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 압박하려 경제 제재 재개

“이란과 사업하는 누구든 미국과 사업 못해”
동맹국인 독일·영국·프랑스, 미국에 불만 높아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핵무기를 향한 야심을 영구적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말려죽이겠다.” 미국이 2015년 국제사회의 핵 합의에 따라 해제했던 대(對) 이란 경제 제재를 지난 7일(현지시간, 이하 같음) 복원시켰다. 이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미국은 유럽 동맹국들과의 관계 악화를 무릅쓰게 됐다. 이번에 복원된 제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8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의 핵합의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다”며 이란 핵합의 탈퇴를 선언했다. 정식 명칭이 ‘포괄적 공동행동 계획(JCPOA)’인 이란 핵합의는 2015년 7월 이란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5개국에 독일을 더한 6개국(P5+1)과 도달한 합의를 말한다. 이란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핵 합의 탈퇴를 통해 노리는 것은 이란이 ▲핵물질 농축 노력을 포기하고 ▲무기 계획을 축소하며 ▲중동에서 잔혹한 정권들이나 소요를 지원하는 것을 그만두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란 정부는 다음과 같은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협박하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행동을 바꿔 세계경제와 통합하든지, 아니면 경제적 고립의 길을 계속 가든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대이란 제재 복원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이란 핵 합의는 살인적인 독재자에게 현금을 제공하는 생명줄이 됐다"고도 말했다. 트럼프는 지난 7일에는 트위터를 통해 “이란과 사업을 하는 어떤 누구도 미국과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조처에 앞서 EU와 영국·프랑스·독일 등 JCPOA 당사국은 미국 제재 무력화법을 즉시 발동하겠다고 밝혔다. 이 법은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를 준수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미국의 제재로 손해를 입는 기업들이 EU 회원국에서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외교관들과 법률가들은 EU가 유럽 기업들을 보호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고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미국 경제방송 CNBC 등에 따르면 토탈·르노·에어버스·지멘스 등 50여 개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이란과의 거래 중단 의사를 밝혔다. EU의 방패보다는 미국의 창이 더 무서운 기업들의 이란 탈출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제 핵 사찰관들의 결론은 “이란이 JCPOA를 준수하고 있다”이다. 그리고 유럽 관리들은 JCPOA가 그들 국가의 안보에 중요하다고 말해 왔다. 영국, 프랑스, 독일 외무장관들과 EU는 지난 6일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이란과 합법적인 사업을 벌이는 유럽 경제 주체들을 보호할 결의에 차 있다”고 밝혔다. 제재를 복원시킴으로써 미국은 사실상 동맹국들에게 벌칙을 부과하고 있으며 주요 유럽 기업들에는 협소한 이란 시장과 방대한 미국 시장 중에서 택일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승용차·트럭 제조사인 독일의 다이믈러는 지난 6일 성명에서 “추가 통보가 있을 때까지, 적용 가능한 제재에 따라, 어쨌든 매우 제한적이었던 우리의 이란 내 활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이번 제재는 미국 달러화, 금, 귀금속, 알루미늄, 강철, 상업용 여객기, 석탄과 관련된 이란과의 모든 거래를 금지한다. 이 제재는 또 이란산(産) 카펫과 식료품의 미국 내 수입을 종료시킨다.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의 제재가 이란 국민, 특히 여객기 금수(禁輸)로 인한 영향을 절감할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리프는 6일 트위터에서 “트럼프 정부는 그들이 이란 사람들에 대해 걱정하는 줄 세계가 믿기를 바란다. 미국의 위선은 한계를 모른다”고 비난했다.

미국을 뺀 JCPOA 당사국 모두는 트럼프의 핵합의 탈퇴에 반대해 왔으며, JCPOA야말로 이란의 핵(核) 야망을 누그러뜨리고 종국적으로는 그것을 종식시킬 최선의 기회라고 주장해 왔다. 그들은 이란에 다시금 외부로부터 경제적 압박이 가해지면 이란 국내에서 핵 활동을 재개하자는 압력이 높아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 JCPOA는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핵물질을 축적하는 것을 2030년까지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트럼프는 그 유예기간이 충분히 길지 않다고 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JCPOA 탈퇴를 발표한 지 2주 뒤에 이란에 대한 12가지 요구를 담은 새 합의를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가지 요구에는 ▲우라늄 농축 중단 및 플루토늄 재처리 금지 ▲핵 시설에 대한 완전한 접근 허용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등 테러단체 지원 금지 ▲시리아에서의 모든 군사력 철수 등이 포함됐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런 제안을 이란은 즉각 거부했다.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은 지난 6일 미국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그들은 이란의 행동 변화를 원한다면서 이란 정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들은 미국의 제재 위협이 이미 이란 경제에 효력을 미치고 있다면서, 이란 화폐 리알의 가치 폭락, 실업 증가, 항의 시위 증대 등을 그 사례로 들었다. 일부 분석가들은, 트럼프 정부의 제재 강행이 유럽·러시아·중국으로 하여금 미국 주도의 금융시스템을 우회하는 길을 찾도록 부추길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게 되면 미국의 제재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의 이번 제재 때문에 중국과 인도는 추가적으로 화가 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중동의 강대국 이란과 상당히 깊은 경제 관계를 맺어 왔다. 많은 중국 대기업은 국영이며 미국 시장에서 존재감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란과 많은 거래를 지속해 왔다. 중국 정부는 다른 사안들에서 미국의 중대한 양보를 얻어낸다면 모를까 이란과의 경제 관계를 축소할 가능성이 없다. 인도는 이란산 석유의 최대 구매자 가운데 하나이며 이란 차바하르항(港)에 대한 거액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이런 인도에 미국은 최근 “오는 11월까지 이란 산 석유 수입을 제로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인도가 난색을 표하자 그 요구는 다소 완화됐지만 그렇더라도 인도로서는 이번 조처로 손해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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