부는 다만 북한산 석탄이 일부 수입업체의 증명서 위조 등으로 인해 반입됐다며 사실상 이들의 ‘개인 일탈’로 결론내렸다. 하지만 ‘깜깜이 거래’로 정부의 제재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은 피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무역업계 일각에서는 북한산 석탄이 밀반입되는 데 정치권 인사의 ‘인맥’이 필수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한 야당 의원은 “누군가의 오더(지시)가 없고서야 그렇게 처리될 수 없다”며 ‘윗선’의 존재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산 석탄 반입 사건에 관한 정부의 수사 결과가 발표됐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무역 중개업체만 믿고 ‘허술 거래’…‘우리도 몰랐다’는 정부, 제재망은 뚫렸다
석탄 수입업체 ‘개인 일탈’ 치부 꼬리 자르기?…“축소 의심 지울 수 없어”
수사만 10개월 ‘늑장 발표’…한반도 대화 국면서 北 정권 눈치 봤나
北 석탄 밀반입 “정치권 인맥 필수” “윗선 오더 있었을 것” 고위급 연루 의혹도


관세청은 10일 정부대전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북한산 석탄 등 위장 반입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 발표에 따르면 원산지 증명서를 위조하는 수법으로 북한산 석탄이 국내에 불법 반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밀반입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국내 3개 수입법인은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7차례에 걸쳐 총 66억 원 상당의 북한산 석탄·선철 35,038톤을 국내로 불법 반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 소재 항구에서 제3의 선적으로 환적한 뒤 원산지를 러시아로 속이는 수법으로 국내 밀반입했다.
 
일부 수입업체는 북한산 무연탄을 들여오면서 원산지 증명서 제출이 필요없는 석탄인 ‘세미코크스’로 신고하는 꼼수를 부린 사실도 드러났다. 피의자들은 북한산 석탄에 대한 금수 조치로 거래 가격이 하락하자 매매 차익을 노리고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허술한 제재망 노출
‘묵묵부답’ 정부는 몰랐나

 
관세청은 관련 법인 3개와 관련 수입업자 3명에 대해 부정수입·밀수입 등 불법 혐의를 확인하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정부의 ‘불법 인지 여부’에 대해선 이날 어떠한 입장도 없었다. 이날 결과 발표에 나선 관세청 노석환 차장은 짧은 브리핑 이후 일문일답을 생략한 채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간 정부 당국이 원산지 둔갑 사실은 ‘알기 어렵다’는 기조를 유지한 만큼 입장 변화는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산 석탄 반입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는 결과적으로 위반한 셈이 됐다. 정부는 한마디로 “우리도 몰랐다”는 입장이지만, 남동발전 등 대형 발전공기업이 무역중개업체만 믿고 허술한 거래를 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국내 제재망이 뚫린 것이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바른미래당 이학재 의원은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2010년) 5‧24 대북조치를 통해 이미 북한 물품의 반입을 금지하고 있었다”며 “지난해 10월 이전에 반입된 북한 석탄을 비롯한 물품 역시 정부가 5‧24 조치를 반드시 지키려는 의지만 있었다면 허술하게 국내로 반입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재망이 뚫린 데 대한 정부의 입장 발표가 없자 정부가 이 문제를 은폐‧축소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지속되는 상황이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0일 “어제 외교부가 해당 석탄은 러시아산이라고 말하며 안보리 제재안 위반행위는 없다고 밝히자마자 세관 당국은 해당 석탄이 북한 석탄이 맞다고 했다”며 “정부는 업자의 일탈 가능성이 있다며 일개 업자 문제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도 “오늘 정부의 발표를 보면, 이번 사건의 모든 책임과 잘못을 수입업체의 일탈 정도로 축소하고 싶어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결과적으로 정부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남북‧북미 정상회담 등을 고려해 이 사건을 은폐하거나 최대한 시간을 벌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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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석탄 밀반입 과정서
정치권 인사 연루 후문

 
이런 가운데 북한산 석탄의 밀반입 과정에 정치권 인사가 연루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역중개업계 일각에서는 북한과의 자원 무역은 일개 무역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북한과의 자원 밀무역을 위해선 정치권 인맥이 필수적이라는 후문이다. 소위 북한에 우호적인 정치권 인사들의 ‘뒷배’가 있다는 것이다.
 
재선의 한 야당 의원은 “(원산지 파악과 관련) 화학 성분 검증 안 하더라도 간이 검증으로 어렵지 않게 (원산지) 확인이 가능한데 북한산인지 아닌지 그냥 통과했다는 건 위에서 ‘오다’(지시)를 받지 않고서 그렇게 처리할 수 있겠느냐”며 ‘윗선’ 개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인사는 이어 “관세청 누군가의 오더가 있었고 (관세청이) 독단적으로 못하기 때문에 그 윗선에서 ‘빨리빨리 해주라’는 이런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며 “(정부 고위당국자나 정치권이 밀반입 과정에) 관여했을 수 있다”라고 추정했다.
 
한편, 이번 논란은 지난달 17일 미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 보고서 내용을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보고서는 지난해 7~9월 북한 원산과 청진항에서 석탄을 실은 선박들이 러시아 홀름스크항에 석탄을 하역했고, 홀롬스크항에서 파나마 선적 ‘스카이엔젤’호와 시에라리온 선적 ‘리치 글로리’호가 지난해 10월 9000여 톤의 북한산 석탄을 실은 뒤 러시아산으로 신고돼 국내에 들여왔다고 밝혔다. 또 두 척의 해당 선박이 한국 당국의 별다른 조치 없이 운항을 지속한 사실도 밝혀졌다.
 
해당 보고서 내용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자 정부는, 보고서가 나오기 전인 지난해 10월 관련 첩보를 입수해 조사를 진행해 왔다고 뒤늦게 밝힌 뒤 이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에 북한 석탄의 국내 반입 동향을 인지했지만 열 달이 지난 이제서야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내놓고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지난달 미국의 소리 방송이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면 과연 정부가 이 사건을 공개적으로 수사하고 발표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오는 실정이다.
 
정부의 늑장 발표와 관련해 관세청은 “관련 업체가 많고 관련자들이 진술을 부인하고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아 조사가 지연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간 세관 당국과 관련 대책 회의에 참여했던 국회 기재위 소속 의원의 한 보좌관은 “(이번 사건은) 북 화물을 통일부장관 승인 없이 가져온 게 되는데 이게 형량이 높다”며 “그러다 보니 관련자들이 수사받을 때 전면 부인했고, 당국이 증거를 하나하나 다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작업이 너무 오래 걸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북 제재 고삐 美반응 촉각
민주당 “한미 긴밀 협력 中”

 
북한산 석탄 국내 밀반입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번 사건은 새 국면을 맞이한 형국이다. 최근 비핵화 논의의 교착 상황에서 대북 제재 공세를 높이고 있는 미국이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이목이 쏠린다.
 
특히 미 의회에서 석탄 밀반입에 연루된 기업이 한국 기업이라도 세컨더리 보이콧(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은행‧정부도 제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미 정부가 북한과 거래한 우리 기업과 개인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발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다만 정부는 북한산 석탄 국내 밀반입 사건과 관련해 미국의 양자 제재를 받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의 독자 제재는 통상적으로 제재 위반 회피가 ‘반복·체계적’으로 이뤄지고 관할국이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있을 때 적용되는 걸로 안다”며 “그러나 이 건은 아주 초기부터 한미 간 공조 협의를 하고 있고, 독자 제재 대상 기준과는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는 북한산 석탄의 한국 반입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한국 정부를 신뢰하며 한미 양국은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수사 결과를 발표한 10일 오후 현재 미국에선 자정인 만큼 아직까지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북한산 석탄 반입 논란과 관련해 정부의 묵인‧은폐 의혹 등에 대해 적극 반박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우리 정부는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해 왔다”며 “정부가 이 문제를 방치하거나 은폐한 것도 아니며, 한미 공조에 균열이 있다는 주장도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한미 양국은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늘 조사 결과도 정부가 미국 측과 공유하고 공동대응할 것”이라며 “거듭 말씀드리지만 한미 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는 불필요한 논란은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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