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협치 내각’이 물 건너가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는 최근 회동을 통해 분기별 여야정 협의체를 열기로 했지만 ‘협치’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멋쩍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정권을 잡기 위해서 혹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 최고 권력자들은 ‘협치’니 ‘연합’, ‘연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1997년 DJP 연합이 있었다. DJ는 호남과 충청을 아우르는 DJP연합을 통해 정권을 거머질 수 있었지만 권력 분점은 오래가지 못하고 실패했다. 2005년 7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선거구제 개편을 고리로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총리 지명권과 조각권까지 넘기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야당은 단칼에 제안을 거부했다. 후폭풍은 거셌다. 지지층이 돌아서면서 참여정부의 쇠락이 본격화됐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결국 ‘대연정’을 철회하고 잘못된 제안이라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7년 5월 조기 대선에서 대연정론은 다시 등장했다.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로 나선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속했던 정당과 ‘대연정론’을 주장하면서다. 하지만 안 전 지사의 대연정 발언으로 안 전 지사 지지층마저 돌아서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턱밑까지 추격하던 기세는 끝이 났다.

그로부터 다시 1년 2개월이 지난 7월 말 청와대는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야당에게 장관 한두 자리를 제안하면서 ‘협치’를 제안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실패를 지근거리에서 목도한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해 관심을 모았다.

문 대통령이 제안할 당시 7~80%대에 육박하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은 급속히 추락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50%대 중반까지 무너지면서 국민과 언론, 대야 관계 허니문은 사실상 끝났다는 게 정설이다. 게다가 여소야대 정국 역시 개혁입법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장관 한두 자리를 야당에 내주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리라.

하지만 야당의 반응은 냉담했다. 여당 2중대로 불리는 민주평화당 역시 문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결국 대통령의 면을 세우는 차원에서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여야정협의체 신설에 합의해 줬다. 이래저래 과거 대연정과는 차원이 다른 제안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 역시 실패한 제안이 된 셈이다.

국민 다수는 ‘협치’를 원한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층은 다르다. 권력의 대표성을 대통령에게 주고 책임정치를 구현하길 바란다. 문 대통령은 고민은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민주당 지지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오른 그다.

하지만 대통령에 오른 이상 보수, 진보, 지역을 떠나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 바쁜 국민들과 정치 일정에 바쁜 지지층 사이에서 문 대통령은 한 번 쓴맛을 본 셈이다. 대한민국 정치구조가 ‘승자독식 체제’이고 ‘제왕적 대통령제’하 양당제라는 점에서 내각제에 부합하는 협치나 연정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지층만 보고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게 대통령의 현실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이 여야 정치꾼을 보지 말고 그 뒤 침묵하는 다수지만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합하려는 정치와 정책을 계속 시도해야 한다. 이제 한 번 실패했다. 진정성을 보여주기에는 한 번은 부족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한 번에 넘어가는 나무는 더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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