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등 주요 대기업 법무팀의 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최근 중량급 전·현직 판·검사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는 것이다.이는 올해 자산 2조원 이상의 80여개 기업에 대한 ‘집단소송제’등이 도입되면서, 줄 소송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대기업들은 ‘소송’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판단, 자체 법무팀 역량강화에 역점을 둔다는 방침이다.삼성은 지난해 7월 거물급 검찰인사인 이종왕 변호사를 법무실장으로 영입하면서, 기존의 법무팀을 법무실로 승격했고 팀장의 직위도 전무에서 사장으로 두단계 높였다. 또 삼성은 지난해 연말 서울중앙지검 특수 1·3부장 등 검찰의 주요 요직을 거친 서우정 전 서울고검 검사를 영입하는 등 그룹 법무실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사법처리와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지난해 홍역을 치렀던 SK의 사정은 더 급하다. SK는 최태원 SK(주) 회장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는 데다 소버린자산운용과의 경영권 갈등을 겪고 있어, 법무팀의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이를 반영하듯, SK는 지난해 윤리경영실과 법무지원팀을 신설하고, 초대 윤리경영실장으로 대검 중수3과장을 지낸 김준호 부사장을 임명했다. 또 서울지법 판사 출신의 강선희 상무와 서울지검 검사출신 김윤욱 상무를 잇따라 영입하며, 법무팀을 대폭 강화했다.

LG그룹 역시 법무팀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LG는 서울지법 판사 출신인 김상헌 법무팀 팀장을 지난해 상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시킨 바 있다.진로 및 대우종기 인수 문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두산도 최근 그룹내 법무팀을 신설했다. 법무실장으로는 임성기 전 창원지방검찰청 형사 2부 부장검사를 발령했다. 이외에 롯데와 한화 등 각종 송사에 휘말리고 있는 기업들도 법무팀 강화를 우선과제로 삼고, 외부인사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롯데는 현재 공식적인 법무팀이 운영되고 있지 않지만, 조만간 중량감있는 법조계 인사를 영입해 법무라인을 조직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도 3~4명의 변호사를 영입, 법무팀을 가동중이다.이처럼 각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법무팀 강화에 나서고 있는 것은 올해부터 시행되는 증권집단소송제 외에 강화된 공정거래법, 금융지주회사법 등 법률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각 기업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다. 삼성은 ‘이재용씨의 에버랜드 주식 편법 증여 의혹 문제’, SK는 ‘SK글로벌 분식회계 문제’, 한화는 ‘대한생명 인수 의혹’, 두산은 ‘M&A관련, 법적 문제’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이에 따라 법무팀은 기업의 송사부터 정치적 현안까지 대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실제로 각 기업 법무팀은 지난해 대선자금 검찰수사 당시 각종 인맥과 정보망을 동원해 검찰 수사의 향방을 가늠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판·검사 출신 인사들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현직에 있던 판·검사들이 기업으로 자리를 옮길 경우, 그 기업과 관련한 수사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또 기업으로 간 판·검사들이 막강한 인맥을 통해 로비스트로 활동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판·검사들의 기업행은 검찰의 기업관련 고급수사정보유출 및 법원의 판결에 대한 로비의혹 등 도덕성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며 “직업윤리 차원에서 이와 관련,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입장이다.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그동안 기업내에 법무인력을 두면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인식이 팽배했으나, 집단소송제 도입 등의 여파로 기업들사이에 위기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소송문제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만큼, 이에 따른 대비책으로 법무팀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이어 “초보 변호사를 영입하는 것보다는 역량 있는 판·검사들을 영입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판·검사 대기업행은 파격적 조건 때문

“판·검사때 비해 연봉 10배 이상”판·검사출신 법조계 인사들이 왜 ‘대기업 법무팀’으로 진로를 선택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파격적인 조건’때문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판·검사들의 처우보다는 대기업 법무팀의 처우가 더 좋다는 얘기다.판·검사들은 보통 공무원들에 준하는 월급을 받고 있다. 보통 사법고시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면, 2년 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5급 공무원에 상당하는 월급을 받는다. 이 금액이 150만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리고 판·검사로 정식임용되면 3급 공무원 대우를 받게 되는데 본봉에 각종수당 등을 포함하면 월 250~300만원선이다.이어 판·검사의 경력이 10년 이상되면 부장 판·검사가 되는데 이때쯤 되면 호봉에 따라 5,000

~6,000만원선에 이른다. 검사장급으로 승진하게 되면 비로소 6,000~7,000만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이에 반해 대기업 법무팀의 경우, 부장검사급 인사들은 보통 상무이상의 임원급 대우를 받게 된다. 기업 법무팀으로 옮긴 법조인들의 연봉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임원들의 처우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가늠케 한다.삼성의 경우, 임원이 되면 연봉 1억원이상에 스톡옵션 등을 포함하면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의 연봉을 능가하게 된다. 또 승용차 및 특별건강검진, 골프회원권 등 각종 혜택도 뒤따른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대기업 법무팀으로 자리를 옮길 경우, 판·검사 때보다 10배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도 돈다.법조계 한 인사는 “판·검사의 연봉으로는 자녀들의 교육비를 충당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며 “대기업 법무팀으로의 이직을 비판하기 이전에, 법조인들의 처우를 먼저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