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서민과 대비되는 소위 재벌들은 부와 권력을 그의 자녀들에게도 물려주고 있다. 특히 재벌과 사회고위층 자녀들은 그들만의 사교모임을 통해 연대관계를 형성하고 ‘부와 권력의 대물림’에 대한 안전장치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한때 모 재벌2세 모임의 핵심멤버였으나 모임활동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제명당한 P씨는 최근 기자를 만나 재벌2세 사교모임의 실체를 털어놓았다. 공기업 사장, 중견 제약회사 오너, 강남 부동산 개발업자, 학원재단 이사장 등의 2~3세들로 구성된 ‘R’(약칭) 모임을 통해 재벌2세 사교모임을 집중 해부했다.“처음에는 친목도모로 만들어진 모임이었지만 공기업 사장과 제약회사 사장의 아들이 가입된 이후 부동산 투기, 사업상의 유착, 재벌 및 사회고위층 자녀들 간의 중매 등 모임의 목적이 변질됐다.

모임이 만들어지고 6개월 만에 모 공기업 사장은 이 모임에 자신의 장남을 가입시켜며 1억원을 기탁하기도 했다.”‘R’ 모임의 초기멤버였던 P씨는 모임의 목적이 변질되는 것을 보고 반기를 들었다 결국 제명당했다.P씨에 따르면 R모임은 지난 98년 수원·용인 등지의 건설회사 오너, 지역유지, 전직 고위관료 등의 자녀 5명이 모여 결성했고 당시 P씨는 총무를 담당할 정도로 이 모임의 핵심멤버였다.모임 결성 초기에는 재벌2세 모임이라기보다 하나의 친목모임에 불과했다.하지만 모임을 결성한지 6개월째 되던 지난 98년 9월에 용인지역의 지역유지로 알려진 K씨의 추천으로 모 제약회사 장남인 Y씨와 모 공기업 사장의 외아들 L씨가 합류하면서 모임은 급격히 확대되기 시작했다.L씨의 아버지는 당시 공기업 사장이었고 L씨가 합류한 직후 1억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이후 모임 회원은 20여명으로 늘어났고 이중에는 공기업 사장의 외아들 L씨를 포함, 모 제약 오너의 장남 Y씨, 부동산 큰손 J회장의 차남, 인천 Y재단 이사장 손자 K씨 등이 모임을 주도했다.P씨는 “공기업 사장 아들 L씨가 가입한 이후 소위 말하는 재벌급 2세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고 모임 결성 1년 만에 모임 이름까지 바뀌는 등 변화가 일어났다”며 “경기도 포천에 있는 별장에서 매달 한번씩 모였다”고 말했다.모임이 확대되면서 가입비 또한 10배 이상 늘었다. P씨가 모임을 결성한 당시에는 기입비 형식으로 100만원씩 내고 매달 활동상황에 맞춰 활동비를 냈지만 모임이 거대해지면서 기존 회원의 추천 등으로 검사, 변호사, 고위관료 등의 자녀들이 가입할 경우 회원간의 심사를 거쳐 가입비명목으로 1,000~1,500만원을 받기도 했다.

특히 모임의 변화가 일기 시작하면서 모임의 목적도 크게 변질돼 대부분 회원들 집안간의 거래를 통해 부동산 투기, 사업상의 유착, 재벌 및 사회고위층 자녀들 간의 중매 등이 이뤄졌고 여기에 반기를 든 P씨 등 일부 초기멤버들은 지난 2002년 말 모임에서 제명됐다.P씨는 “처음에는 모임의 분위기가 순수하게 정보 공유나 친목도모로 시작됐으나 이후 계속 변질되는 것을 보고 문제 제기를 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왕따’를 당하는 계기가 됐다”며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리자 모임의 주도세력들이 탈퇴를 강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P씨에 따르면 지난 2000년에는 모 공기업의 복지회관 사업을 용인의 모 건설업체 사장 아들이 수주하면서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회원 7명이 단체로 모임을 빠져나가는 사건도 발생했다.

초기멤버들이 대부분 건설회사 오너의 아들이기 때문에 공기업 사장 아들인 L씨가 복지회관 건설에 대해 정보를 주고 모임에서 사업을 수주하자는 의견이 모아졌으나 이후 용인 T 건설업체 사장의 아들이 복지회관 건설을 수주하면서 내분이 일기 시작한 것.P씨는 “일종의 완력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공기업의 복지회관 건설을 사교모임에서 수주한다는 자체도 잘못된 것이지만 이를 모임 회원의 아버지 회사가 청탁을 통해 수주했다는 것은 모임의 목적이 얼마나 변질됐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모임은 지난 2000년부터 회원별로 업무영역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일반기업과 같이 업무영역을 나눠 회원들을 부서별로 배치하고 수익사업을 추진하는 등 모임이 기업화되기 시작한 것.

인천의 Y재단 손자인 K씨는 재벌과 사회고위층 자녀들과의 중매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우선 회원들이 수집한 리스트를 정리해 고위층 자녀들의 명단을 만들고 미혼 회원들에게 제공하고 비회원들에게는 만남을 주선하는 대신 준회원 가입을 종용했다.또한 K씨는 리스트에 포함된 사람들을 준회원으로 모집해 공기업, 건설회사 등의 취업알선도 했다고 한다.P씨는 초기 멤버 일부가 제명된 이후 이 모임의 수장이 된 모 제약회사 오너의 장남 Y씨는 지역별로 지부를 만들어 운영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P씨가 모임에서 제명될 당시에는 R모임의 실제 회원수는 20여명 정도였지만 1년 예산이 10억원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 서열따라 자식서열 정해져”

P씨 “재벌 2세모임은 부·권력 유지위한 수단”“사교모임 우후죽순 생기며 자기끼리 암투도 ”P씨에 따르면 초기멤버와 달리 제약회사 오너의 장남, 공기업 사장의 외아들, 학원재단 이사장 손자 등은 R모임에 들어오기 전에 다른 모임에서 활동했다.그들이 R모임에 가입한 이후 포천 별장에서 “기존 모임에서는 부의 서열에 맞춰 자식들까지 서열이 정해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P씨는 “이들은 가입초기에 타 모임에서 서열문제로 자진 탈퇴했다고 설명하면서 R모임에서의 친목도모를 강조하기도 했다”며 “대부분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R모임에 접근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기존 재벌2세 모임에 많은 문제점들이 있어 R모임을 ‘신흥모임’, ‘개혁모임’으로 칭하며 차별화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하지만 이들이 모임을 장악하면서 현재 모임은 사기업화되고 있다는게 P씨의 설명이다.P씨는 “재벌2세 모임은 친목도모보다는 그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IMF 이후 이같은 재벌2세 모임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사교모임간의 암투도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