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던 한국 경제특구 ‘강남’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IMF 당시에도 평년 수준을 유지하며 ‘강남불패’를 자랑하던 강남일대가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 국내 실물경기의 침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가계와 기업들의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어 강남권의 성역이 무너질 위기에 놓여있다. 특히 최고급 유흥업소와 전문병원, 명품점 등이 최근 매출 하락으로 영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지난해부터 침체 조짐을 보여 왔으나 최근 중국쇼크, 오일쇼크 등 경제 악재가 겹치면서 강남권의 불황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강남의 특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룸살롱, 성형외과, 유명 백화점, 명품 판매점, 고급 식당 등이 불황의 일격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이미 지난해부터 문을 닫기 시작한 룸살롱이 늘어나고 있으며 호황을 누려왔던 성형외과, 피부외과 등도 매출이 급격히 하락하는 등 장기 경기 침체로 인해 강남일대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유흥업소들은 IMF 당시보다 오히려 가격을 더 내려 보지만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어진지 오래다. 이러한 유흥업소의 침체는 곧바로 성형외과와 피부과에 일격을 가했다.실제로 전국에서 가장 성형외과가 많은 서울 압구정동의 경우, 현대백화점에서 갤러리아백화점까지 한때는 약 300여개가 자리잡고 있던 것이 현재는 실제 영업을 하는 곳이 100여곳도 되지 않는 실정인 것으로 나타났다.피부외과도 상황은 마찬가지. 강남역 부근에만 수십여개가 있는 피부외과들은 대부분 매출이 30% 이상 떨어지면서 단골과 인맥을 통한 고객 유치로 간신히 영업만 유지하는 곳도 많다. 이에 따라 보톡스 등 주름살제거 수술비용도 대폭 할인을 실시하고 있는 곳도 쉽게 눈에 띈다.

압구정동 성형외과 관계자는 “강남의 룸살롱 등 유흥업소들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주 이용고객이던 술집 종업원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며 “강남에 성형외과가 70%나 몰려있지만 정작 영업을 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전문의사들도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강남구청 한 관계자는 “현재 강남지역의 유흥업소들이 큰 위기를 맞고 있어 성형외과 등에 여파가 미치고 있다”며 “강남의 유흥문화가 호황을 누리면서 무분별하게 늘어났던 성형외과와 피부외과 등이 자생적인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명품 판매로 매출을 올려왔던 강남의 주요 백화점들의 타격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급 명품을 취급하고 있는 강남의 유명 백화점들은 최근 명품의류 등의 판매실적이 부진한 점을 감안해 핵심 점포만 집중 육성하거나 중저가 제품을 위주로 하는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백화점내 모든 점포에 대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잘나가는 점포만 이미지를 제고해 수익을 올리겠다는 전략.또 창고형 대형 마트에 뺏기고 있는 소비자들을 끌어 오기 위해 중저가 제품 위주의 마케팅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백화점 관계자는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예전처럼 백화점을 찾는 손님들이 과감한 소비를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핵심 점포를 집중 육성하거나 중저가 제품을 위주로 해 매출 향상을 기대하는 쪽으로 마케팅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강남의 고급 식당과 퓨전 레스토랑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좌석수만 500석을 자랑하는 강남의 G 한식집은 지난 99년 창업한 이후 계속 호황을 누려왔으나 최근 예전보다 절반에도 못미치는 매상으로 인해 가게를 내놓은 상황.15년 동안 서초동에서 일식집을 해오던 최모(53)씨는 “부동산에 강남지역의 식당 등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권리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게를 파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또 꾸준히 인기를 끌어오던 강남역 부근의 F 레스토랑도 매출이 20% 하락하는 등 강남일대의 식당도 전에 없던 불황으로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다.강남일대의 불황 바람은 골프연습장에도 예외는 아니다.양재부근의 한 골프연습장은 최근 이용객이 20%나 줄어 이용권 가격을 낮추는 방안도 모색중이다. 또한 골프용품 판매장도 대리점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골프용품 판매업체인 M사는 최근 강남지역의 대리점을 기존 15곳에서 8곳으로 대폭 줄이고 핵심 매장에 대해서 매장규모를 늘리는 등 대리점 구조조정에 들어갔다.강남구청 관계자는 “강남일대가 그동안 호황을 누리면서 무분별하게 늘어났던 유흥업소, 병원, 명품 판매점 등이 자발적으로 정리되고 있어 강남의 소비문화도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며 “이는 강남에서 수서, 분당, 일산 등으로 부유층 집단들이 이동하면서 강남의 소비문화도 주춤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유흥업소, 전문병원, 식당 등이 불황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강남지역 부동산에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강남의 S 부동산 관계자는 “최근 병원과 식당 등의 매물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많이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매물은 많이 나와 있으나 찾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강남지역은 지난 70년대 후반부터 정부가 강북지역의 포화상태에 따라 분산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개발을 시작해 최고의 명문인 경기고를 강남으로 이전시키는 등 각종 특혜를 주면서 현재 서울의 중심부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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