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에 찬물 끼얹은 1심… 여성계 집단 반발·국회도 파장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로 사회적 파장이 거세다. ‘비서 성폭행’ 논란으로 파문을 일으킨 안희정 사건은 ‘1호 미투 재판’으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여성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도 정치적 공세가 뒤섞인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현행법’을 지적한 재판부에 대응, 법 개정 움직임도 분주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 전 지사의 사법 처리와는 별개로 애초부터 이 재판은 그의 정치적 사망을 확인하는 ‘도덕적 재판’이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력 대권 주자’였던 안 전 지사는 사법 재판에선 승리했지만, 도덕성 재판에선 치명상을 입어 향후 재기 가능성에 회의적인 전망이 나온다.
 

사법 처리 가능성 애초 희박… 정치적 치명상 확인 ‘도덕성 심판’
安 정치 재기 ‘험로’… 법 체계 개선 목소리는↑ “동의 없는 성관계 처벌”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를 받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쟁점은 ▲업무상 위력의 존재 여부 ▲존재했다면 위력 행사로 인한 간음 행위 여부 ▲그에 따른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 등 세 가지로 압축됐는데,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와 김지은 씨 관계에 대해 ‘위력은 존재하나 위력을 행사해 간음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피해를 주장하는 김 씨의 말과 일련의 행동들이 서로 ‘불일치’한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김 씨 행동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언행 불일치’ 김
安 부인 증언도 주효

 
안 전 지사의 부인이 등장하는 이른바 ‘상화원 리조트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재판부는 김 씨 진술을 “모순”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8월 안 전 지사가 아내 민주원 씨와 충남 보령에 있는 상화원 리조트에 묵었을 때 김 씨가 부부 침실에 몰래 들어왔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김 씨는 당시 안 전 지사 침실 문 앞에 앉아 있었을 뿐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했다. 안 전 지사의 휴대전화로 당시 상화원에 동반한 중국 여성에게 문자가 와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했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 김 씨는 당시 안 전 지사의 휴대전화를 수행용 전화로 착신 전환해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이 중국 여성이 안 전 지사에게 ‘새벽에 옥상에서 만나자’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만 이 여성의 문자메시지를 봤기 때문에 이같이 행동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세부적인 내용에서 김 씨 증언에 모순되는 점이 있고, 불명확한 점 또한 다수 있다”고 했다. 안 전 지사 아내 민 씨는 앞서 열린 공판에 피고인 측 증인으로 출석해 ‘문자메시지와는 무관하게 김 씨가 몰래 방에 들어와 잠자는 우리 모습을 수 분간 지켜봤다’는 내용의 증언을 한 바 있다. 결국 재판부는 민 씨 증언이 더 믿을 만하다고 인정한 셈이다.
 
재판부는 “설령 김 씨의 진술을 믿는다고 해도 한·중 관계 악화를 우려해 안 전 지사와 중국 여성 간 밀회를 막고자 안 전 지사 부부 객실 문 앞에 있었다는 것은 수행비서 업무와 관련해 김 씨가 기존에 밝힌 진술과 상반된다”고 지적했다.
 
“대법 이후 복당 논의 가능”
여성계·정치권은 ‘부글부글’

 
안 전 지사는 사법 심판대에선 벗어났지만, 거친 정치적 심판대에 직면한 모습이다. 안 전 지사의 무죄 선고에 여성계를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미투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 행동’(미투운동시민행동)과 ‘불꽃페미액션’, ‘불편한 용기’ 등 각종 여성 단체들은 안 전 지사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앞다퉈 열고 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이번 재판과 관련해 “위력이 무엇인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는 어떻게 교묘하고 악랄하게 현실에서 이뤄지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사법부의 몫인데 사법부는 이번 사건은 현행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면서 입법부로 책임을 미뤘다”며 “언제까지 여성 인권의 문제에 대해 법원은 그 책임과 몫을 미룰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무죄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부족 ▲위력 행사의 입증 부족에 더해, “현행법상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며 ‘현행 법체계’를 언급하면서 정치권에도 파장을 미쳤다.
 
현행 형법 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는데,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를 추가하거나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해 성폭행으로 인정되는 범주를 넓히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관계를 성폭행으로 인정해 처벌하는 비동의 간음죄에 관한 형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됐지만, 현재 계류 상태다.
 
한편, 안 전 지사의 사법 처리 가능성은 당초부터 희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화원 사건’이나 안 전 지사의 지상파 방송 출연과 관련된 김 씨의 언행, 김 씨의 생일을 전후한 각종 상황 등 그간 취재를 통해 접한 김 씨의 언행은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많았다. 법조계에서도 안 전 지사의 유죄 가능성은 낮게 전망했다.
 
이에 따라 애초부터 이 재판은 그의 도덕성을 심판하는 도덕 재판이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법 개선이 없는 한 2심도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이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 사건에 관한 처벌 규정이 폭넓게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는 점은 유의미하다는 평가다.
 
안 전 지사는 사법 처리와는 별개로 그의 향후 정치 재기는 험로가 불가피하다. 수하 비서와 간음을 했다는 자체만으로 정치적 치명상을 입어서다. 더불어민주당도 해당 사건에 논평을 자제하면서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다만, 당에서 “현재는 당 소속이 아니지만 대법원 선고 이후 복당 논의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정치 재기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상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