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유래가 없는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었다. 대통령은 업무 정지 당했고, 국무총리가 대통령 대행으로 국정을 이끌고 있다. 국회에서 압도적인 수를 바탕으로 대통령을 탄핵했던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 등 야 3당의 웃음은 하루를 못 가고 전국민적인 반발과 저항에 사면초가로 몰리고 있다. 애초 국회에서 탄핵안이 결의되기 전에 국민들의 여론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과 야당에게 사과하되 탄핵은 반대”로 요약되었다. 그것이 70% 국민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야 3 당은 이런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철저하게 당리당략에 의해 열린우리당의 봉쇄를 뚫고 힘으로 탄핵안을 가결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당리당략으로 날을 지샌 것이다. 계속되는 불경기와 신용불량자 문제, 치솟는 원자재값 문제, 청년 실업 문제 등으로 절망적이었던 국민들은 이런 정치판에 대해 극도로 분노하게 되었다. 그것은 애초 대통령 탄핵을 빌미로 지리멸렬했던 지지율을 높여보고자 했던 야 3 당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었다. 당장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결의되었던 지난 12일 저녁부터 전국에서 국민들의 분노와 정치 환멸에 얽힌 저항이 시작되었다. 서울의 광화문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에서 평화적인 집회가 열렸다.정치권의 부정부패와 무능, 지역주의 행태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에 무관심했던 국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할 정도의 분노에 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지난 주말을 계기로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이미 모든 종류의 여론 조사에서 평균 70%의 국민이 야당의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야당은 방송사의 여론조작이라 성토하고 있다. 아직도 야당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 집회 현장에 모인 수 만 명의 시민 가운데는 일부 운동권 뿐 아니라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평범한 아주머니, 한양대 총학생회장 등 23개 비운동권 대학생들, 평범한 넥타이 부대, 참여 연대, 민주노총 등 550여개 시민사회단체 등 계급과 계층, 성별, 연령을 초월한 전국민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사안이 심각한 것은 지난 87년 민중항쟁 때처럼 30~40대의 넥타이 부대들이 본격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87년 호헌철폐-독재타도 투쟁에서 당시 군부독재 정권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것은 바로 이 넥타이 부대의 힘이었다.

그런 양상이 지금의 탄핵반대 집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구호는 처음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에서 점차 “민주주의 수호”로 바뀌고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국민들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는 야당 국회의원들만의 독선이고, 이는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대변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파괴라는 것이 시민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대다수의 시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야당이 일방적으로 탄핵했다는 것에서 민주주의의 파괴를 보았다는 것이다. 야 3당은 이런 전국민적 저항을 일시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방송사의 과열 방송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4·15 총선을 치르면 야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아예 총선을 연기하거나 아니면 국회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힘을 바탕으로 아예 내각제 개헌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실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 움직임에 계속 반대했던 자민련이 마지막 순간에 탄핵 찬성으로 돌아선 것도 바로 이 내각제 개헌 밀약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관측통도 많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는 더욱 더 문제를 확대시킬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직은 평화적인 촛불 집회로 진행되고 있는 국민적 저항이 ‘민란’과 같은 폭력이 동반된 전국민적 폭력 시위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지난 14일 550여개 시민사회단체 연합으로 결성된 <탄핵무효 부패정치 척결을 위한 범국민행동> 김민영 간사는 야당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광화문 집회는 선거 전까지 날마다 열린다. 탄핵 반대 서명 운동에 돌입할 것이고, 차량 전조등 켜기나 검은 리본 달기 등 국민 항의 행동을 펼칠 것이다. 지금 촛불 집회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모금하고 있다. 만약 지금 시점에서 야당이 개헌이나 총선연기로 나온다면 그 이후의 사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그는 이어 “그 경우 시민들은 이번 탄핵 사태가 야당들의 권력 찬탈을 위한 쿠데타였음을 명백히 알게 되는 것이고, 그 경우 지금과 같은 ‘조용하고 차분한’ 항의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예측이 아니라고 해도 지금 상황은 너무 심각하다. 전국 각지에서 날마다 수만의 시민들이 모이는데, 야당이 여기서 또다시 불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한다면 그 어떤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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