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겸손·털털한 재벌 3·4세들의 이야기가 회자된다. 아들 운동회에 청바지 차림으로 참석해 계주를 뛰고 어린이집 하원 차량에서 내리는 자녀를 위해 트레이닝 복장으로 나와 이웃주민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 등이 입소문을 통해 알려진다.

그동안 일부 재벌 3·4세 등이 안하무인 격의 행동으로 비난을 받던 것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의심도 하지만 이들 또한 사람이고 한 가정의 아버지 어머니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라는 반응도 있다.

옆집 아저씨·아줌마 이미지에 놀랍다는 이웃 주민들 제보
소통 경영 중시 풍토…일각에선 ‘만들어진 이미지’ 의심도


우선 드라마 속 재벌들을 살펴보자. 지난달 25일 첫 방송된 MBC 새 수목드라마 ‘시간’에서는 재벌 3세 천수호(김정현)와 백화점 직원 설지현(서현 분)이 악연으로 만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천수호는 설지현의 잘못된 수신호로 백화점 길을 잘못 들었다. 이에 안하무인 천수호는 설지현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버럭 냈다.

결국 설지현은 상사가 시키는 대로 “VIP 고객님인 거 못 알아보고 잘못했고요. 마이크 대고 미친놈이라고 한 거”라며 사과했고, 천수호는 “죄송하다면 표현을 해봐”라며 조롱했다.

결국 설지현은 무릎을 꿇었고, 천수호는 “그렇다고 진짜 무릎까지 꿇어. 나만 나쁜놈 되게”라며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이 모습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재벌 갑질로 논란이 불거지며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논란이 커지자 천수호는 설지현의 집 앞에 찾아 갔다.

천수호는 “여기도 CCTV가 있나? 일부러 노린 거지? 무릎 꿇어서 나 한 방에 보내려고?”라고 따지며 돈다발을 내밀었다. 화가 난 설지현은 이를 거부했다.

드라마 속 상황이지만 과거 재벌 3·4세 중에는 이와 유사한 일로 검찰 포토라인에 선 이들이 있다. 최근에는 도박·마약·갑질 등으로 검찰 포토라인과 언론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기도 한다. 이들 대부분이 기업 총수라 하기에는 어린 나이인 경우가 많아 지탄을 받는다. 이 때문에 재벌 3·4세를 빗대어 ‘어린놈의 xx가’라는 비난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재벌 오너, 고객과 사진 ‘한 컷’

그런데 최근 이런 사례와는 달리 소탈하고 겸손·털털한 재벌 3·4세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사실 여부를 궁금해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 누리꾼은 “드라마 속 재벌 3·4세는 누군가의 수행을 받고 망나니처럼 행동하는데 실제 만나보면 안  그렇다. 그냥 동네 아저씨 아줌마 같다”는 의견을 유명 포털사이드에 쓰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을 근거리에서 보좌한 경험이 있는 삼성전자 내부 직원도 같은 말을 했다. 해외 출장 시 수행비서도 없이 다니는 경우가 많고 짐도 직접 운반한다는 것. 또한 해외에서 이 부회장을 알아보고 사진을 요청하면 반갑게 인사하고 함께 사진을 찍어 준 경우도 있다고 했다.

지난 4월에도 해외 출장길에 오른 이 부회장이 유럽을 거쳐 캐나다 토론토로 이동해 시내의 한 푸드코트를 방문한 모습이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바 있다. 이 게시물에는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과 현지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첨부돼 있다.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은 사진에 ‘#이재용부회장, #카리스마, #소탈, #존경, #멋있음’이라는 설명도 함께 올렸다.

과거 서울 중구 태평로 본관 시절처럼 전용 엘리베이터를 따로 두지 않고 일반 직원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도 그의 소탈한 면모를 반영한다.

이 부회장의 여동생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식재료 등을 구입하는 모습이 일부 매체를 통해 보도된 적도 있다.

둘째 동생인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은  저녁시간 학원에 아이를 데리러 와서 학부형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데 삼성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을 정도로 털털하다는 것이다.   

연예인급 인기를 과시하며 소탈한 면모를 보인 총수 이야기도 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다. 그는 스타필드 하남이 공식 개장한 뒤 짬이 날 때마다 매장을 방문, 곳곳을 둘러보다가 자신을 알아본 내방객들이 수시로 사진 촬영 요청을 해도 싫은 내색 없이 일일이 응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정 부회장의 소소한 일상을 친밀하게 접해온 대중들이 우연히 스타필드에서 만난 정 부회장을 재벌 오너라기보다는 마치 잘 아는 연예인처럼 가깝게 느끼고 말을 걸거나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것이다.

평소 재벌 3세 경영인으로는 드물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정 부회장은 이미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도 엄청나다.
이 때문에 그를 만났던 SNS 이용자들의 계정에는 ‘매너 있게 바로 찍어주심에 감사합니다’ 등의 글과 함께 스타필드에서 정 부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다수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한 여성 인스타그램 이용자는 “창피했지만 사진 찍어달라고 했는데, 완전 몸짱에 키도 크셔서 놀랐다”는 글을 사진과 함께 올리기도 했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또한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젊은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편이다. 과한 의전은 생략하는 소탈하고 실용적 경영 스타일로 알려졌다. 

SNS를 통해 소위 ‘번개 회식’을 요청해 자리에 나온 직원들과 저녁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승연 한화 그룹 회장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는 현재 경영 수업을 받으면서 주요 계열사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한화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훈훈한 외모와 좋은 매너로 여직원 사이에서는 큰오빠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있다”면서 “경영 능력에서도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지만 생산 원가에 뛰어난 감각이 있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호평을 받는다”고 전했다.

4대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4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구광모 회장에게 쏠린 재계의 시선이 뜨겁다. 그 역시 주변과 격의 없이 지내고 소탈하고 겸손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LG계열사 한 직원은 “수개월 동안 지하 1층에서 마주쳐 얼굴이 익숙해질 때쯤 주변 동료가 ‘구본무 회장님의 아들’이라고 귀띔해줘 누군지 뒤늦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LG전자 상무로 근무하던 시절 평소 직원식당에서 동료들과 식사하고 함께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동료 직원들과 술자리에서는 자신의 고민을 스스럼없이 꺼내놓고 주변 의견을 귀담아 듣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소통 방식’ 스타일로 보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창업 1세대는 주로 가부장적인 모습이 많았다면 재벌 3·4세들의 경우는 소통경영을 중시하는만큼 주변 사람들과도 쉽게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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