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 기업들은 정중동’.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 등 73개 국가기관의 신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발표된 가운데, 재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대기업들은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 본사 및 계열사 이전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기업들은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한 정보수집 및 부동산 시세, 다른 기업동향 등을 분석하며 대책마련에 착수했다.“행정수도 이전을 놓고 시민단체와 야당 등의 반대가 거세게 일고 있는데, 기업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충청지역 공략에 나서게 될 것”이란 게 재계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청와대 및 재경부·산자부 등 경제부처의 신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발표되면서 기업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기업으로서는 정부정책에 따라 사업이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각 기업들의 본사 및 계열사의 이전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정부는 수도권 밀집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 기업들의 지방 이전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수도권은 제조업체의 56.7%, 공기업 본사 85%, 그리고 100대 대기업 중 92개사가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행정수도 이전으로,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이에 삼성·LG·현대차 등 대기업들은 “수도 이전에 따라 본사 및 계열사 이전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으면서도, 수도 이전과 관련한 대응방안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수도 이전과 관련해, 그룹 차원의 대응책은 아직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도 이전과 관련한 삼성의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삼성의 주력사인 삼성전자 대전·충청권 공략에 나선 지 이미 오래다. 지난달 23일에는 이건희 회장이 행정수도 이전 부지 인근의‘천안·탕정 사업장’을 전격 방문, “이 지역을 세계 최고 크리스탈 밸리로 육성하라”고 지시했다.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삼성은 반도체, 휴대폰과 함께 차세대 캐시카우로 떠오른 고부가가치 디스플레이 사업육성을 위해 천안·탕정에 총 20조의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을 계획이다.이는 천안과 아산지역을 중심으로 그룹차원의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에 따라 행정수도 이전과 맞물려, 삼성의 주력 사업이 천안·탕정 등의 지역으로 집중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물산·삼성SDS 등 여타 계열사들도 충청지역 공략에 나서고 있다. 삼성 SDS는 지난 2002년부터 대전사무소를 대전지점으로 승격시키고, 이 지역에 대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삼성물산도 행정수도 이전이 본격 추진될 경우 건설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보고,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행정수도 이전이 확정되면, 건설 수주를 따내기 위해 회사 차원의 대대적인 전략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청권에 연고를 두고 있는 한화의 행보도 관심거리. 한화는 행정수도 이전문제가 불거진 지난 대선 때부터 “본사 및 계열사가 충청지역으로 이전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대해 한화 관계자는 “사업 기반이 서울에 있기 때문에 본사 이전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화는 지역 연고를 내세워 총청지역 공략에 적극적이다. 이와 함께 사업 확장을 위한 정보 수집 및 기업동향 파악 등의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실제로 한화건설은 대전시와 함께 대덕테크노밸리를 조성하고, 중소·벤처기업의 이전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향후전망과 여론을 예의주시하며, 충청지역 공략에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현대차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회사 내부적으로 어떤 방침도 정해진 것이 없다”며 “다만, 행정수도가 본격적으로 이전되면 인구유입 등을 고려, 이 지역에 대한 마케팅 활동을 대폭 늘려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불거지면서, 기업들은“본사 및 계열사 이전 계획은 없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면서도 물밑작업이 한창인 것이다.대전시 관계자는 “대전·충청권으로의 기업 이전을 문의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이중에는 대기업들도 본사 이전을 문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를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충남도 관계자도 “천안·공주 지역을 중심으로 대기업 계열사 이전 문의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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