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 의견 팽팽…대한민국 화합 조짐 없나?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광복(光復), 빛이 돌아오다. 일제 강점이라는 수난을 겪은 우리 민족에게는 뜻 깊은 날이다. 광복 제73주년을 맞은 지난 15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독립의 기쁨을 누렸지만 정치권에서는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건국절’ 논란에 우리나라가 둘로 갈라졌다.

문재인 대통령 “대한민국 관보 1호가 ‘대한민국 30년’이라 표기한 것 중요해”
심재철 의원 “10년 전 李정부 건국 60주년 기념사업 해…오늘의 현실 안타까워”


“이 관보가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표기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지난 15일 국가기록특별전에서 1948년 9월 1일 발행된 ‘대한민국 관보 1호’ 감상 후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1948년에 발행된 대한민국 첫 관보에 ‘대한민국 30년’이라 적시된 것을 ‘1919년 건국’의 근거로 본다는 뜻이다.

이후 문 대통령은 “그러니 여기(대한민국 관보 1호)에 잘 설명을 담아주는 게 중요하다”며 “당시 우리 정부 뜻이 그러했다는 것”이라고 1919년 건국에 관한 입장을 확실히 했다.

이날 행정안전부 주최로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평화’를 주제 삼아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문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오늘은 광복 73주년이자 정부수립 70주년을 맞는 매우 뜻깊고 기쁜 날”이라 강조했다.

또 “정치적 통일은 멀었더라도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이라며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야 본격적인 경제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고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공고히 다졌다.

이와 더불어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 설치 ▲용산에서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하겠단 뜻을 내비쳤다.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만세삼창하는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건국 70년 vs 건국 99년
정권 교체마다 ‘우왕좌왕’
 

한쪽에서는 이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위원회 주관으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식’이 열린 것.

기념식 주관을 맡은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위원회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과 김문수 전 서울시장 후보 등이 공동대표로 있다. 심 의원은 1948년을 건국일로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다.

이 행사에서 심 의원은 “문재인 정권은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건국일이라 하며 내년 100주년을 기념하겠다고 했다”며 “10년 전 이명박 정부는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며 정부 주도로 8개 기념사업을 했다. 10년이 지난 오늘의 이 현실이 안타깝다. 문재인 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919년을 건국일로 보는 지금과 달리 지난 이명박 정권 당시 1948년을 건국일로 보는 것이 주된 역사적 관점이었음을 역설한 것이다.

또한 이 기념위원회는 앞선 9일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건국절 논란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그는 2006년 당시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 역시 당 차원에서 ‘1948년 건국절’ 다지기를 도왔다.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건국 과정의 엄연한 역사를 애써 외면하고 ‘1948.8.18.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사실(史實)마저 부정하는 문재인 정부의 역사 인식과 그 의도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윤 수석대변인 측의 논평에 따르면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과 독립운동, 1945년 일제로부터의 광복을 거쳐 1948년 UN에서 국제적으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을 받게 됐다. 1948년에 국민, 영토, 주권이라는 국가 3요소가 완결된 건국을 하게 됐기 때문에 그 시기를 건국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그는 “일제의 강점과 이로부터의 광복이라는 민족의 역사적 아픔마저도 국론분열과 이념논쟁으로 이끌고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 측도 강력하게 반박했다. 같은 날 백혜련 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1948년 건국론을 들먹이며 해묵은 이념 논쟁을 시도하고 있다”며 “광복절을 갈등의 장으로 만들어 보수 세력의 결집을 꾀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유감스럽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건국절 논란, 정치적 문제”
건국 개념 합의 부재

 
건국절 논란은 매년 시들지 않고 대두되는 논쟁거리다. 이 문제가 쉽사리 정리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관해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연구위원은 “일차적으로 건국에 대한 개념 합의가 한국사회에서 없는 편”이라고 원인을 짚었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같은 민족일 경우 단일 민족 국가를 건설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분단으로 인해 이와 다른 상황이다. 때문에 건국을 논할 때 ‘이것이다’ 또는 ‘언제다’라고 짚어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로 인해 역사적 맥락에서 어느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건국 시기를 두고 1919년과 1948년으로 다르게 보는 시선이 혼재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김 연구위원은 양측 주장에 대한 근거도 함께 설명했다. 1919년 건국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헌법의 기본 정신들이 그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시를 기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1948년을 건국절로 삼는 이들은 1919년은 임시정부였고 주권을 행사할 수 없어 나라로서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김 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에서 국가의 성립 요소로 영토, 국민, 헌법, 주권 등의 규정을 하고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1948년이 건국절이라는) 문제 제기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1948년 건국 주장에도 한계는 있다”며 “대한민국 헌법 3조에서 영토 규정은 북한까지 돼있지만, 실제로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헌법상의 지배와 실제적인 지배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 민족사적으로도 분단(상태)이지만, 헌법상으로도 일치가 안 돼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건국절의 역사적 배경을 묻자 그는 “역사학 쪽에서는 역사적 기원을 1919년에서 찾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때를 많이 지지한다”면서도 “사실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합의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뒤이어 김 연구위원은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민주주의적 사고에 입각해 각각의 입장을 두고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합의하는 올바른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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