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조조정 등을 걱정해야 한다. 농협은 권력 앞에서 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농협 직원의 말이다.역대 정권은 집권할 때마다 농협개혁을 주요 화두로 삼아왔다. 이에 따라 그간 농협은 권력의 풍향에 따라 흔들려왔다는 것이 사실이다. 농민들과 농민단체에서는 “근본적인 농협개혁을 위해서는 권력과의 유착관계를 청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요서울>에서는 농협개혁에 대해 총 5회에 걸쳐 진단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그 네 번째로 농협과 권력의 유착관계의 문제점 등을 짚어봤다.

농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유럽과 일본의 농업협동조합은 농민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만들어진 면이 있지만, 한국의 농협은 정부주도로 만들어졌다”며 “이에 농협은 권력을 쥔 정권에 좌지우지돼 왔다”고 밝혔다.현재의 농협은 5·16 군사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농업은행과 농업협동조합을 통합키로 의결하면서 비롯됐다. 이처럼 농협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정부의 통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농민단체들은 “정부와의 유착을 끊어야만 농협이 거듭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실제로 5공시절 농·축협 분리, YS정부 시절인 94년 농협법 개정, DJ정부인 99년 통합농협법 제정, 이에 따른 2000년 7월 통합중앙회 출범, 최근 참여정부의 ‘농협개혁 개정안 발표’ 등 그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협은 외풍에 흔들렸다.특히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농협은 구조개혁에 시달려야 했다.

농·축협 분리 및 통폐합이 대표적인 사례다. 농협은 80년 군사독재하에서 밀실결정에 의해 ‘농·축협’으로 분리됐고 DJ정부 때 다시 농·축협이 통폐합됐다. 농협 관계자는 “농·축협 분리·통합 등과 같이 정부가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농협의 현주소”라고 한탄했다. 이와 같은 권력과 농협의 유착관계는 농협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다. 농협은 정부의 농정정책을 지원하고 대행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림부 등 정부의 통제에서 자주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민노당의 한 관계자는 “농협은 정부의 농경사업을 대행하면서 수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대신 대행업무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정부의 농업정책자금 이자로 충당하고 있다. 이런 구조속에서 정부의 정책자금을 계속해서 유치해야 하는 농협은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정책자금 유치’ 뿐 아니라, 시군 공금고 유치과정에서도 농협과 권력의 유착관계가 생기고 있다는 분석이다.농협중앙회는 ‘농업·농촌 지원’을 명분으로 상당수의 시군 공금고를 유치해왔다. 시군 공금고의 유치 여부는 해당 농협의 업무 평가 및 지역 본부장·지부장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다.한 지역농협 관계자는 “지역자치단체의 공금고 유치를 위해서 농협 관계자들이 지자체 단체장 및 공무원에게 매달리고 있다”며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 단체장의 행사에 참석, 식대 및 선물대를대신 부담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이로 인해 농협 예산이 낭비된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지역농협 관계자는 “시군 공금고 유치를 위해 선거 때에는 농협 관계자들이 유력후보에 줄서기 및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며 “지역조합장들도 유력 지자체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조합장의 도움(?)으로 당선된 지자체 단체장은 다시 조합장선거에서 다시 보답하게 된다. 한마디로 win-win 전략인 셈이다”라고 폭로했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시금고 유치와 관련한 각종 비리가 생겨나고 있다. 이런 시금고 유치는 중앙회가 아닌 지역농협에서 관리해야 한다”며 “또 그 이익은 농민들에게 환원돼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농협의 인사문제에서도 권력과의 유착관계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농업협동조합 노조(이하 전농노조)의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림부의 퇴직 임원이 농협중앙회의 이사나 감사 등으로 옮기는 사례가 빈번했다”며 “이런 구조속에서 농협이 정부로부터 자율적일 수 있겠는가. 노조 등의 계속적인 문제제기로 이런 폐단은 없어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현정부들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돈 배모씨의 농협 자회사 임원 임명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사돈 배씨는 경남 김해 지역농협 전무 출신이다. 농협중앙회 자회사인 농협CA투자신용은 노 대통령의 사돈 배씨를 지난 2003년에 감사로 임명했다. 노 대통령의 아들과 배씨의 딸이 결혼(2002년 12월)한 지 불과 몇 달만의 일이다.

이를 두고 농협안팎에서는 ‘지역농협 전무출신이 농협중앙회 자회사 감사로 간 것은 전례 없는 특진’이라며 논란이 불거졌다.이에 대해 농협측은 “배씨의 경우, 능력이나 경력 면에 조건이 맞아 임명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오얏나무 아래서 갓 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수많은 지역농협 임원출신 중 대통령의 사돈 배씨가 뽑혔다는 점에서 “농협의 이번 인사는 논란의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다.여기에 참여정부 초기 농협은 ‘썬앤문 115억원 불법대출 문제’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당시 일각에서는 ‘불법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정권 실세가 입김을 행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다행히 검찰과 특검, 그리고 국정조사과정에서 “농협 불법대출에 정권 실세가 개입한 증거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면서, 농협은 부담감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농협안팎에서는 “이번 불법 사기 대출 사건에 대해 책임규명을 명확히 해야 할 문제”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LG카드 지원문제 등도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말 LG카드 지원문제를 놓고, 정부와 시중은행간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당시 국민·외환·한미은행 등은 LG카드 지원을 놓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반면, 농협은 정부의 LG카드 지원정책을 따랐다.이에 대해 농민단체 등에서는 “시중은행들이 주주들을 의식해 LG카드 지원에 난색을 표시한 것처럼,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농협도 정부의 지원정책을 거부했어야 했다”며 “특수은행인 농협이 정부의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역농협 관계자도 “손실이 예상되는 LG카드에 계속된 지원은 안될 말이다. 수천억원에 이르는 손실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정부가 농협중앙회와 일선지역농협에 이를 떠넘기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이 관계자는 “중앙회가 상호금융특별회계(지역농협 이익금) 등으로 LG카드에 지원한만큼, 손실금은 지역농협과 조합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LG카드 지원은 자체적인 판단에 의한 것으로 LG카드가 빠르게 정상화되는 만큼, 손실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농업인들의 자주·자율적 협동조직인 농협이 권력과의 유착관계를 끊고, 새롭게 거듭날지 관심 있게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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