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포카혼타스’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는 건물 정비원, 어머니는 전화 교환원이었다.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던 시대가 미국에도 있었다는데 그 시대에 대학엘 가고, 결혼을 해 애 엄마가 되어 강단에 섰으며, 파산법 전문가로 명성을 날렸다.

파산 위기에 놓인 미국인들을 위해 금융소비자보호국을 만드는 데 앞장섰으나 공화당과 월가의 반대에 부닥쳐 초대 국장 취임이 좌절되고 매사추세츠로 날아가 상원의원이 되었다. 워싱턴으로 돌아온 그녀는 낙관주의를 잃어버린 미국을 다시 기회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이면서 민주당 내 진보 블럭의 희망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종종 트럼프에게 포카혼타스라 불리는 농담으로 모욕을 당해 왔다. 맺힌 원한은 잊지 않으며 이익이 되는 사람은 자기 편이지만, 나머지는 적이거나 이용 대상에 불과하다는 세계관을 가진 것이 분명한 트럼프에게 엘리자베스 워런은 자신의 재선을 위협하는 명백한 적이다.

트럼프가 워런을 포카혼타스라고 모욕하는 것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그려진 광대뼈와 찢어진 눈을 가진 이방인에 대해 혐오의 정서를 덧씌우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포카혼타스는 17세기에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추장의 딸로 태어나 영국인 존 롤프와 결혼해서 런던 사교가의 유명인사가 된 여성이다. 그녀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영국 정착민들 사이에서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녀를 불확실한 경계를 넘어 이민족 간에 협력과 평화를 가져왔던 명예로운 사람으로 기억한다. 지금 미국인들은 포카혼타스의 명예로운 삶이 필요한 극단의 분열시대를 살고 있다. 포카혼타스는 트럼프 같은 무뢰한이 함부로 정적을 모욕하는 데 동원할 만한 이름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워런이 포카 혼타스의 삶을 재현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실 워런은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에 맞서 민주당 주자로 나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저지할 기회도 있었다. 워런은 많은 지지자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불출마를 선택했지만 트럼프의 저격수로 힐러리를 도왔다.

지금은 그녀가 ‘싸울 기회’라는 자서전에서 밝힌 대로 “미국이 다시 성실하게 원칙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기회의 땅이 되도록 돕기 위해” 트럼프의 재선을 막을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이자 최초의 여성 대통령감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에서 멀리 떨어져 폭염으로 한껏 달궈진 극동의 분단국가에도 여성 정치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 정치역사상 최초로 탄핵을 당한 대통령도 여성 정치인이고, 그녀를 탄핵시킨 야당의 대표도 여성이었다. 심지어 탄핵 결정문을 읽어 내린 헌법재판관도 여성이었다.

20대 국회에서는 51명이나 되는 여성의원이 당선되면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사실 워런이 활약하고 있는 미국 의회도 여성 의원 비율이 19%에 불과해서 17%인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은 형편이다. 여성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빨랐으니 약간 우월감을 가져도 좋겠다.

하지만 미국보다 빨랐던 이름을 언급할 수 없는 그 여성 대통령이 유리천장을 깼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시간이 흐를수록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와 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 그 사람이 여성 정치에 드리운 암운은 쉽게 걷어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민주화 시대의 한국 정치는 남성성이 빛나는 영웅서사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기에 YS도 DJ도 노무현도 문재인도, 심지어는 이명박과 박근혜도 그런 서사의 틀 안에 있는 존재들이다.

엘리자베스 워런이 미국에 포카혼타스를 재림시킬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지만 우리에게도 워런처럼 우리 손을 잡고 “난 엘리자베스란다. 상원의원 선거에 나왔어. 그게 바로 여자가 할 일이거든”이라고 낮고 단호하게 속삭여 줄 여성 정치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무진 국회 보좌관>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