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용인가, 전문성을 강조한 것인가’.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권력기관 고위직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 감사로 임명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삼성·LG·기아차·대한항공 등 주요기업들이 국세청, 금감원, 청와대 출신 공무원과 법조계 인사 등을 감사 및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들 인사들이 로비스트로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기업의 ‘감사’직은 기업의 재산상황을 감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막강한 자리다. 여기에 감사는 회계상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면, 이를 주주총회 등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그런데 최근 기업의 ‘감사’자리가 본래의 기능보다는 ‘로비용’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 등 굴지의 기업들이 국세청, 금감원, 청와대 등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과, 법원 부장판사, 대검찰청 중수부장 등 소위 잘나가는 인사들을 영입해 감사로 임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증권거래소가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에게 제출한 ‘상장회사 감사위원 내역’에 따르면 126개 상장기업에서 활동중인 394명의 감사중 97명(24.6%)이 공무원 출신인 것으로 집계됐다.지난해의 경우 공무원 출신 감사는 27명(판사출신 20명 제외)에 불과했다. 따라서 올들어 공무원 출신 감사는 50명이 늘어났으며, 작년보다는 2배가량 늘어났다.이중 국세청 출신이 지방국세청장을 지낸 11명을 포함해 15명, 판사·검사출신이 20명, 청와대 출신이 4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금융감독원과 감사원등을 포함해 감독기관에 종사했던 이들은 26명이었다.

LG의 경우 올해 고위 관료 출신영입에 가장 공을 들인 기업 중의 하나. LG전자는 진념 전기획예산처 장관을 감사로 선임했다. 여기에 (주)LG는 김용진 전 과기부 장관, LG화학은 박호군 전 과기부 장관 등을 감사 및 사외이사로 각각 영입한 바 있다.두산중공업은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장관을 감사로 선임했으며, 대교그룹은 전 대검중수부장을 역임한 심재륜씨를 감사로 임명했다. 특히 각 지방의 세정을 책임지는 지방국세청장 간부 출신 중 대기업 감사로 재직중인 사람은 모두 10명으로 드러났다. 주요 인사를 보면, 서울지방국세청장 출신으로 황재성씨는 삼성전자의 감사로, 김종창씨는 기아자동차 감사로 영입됐다. 중부지방국세청장 출신인 박석환씨는 삼성중공업과 신세계의 감사로 영입된 바 있다.

이외에도 대전지방국세청장 출신인 조원제씨는 LG산전에, 대구지방국세청 출신 최병윤씨는 삼성SDI, 서상주씨는 삼성물산에 각각 영입됐다. 부산지방국세청장 출신으로는 김종상(대한항공·KT)·장세원(S-OIL)씨가 있다. 이들 10명 중 5명이 삼성계열사에서 감사로 활동 중이다.또 삼성화재해상은 금감원 출신 공무원을, LG상사는 청와대·전직 장관출신의 공무원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법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대선자금 수사 등으로 그룹 총수들이 곤욕을 치르면서, 법조계 인사들의 영입이 부쩍 늘고 있다. LG화재는 최춘근 전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영입했으며, 현대자동차는 전 서울민사지방 법원 부장판사를 받아들였다. 여기에 동국제강은 윤용섭 전 서울지법서부지원 부장판사를, CJ는 김권택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KTF는 이재철 전 수원지법 부장판사, KT&G는 소순무 전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을 영입,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기업들의 이같은 법조계 출신 인사 영입은 사법부와의 원활한 관계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하다.한편, 대기업들이 관료출신 공무원을 대거 감사로 영입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코스닥 등록 기업들은 전직 공무원 출신들을 감사로 선임한 경우는 10여명에 불과했다.김재경 의원은 “대기업들이 고위관료출신을 대거 감사로 영입한 것은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로비스트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투명한 기업감사를 위해서는 특정직급 이상의 공직 출신 간부는 일정기간 동안 기업의 감사 임용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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