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구축함(KDX-Ⅲ, 이지스함) 1번함 선정 입찰에서 군과 기업 간의 유착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번 입찰에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 3개 기업이 참여했고 이중 현대중공업만이 적격심사에 합격해 낙찰받으면서 국방부·해군과 현대중공업 간의 전략적인 관계가 형성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것. 특히 해군 내에서 노른자위 요직을 맡았던 윤광웅 현국방부장관이 현대중공업 고문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고 현재 현대중공업에 해군 장성 출신 3명이 포진돼 있어 유착 의혹이 더욱 짙어지고 있는 상황이다.지난 87년 잠수함 사업자로 선정돼 10년 동안 잠수함 시장을 독점해온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97년 제2차 잠수함 사업자 선정에서 현대중공업에 자리를 내줬고 이번 입찰에서 탈락하면서 구축함 사업도 현대중공업에 넘겨줄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은 법원에 ‘건조계약 체결 금지 가처분신청서’를 내고 해군의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대우조선측은 “최저가로 입찰에 참여했고 이에 따라 적격심사 1순위가 됐지만 해군이 가점 항목으로 넣기로 했던 ‘최근 5년간 함정사업 평가’ 항목을 갑작스럽게 빼면서 85점 기준에 1.2점이 부족해 탈락했다”며 “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했다는 이유로 가산점을 주고 대우쪽에는 항목 자체를 제외시켰기 때문에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최고 3점의 가산점이 주어지는 ‘최근 5년간 함정사업 평가’ 항목은 현대중공업의 경우 현재 구축함 인수 실적이 없어 해당이 없지만 대우조선은 지난해 11월 이순신함을 인도했기 때문에 평가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11월 인도한 이순신함의 건조사업 참여자 및 함승조원 15명 이상에 대해 자료를 만들어 제출했지만 결국 평가도 받지 못한 채 가점 항목에서 제외된 것.하지만 해군측은 해군의 전력화 평가가 함정 인수 후 최소 1년이 지나야 심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순신함은 평가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는 입찰과정에서 군과 기업 간의 유착 관계가 형성돼 로비를 통해 현대중공업이 낙찰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특히 지난 7월 29일 임명된 윤광웅 국방부장관은 지난 2000년께 현대중공업 고문을 맡았다는 사실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윤 장관은 해사 20기로 해군에서 전투발전단장, 작전사령관, 참모차장 등 요직을 맡았으며, 청와대 국방보좌관을 지낸바 있다.재계 일각에서는 윤 장관이 현대중공업 고문 출신이라는 점에서 해군 재직시절의 인맥을 동원했을 경우 이번 입찰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또한 현재 현대중공업 내에 해군 장성 출신이 3명 포진해 있어 현대중공업이 이들을 통해 해군과 전략적인 관계를 형성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져 나오고 있다.현대중공업에는 해군 1성급 임모 전무, 2성급 변모 상무, 1성급 임모 이사 등 3명이 특수선 부문에서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해군 1성급 이모 고문 1명이 포진해 있다.현대중공업이 이지스함에 대한 기본 설계를 했기 때문에 해군이 현대중공업을 선호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재계에서는 이러한 선호 성향과 더불어 윤 장관이나 해군 장성 출신 현대중공업 임원들이 문제의 가점항목에 대해 문제제기 이후에 제외해달라는 요청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군 출신을 조선업계에서 영입하는 이유는 이들이 실제 구축함이나 잠수함 등을 지휘하고 관리해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실무진으로 포진시키는 경우는 많다”며 “장성급의 경우 함정 관리를 해본 경험도 있지만 대정부 및 대군 로비스트 역할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그는 또 “최근 정부 입찰이 전자입찰제 도입 등으로 투명성이 강화됐지만 군 출신이나 정부 관계자들과의 인맥을 잘 쌓아 놓으면 그만큼 유리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이번 입찰에서 대우조선은 지난 8월 9일 오전 9시 50분 경 부적격 통보를 받았고 현대중공업은 같은 날 낮 12시 경에 적격통보를 받으면서 현대중공업에 대한 별도의 적격심사가 이뤄졌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가점 항목에서 기본 설계를 했기 때문에 1점의 추가 점수를 획득해 87점 정도를 받아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대우조선 관계자는 “해군이 대우조선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리고 2시간 정도 지난 후에 현대중공업에 대한 적격 판정을 내렸다는 것은 현대측에 대해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심사를 아예 안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지난해 이순신함을 인도하면서 구축함 사업자로 가장 적합하리라 예상했으나 이지스함에 대해 기본설계를 했다는 이유로 해군이 현대중공업에 대해 노골적으로 선호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이에 대해 해군측은 이지스함에 대한 기본 설계를 현대중공업측이 했기 때문에 공정한 판정이 이뤄졌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방위산업에 대한 입찰도 과거와 달리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군과 기업 간의 유착관계를 논하는 것은 악의적인 의도의 루머에 불과하다”며 “국방부와 해군에 대한 로비 부분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현대중공업은 지난 87년 제 1차 잠수함 사업에서 고배를 마신 이후 고 정주영 회장의 숙원사업이던 군함 사업에 박차를 가해 지난 2000년 대우조선을 제치고 제 2차 잠수함 사업자로 선정됐고, 이번에 이지스함 입찰에서도 유일하게 적격심사에 통과해 내달 해군과의 계약을 남겨두고 있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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