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란의 육신오행

코란은 육신오행(六信五行), 즉 여섯가지를 믿고 다섯가지를 실천하도록 가르치고 있다.육신(六信)은 유일신 알라(Allah, 하나님)를 믿는다, 천사를 믿는다, 예언자를 믿는다, 성서를 믿는다, 최후의 심판일과 부활을 믿는다. 정명(定命) 즉, 천명(天命)을 믿는다 이고, 오행(五行)은 신앙의 고백(Shahada) 즉 “라 일라 일라 라”(알라 외에는 어떠한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믿고 외우며, 예배(Salah) 즉 메카를 향해 매일 하루 다섯 번(새벽, 정오, 오후, 일몰 직후, 저녁)기도를 하며 기도 때마다 새벽에는 2번, 정오와 오후 및 밤에는 4번, 일몰 때는 3번 절하는 예배를 하며, 이슬람세(稅)(Zakat) 즉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자선사업이나 사회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신도들이 내는 일종의 세금으로 순수 이익금중 최소한 2.5%이상을 내야 하는데 이는 이슬람인들의 자선행위인 동시에 의무이다.

그리고 단식(Soom 또는 Siyam) 즉 이슬람력 9월(라마단) 한달 동안 새벽기도 시간부터 일몰시까지 일체의 음식이나 음료수, 물을 먹거나 마실 수 없으며 흡연과 성관계도 피해야하며, 성지순례(Hajj) 즉 경제적인 능력이 있고 신체적으로 건강한 무슬림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일생에 한번은 반드시 성지순례를 해야 한다고 코란은 명시하고 있다.그리고 이슬람 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금기사항으로 되어 있다 이슬람 전역에 걸쳐 간음과 매춘행위, 음주, 돼지고기 판매, 이자놀이 등이 생활의 금기로 되어있으며, 신앙생활을 해치는 가무나 요란한 음악, 영화 등은 허락이 되지 않고 있어 학교에서도 음악과 무용 등의 교육과목은 아직도 없다.

남녀간 내외를 엄격하게 지켜 여자가족에 대한 안부를 묻거나 관심을 표시해서도 안 되며, 여인의 사진을 찍거나 말을 거는 등 접근은 삼가야한다. 왼손은 불결한 것에만 사용하고 깨끗한 일은 오른손으로 하기 때문에 악수를 한다거나 물건을 주고받거나 음식을 먹을 때에는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옷차림은 남자들은 외출할 때 Thobe라고 하는 하얀색의 전통복장과 Goutra라고 하는 흰 바탕에 붉은 체크무늬 또는 흰색 천을 머리에 두르며, 여인들은 남성들의 유혹을 예방하기 위해 Abaya라고 하는 검정 옷과 Hijab(베일)라는 검은 머플러로 머리와 얼굴을 가린 후 외출을 해야 하며, 외국여인들에게도 착용을 요구하고 있다.권유받은 선물이나 음료, 음식 등은 거절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집으로 초대를 받았을 때에는 세 번 이상 거절하면 예의상 곤란하며 이 경우에는 반드시 답례를 하는 것이 좋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찾아오는 손님에 대해서는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이 예의이며 미덕으로 간주하고 있어, 속담에도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찾아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인적이 드문 사막의 생활환경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반갑다는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종교 예식상 공덕을 많이 쌓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이슬람에는 여러 교파가 있는데 사우디는 수니파 가운데 함발리 학파의 와하브파가 지배적이다. 이 종파는 18세기 사우디에서 일어났고 그 계율은 이슬람 세계 중에서 가장 엄격하다.지금도 사우디에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금주를 강제하고 있고, 우상숭배도 배격하고 있으며, 미술에 사람이나 동물을 그리지 못하도록 하여 기하학적인 다양한 서체예술이 발달하였다.

한국과 사우디의 교류

우리나라와 사우디는 신라시대부터 교류가 있었다고 학자들을 말하고 있다.처용설화에 나오는 처용을 아랍에서 온 무슬림 상인으로, 그리고 아랍 상인들이 신라와 교역을 하기 위해 한반도의 울산항을 왕래했다고 한다. ‘고려사’에는 1024년(현종 15년)9월 대식국(大食國) 상인 열라자(悅羅慈) 등 100명이 방물을 헌납했다는 기록과 이듬해 1025년 9월에서도 하선라자(夏詵羅慈) 등 100명이 방물을 헌납했다는 내용이 있다.중국문헌이나 고려사에서는 아랍 국가를 대식국으로 기록하고 있고, 중국인들은 아랍상인을 대식이라 하였는데 이는 상인을 아랍어로 Taajir라고 하는데 중국어 음역으로는 Tashi로 발음되면서 대식으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예언자 무하마드는 소식(小食)을 강조하였다.

위의 1/3은 음식으로, 1/3은 물로, 1/3은 위가 숨쉴 수 있도록 공백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어 아랍인들은 중국이나 한국 문헌에 나온 것처럼 대식가는 아니고 서구인들에 비하면 소식가들이다.그리고 코리아의 유래와 관련 아랍학자들은 아랍상인들이 중국과 교역을 하면서 고려를 자주 찾게 되었으며, 이때 고려를 쿠리아(Kuriya)로 표기한 발음이 오늘날 코리아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아랍인들의 왕래가 많았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아랍과 교류가 활발하지 못하였는바, 이는 조선의 쇄국정책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50년 6월25일에 일어난 한국전쟁에 터키군이 UN군의 일원으로 참전을 하면서 이슬람이 한국에 최초로 전래되는 계기가 되었다.

55년 10월 한국 무슬림 협회가 설립되고, 69년 3월 문공부로부터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로 인가를 받아 70년 9월 정부는 재단법인에 이슬람 사원 건립용 부지 1,500평을 기증, 76년 서울 이태원 기증 부지에 한국 최초의 이슬람 사원이 건립되어 현재 교인이 4만여명에 달하며, 한국외국어대, 명지대, 부산외대, 조선대 등 4개 대학에서 아랍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있다.사우디는 한국의 가장 큰 해외건설 진출 시장으로, 1973~86년에는 80여개 업체가 1,200여건의 건설공사를 수주, 수주액이 480억 달라에 달하였는데 그 당시는 매년 20만여명의 한국인이 사우디에서 일을 하였다. 그러나 사우디의 전통적인 생활습관과 문화로 인해 한국인들이 그간 수교이후 500만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사우디를 다녀왔으나 사우디 문화에 대한 이해는 아주 부족한 실정이다.

양국 국민 간 민간 교류 증진을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사우디 친선협회에서는 금반 월드컵 축구팀 교류를 계기로 과거 사우디에 살았던 분들에게 “홈 커밍 투어(Home Coming Tour)” 프로그램 주선, “사우디 생활 수기 출판” 및 “사우디 근로자 사진전시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 열사의 나라에 심은 “한국 혼”이 오늘날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그때를 살아온 “사우디 정신”이 불황 탈출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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