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발한 해외진출

60년대 이전에는 강제로, 아니면 국내에서는 살 수가 없어 타의로 해외 이주를 하였다면, 70년대부터는 외화를 벌기 위해 자의로 가족들을 데리고 해외 진출을 한 것이 다르다고 할 수가 있다.80년대 ‘중동 붐’은 한반도의 한계를 뛰어넘어 국제화 시대에 적응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을 한다는 적극적인 사고가 오늘날 2,000억불 수출에 기여를 하였다고 해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88올림픽을 전후하여 추진된 북방정책으로 공산권 국가들과의 교류도 증대되었다.그 당시 수교관계가 없었던 공산권 국가 14개국에 많은 기업인들이 진출을 하였다.우리의 상품을 팔고 투자를 하기 위해, 일부는 관광과 이산가족을 만나기 위해 많은 왕래를 하였다.우리는 이 시기에 이렇게 외국 진출을 통해 개방의 필요성과 함께 해외에서 한민족의 우수성을 확인하면서 국제 민족주의를 알게 되었다.이러한 해외 진출 필요성과 개방 및 국제 민족주의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한국인이 능동적으로 사우디에 진출을 한 것이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슬람 강대국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우리가 말하는 중동은 지역적으로 아라비아 반도와 그 주변을 일컫는 말로 우리나라 원유 수입의 75%를 차지하는 국가들로 터키와 이란이 포함된 23개국이다.아랍은 아랍어로 유목민이라는 뜻으로 유목민적인 전통과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연맹(AL) 21개국에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22개국이다.이슬람(Islam: 유일신 알라만을 경배의 대상과 구원의 실체자로 믿는 종교. 자연의 섭리, 순종, 복종이라는 의미도 있다) 국가는 OIC(이슬람회의 기구) 가입 62개국(회원국 54개국, 옵서버국 5개국)으로 중동, 아랍 보다 더 광범위하다.우리에게 자원 강국으로만 알려진 사우디가 2차례의 이라크 전쟁을 겪으면서 이슬람권에서 정치 강국으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사우디는 OIC(설립: 70.3 젯다) 본부가 있는 국가로, 걸프 지역 6개국(GCC)과는 안보협력을 주도하고 있다.최근 국제 테러에서 해외 거주 사우디 국적자 가담 및 사우디 내에서도 테러가 발생,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문제가 확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 된다.

“하느님이 그대를 보내심은 만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 이니라(코란21-107)” 라는 계시를 통해 국제문제에 대해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면서 종교와 민족에 상관없이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종교적인 율법으로 테러를 못하도록 가르치고 있어 테러를 하는 자는 이슬람을 가장한 테러 집단이라고 이슬람 국가에서는 비난하고 있다. 성지가 있는 사우디를 찾는 이슬람 인들은 모두가 형제이며, 이들은 만나면 앗쌀람 알레이꿈(당신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이라는 인사를 나눈다. 최대 석유 수출국 사우디는 고유가로 인해 경제 강국이 되고 있다.한국인들은 지난 80년대 성실하게 사우디 재건 사업을 도와, 지금도 사우디에서는 한국인들을 부지런한 사람으로 신뢰하며 한국인들을 좋아 한다.나는 요르단 왕국과 사우디에서 살다 최근 귀국을 하였다.

중동 국가에서 무슬림(Muslim: 경배의 대상과 구원의 실체자를 유일신 하느님으로 믿는 신앙인)들과 함께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왔다.무슬림들은 가족 제일의 사고를 가지고 있고, 행동이 느리고, 운명론적인 사고가 강하며, 의심이 많다고들 한다. 그러나 한편 자부심이 강하고, 위엄과 예의를 중시하며, 단순하고 보수적이나 인내심이 강하다.상대를 배려할 줄 알고 자선을 베풀기를 좋아하며, 전쟁이 나도 매점매석을 하지 않으며, 우리나라 양반처럼 자신에게는 엄격한 국민이다.남북이 분단된 우리는 사우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73년 말경 1차 석유파동 때 우리나라 대통령 특사가 사우디를 방문하였을 때, 국왕은 한국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며 협조를 하고 방한을 약속하였으나, 우리나라 대통령의 사망으로 실현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에게 신바람 나는 삶을 살게 해준 사우디를 기억하며 앞으로 정부 차원은 물론 민간차원의 교류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사우디의 전통적인 율법으로 인해 그 많은 한국인들이 사우디에서 살았지만 우리는사우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랍 문화에 대한 이해와 교류를 증진시키고, 사우디에 진출하였던 500만 기업인들과 근로자들이 열사의 나라에서 일한 것이 부끄러운 삶이 아니고 가난한 국가에 대한 애국이며, 자식과 후손에게는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어떠한 어려움도 용기를 가지고 극복을 할 수가 있다는 ‘사우디 정신’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 ‘한국-사우디 친선 협회’를 설립 하였다.전쟁으로 한국을 지켜준 국가들이 ‘우리의 혈맹’이라면, 우리에게 신바람 나게 일하도록 하여 가난을 극복하게 해준 국가는 ‘진정한 우방’이다.

‘테헤란로’처럼 ‘사우디路’도 만들고, 경남과 전남 및 경기도에 있는 ‘독일 촌’ 과 ‘몽골 문화촌’처럼 ‘사우디 촌’도 만들고, ‘사우디 밤’ 행사를 개최, 옛 동료들을 만나게 하며, 주한 사우디 대사관과 협조, 가족을 데리고 과거 고생한 사막의 건설 현장을 가보도록 하는 ‘홈 커밍 가족 투어’도 주선하고, 2006년 독일 월드컵 최종 예선을 위해 방한(8.17, 사우디 어웨이 경기는 3.25)하는 사우디 축구팀을 적극 응원하는 등 민간 교류를 확대할 생각이다. 불황기인 지금 우리는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80년대처럼 재도약이 가능한 기회의 땅인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진출이 지금 불황을 맞고 있는 우리에서 대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종천 한국-사우디 친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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