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고는 사람에게 “코 골지 말라”고 해보라. 대개는 “내가 언제 코 골았냐”고 우길 것이다. 술 취한 사람에게 “당신 술 취했어”라고 해보라. 십중팔구는 “나, 술 안 취했다”라고 우길 것이다. 또는 미친 사람이 “나 미쳤다”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나무라지 않는다. 자신이 코를 고는지, 술에 취했는지, 미쳤는지 정말로 본인이 모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자신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결코 코를 골지 않는다거나, 절대 술 안 취했다거나, 절대 정신 멀쩡하다고 우기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관대하지가 않다. 그 우김이 가소로워서다.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에게는 더욱 그렇다. 거짓말이 자칫 국가적 신뢰와 사회 질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짓말 하나로 그동안 쌓아온 권력과 명예를 하루아침에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 왔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사임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미국 국민들은 닉슨 캠프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내 ‘도청’보다 그것을 은닉하기 위해 닉슨이 거짓말을 계속 한 사실에 더 분노했다. 
우리나라 정치인과 공직자들도 이러한 거짓말 버티기 사례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도 거짓말로 인해 지금 영어의 신세가 되어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터질 경우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일단 무조건 부정부터 하고 본다. 이런 거짓말은 너무 당황해서 판단력이 흐려진 착각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찔리는 구석을 아예 처음부터 부정하고 덮어버리기 위해 짜 낸 거짓말이란 점에서 죄악시 된다. 
대표적인 진보인사로 꼽히던 정의당의 노회찬 의원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연루돼 특검 소환을 앞두고 고민한 끝에 결행한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주위에서는 그가 ‘클린 정치인’이라는 명성에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는 게 견딜 수 없는 심적 부담감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노회찬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등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처음부터 완강히 부인해오다가 유서에서 돈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유서에서 밝혔듯이 진작 돈을 받은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며 사과하고 깨끗이 죗값을 치렀으면 그를 아끼는 국민들은 비록 실망스러웠겠지만 용서를 했을 것이다. 노회찬 의원의 선택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했으나 자신의 행위에 극단으로 책임을 지는 모습에 국민들이 진심으로 애통해 마지않았다. 
문제는 그보다 훨씬 무겁고 큰 혐의를 받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양심에 털이라도 난 듯 아무렇지도 않게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는 현실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중견 정치인들이 인사 청탁 의혹 등의 논란을 빚고 있는 소식에는 그저 아연해질 따름이다. 겉으로는 학연·지연을 뿌리 뽑아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외쳤던 사람들이 뒤에서는 추잡한 청탁이나 하고 있었으니 어느 국민이 이들을 바로 보겠는가 말이다. 
물론 그들은 사실 모두를 부인하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은 이 역시 확고한 물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밥 먹기보다 쉽게 내뱉는 정치판의 거짓말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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