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천지 대한민국’ 자동차 앞 유리 파손, 40분 간 감금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6일 출소했다. 지난해 1월 21일 구속된 이후 562일 만이다. 김 전 실장은 이날 새벽 0시 10분께 수감 중이던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왔다. 검은색 정장, 노타이에 와이셔츠 차림으로 나온 김 전 실장은 대기중이던 차량을 타고 현장을 떠날 때까지 큰 곤욕을 치렀다. 출소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위가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이주영 의원 “경찰, 폭력 예방 위한 임무 수행 제대로 했나”
김경수 경남지사 뒷덜미 잡은 사람은 현행범으로 체포


대법원은 지난달 27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구속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직권으로 구속취소 결정을 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법원은 피고인의 구속 기간을 2개월씩 총 2차례 연장할 수 있다. 2심과 상고심에선 추가 심리가 필요한 경우 3차까지 가능하다.

김 전 실장은 지난해 2월 7일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 비판 성향의 문화예술인 지원을 배제한 일명 ‘문화계 블랙리스트’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에서 구속 기한이 연장됐고, 이날로 구속 만 18개월을 맞았다.

대법원은 블랙리스트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면서 구속 기한 안에 사건 심리를 끝낼 수 없다고 보고 직권 취소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당초 검찰은 김 전 실장의 다른 혐의로도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구속 상태가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서를 각 재판부에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혐의 원심 형량이 확정되거나 ‘화이트리스트’, ‘세월호 보고 조작’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되면 다시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출소 상태서
재판 받게 된 김기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현재 재판중이다. 무죄로 풀려난 것이 아닌 만큼 앞서 밝힌 대로 재판 결과에 따라 재수감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폭력과 폭언 등이 난무했던 김 전 실장 출소 풍경은 참 볼썽사나웠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는 당시 상황에 대해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연석회의에 참석한 이주영 의원은 “그저께 새벽에 우리나라가 법이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 정도의 난동이 바로 경찰을 옆에 둔 상황 속에서 벌어졌다.”고 김 전 실장 출소 풍경을 설명했다.

이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구속 만기가 되어서 석방되는 현장에서, 거기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다 있을 수 있다.”며 “(하지만) 경찰이 통제선을 설치하고 폭력행위를 예방하는 것이 경찰 본연의 임무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손 놓고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공권력, 법치 외의 현장을 생생하게 봤다는 점이다.”라며 문제를 지적했다.

또 이 의원은 “당시 경찰 통제선을 넘어서 시위대가 진입해서 석방되어 자유롭게 행동해야 될 사람을 상대로 온갖 모욕을 하고 폭력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또 40여 분간 차량이 움직이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억지로 끌어내려고 시도 하고, 차의 창을 두드려 깨뜨리려고 하는 무모한 폭력 행위를 했다.”며 “경찰은 과연 본연의 폭력예방을 위한 자신들 임무수행을 제대로 했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이것이 오늘날 법치국가라 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인가. 경찰 공권력이 이념에 따라서 진영에 따라서, 여기에는 이런 잣대로 저기에는 저런 잣대로, 그렇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것이 우리 국민들을 진영 논리를 넘어서서 통합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통치철학이 과연 제대로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는 것인가에 온통 회의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우택 의원도 당시 상황에 대해 “무법전지 대한민국이다”라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만기출소를 하는 과정에서 40분 간 이뤄졌던 과정은 테러라 본다”며 “이런 테러 행태에 대해서 우리 당이 경찰청이라든지 문재인 정부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과 정 의원의 지적처럼 김 전 실장의 출소 현장은 마치 시위 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석방을 반대하는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이 자동차로 향하던 김 전 실장에게 삿대질과 폭언을 퍼부었고 차를 막아서고 차 창을 부수는 등 폭력까지 행사했다.
 
<뉴시스>
   출소 후 첫 소환 통보
건강상 이유로 ‘불응’

 
현재 김기춘 전 비서실장 재판과 관련 1심 재판부는 “정치 권력에 따라 지원금을 차별해 헌법 등이 보장하는 문화 표현 및 활동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징역 3년 실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징역 4년으로 형을 가중했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2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에게 어버이연합 등 21개 보수단체에 총 23억8900여만 원을 지원하도록 하는 등의 ‘화이트리스트’ 혐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세월호 참사 보고와 관련해 2014년 7월 국회 서면질의답변서 등에 허위 내용의 공문서 3건을 작성해 제출하는 등 ‘세월호 보고 조작’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은 각각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병철),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이 심리를 맡고 있다.

김 전 실장은 출소 이후 3일 만에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았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 특수 1·3부는 9일 오전 9시 30분 김 전 실장을 소환 조사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양승태 행정처가 김 전 실장 등 청와대 인사위원회 명단을 따로 관리한 사실을 포착하고, 이들을 상대로 청탁이 이뤄졌는지를 수사해 왔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컴퓨터에 ‘BH’ 폴더를 만들고 청와대 관련 문건 다수를 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실장을 일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 사건에 박근혜 청와대가 개입했는지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 소환 통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9일 검찰의 소환에 불응했다. 예고된 시간을 넘겨서도 출석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김 전 실장 측 변호인은 전날 건강상 이유로 검찰 소환 통보에 응할 수 없다는 뜻을 검찰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은 지난 6일 새벽 출소한 뒤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검찰은 14일 오전 9시30분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다시 통보했다. 이마저 거부할 경우 체포영장 청구 등 강제 수단을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은 김 전 실장이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전범 상대 민사 소송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이 이 사건에 직접 개입한 정황을 입증할 만한 유력 증거를 지난 2일 외교부 압수수색에서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강제징용 사건 진행 상항을 논의하기 위해 2013년 10월 청와대를 방문한 사실도 문건을 통해 확인한 상태다.

앞서 검찰은 지난 5일 김 전 실장이 수감 중이었던 서울동부구치소를 찾아 방문 조사를 시도했지만, 김 전 실장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경찰의 상반된 태도
‘정권 눈치 보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출소일에 벌어진 폭력사태에 대해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김경수 경남지사가 댓글조작 특검 조사 후 귀가 도중 폭력을 행사한 집회 참가자를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하자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10일 천모(50)씨를 폭행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천 씨는 이날 오전 5시 20분께 서울 서초구 허익범 특별검사팀 사무실 앞에서 조사를 받고 귀가하던 김 지사에게 접근해 기습적으로 뒷덜미 등 신체를 강하게 잡아끌었다.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찰에 붙잡힌 천 씨는 건강 악화를 호소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천 씨가 병원에서 퇴원하는 대로 사건 경위와 동기를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찰에 따르면 천 씨는 이렇다 할 직업 없이 특검팀 사무실 앞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보수 성향 집회에 참가했다가 김 지사를 습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천 씨의 신병을 인계받지 않은 상태다. 향후 김 지사 측에 처벌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김기춘 전 실장과 김경수 경남지사를 대하는 경찰의 태도는 너무 상반됐다. 김 전 실장 출소일에 모여 든 시민단체 회원들은 수백 명이었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김 전 실장에게 달려들어 욕설을 퍼부었고 자동차에 탄 김 전 실장을 끌어 내리려 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은 김 전 실장 차량 앞 유리창을 파손했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행위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현행법으로 체포된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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