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후보라던 김진표 후보가 낙선했다. 이해찬 후보가 더불어민주당의 신임 당대표가 되었다. 차이는? 컸다. 친문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김진표 후보는 꼴찌를 했다. 송영길 후보에게도 밀린 것이다. 김진표 후보의 패배가 친문의 패배는 아니다.

신문방송에 오르내리던 것과는 달리 친문이 조직적으로 김진표를 밀었다는 증거는 없다. 청와대가 이해찬을 껄끄러워 할 것이라는 것도 일방적인 기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진표 후보가 선 자리 자체가 허상에 불과했다.

김진표 후보는 SNS상에서 한때 이해찬 후보를 역전하거나 압도한 것으로 보였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에서는 김진표가 미화되고 이해찬을 깎아내리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해찬 후보 쪽에서도 대응을 안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역부족으로 보였다. 적어도 SNS상에서는 김진표가 막판 대세론을 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결국 김진표 후보가 큰 차이로 패배하면서 SNS가 현실의 거울이 아니라는 것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꼴이다.

김진표 후보의 패배는 SNS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비슷한 성향,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좁은 방에 무리지어 목소리를 높인다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 SNS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의 일부분일 뿐이다. SNS는 볼록렌즈처럼 내 얼굴을 돋보이게 하고, 성능 좋은 확성기가 되어 내 목소리로 세상이 꽉 차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SNS상에서는 과장되기 쉽고 도취되기 쉽다.

SNS는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유유상종이 미덕인 세상이다. 자유한국당 지지자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현실세계에서 친분을 나눌 수는 있어도 SNS상에서는 서로를 용납하지 못한다.

SNS는 전두엽이 과잉 활성화된 세상이다. 감정이 과잉이거나 논리가 과잉인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적대감과 절대적 호감의 간헐천이 지천에 널려 있다. SNS의 이런 특성은 정치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에 SNS가 정치 세력의 전쟁터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인들도 SNS에 몰입한다. 좋아요에 집착하고 댓글에 일희일비한다. 어떤 의견이 공유되고 어떤 컨텐츠를 올려야 이슈가 되고 검색순위에 오르는지를 궁금해 한다. 요즘은 SNS에 직접 글을 올리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정치인도 많다.

SNS는 유권자와 소통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고, 정치인과 유권자 간에 존재하는 현실세계의 거리를 없애 버린다. 국회의원이 되고 더 큰 꿈을 꾸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SNS에 관심을 끊기 어렵다.

서울에 지역구를 둔 모의원은 거의 매일 직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한다. 회의 주제는 단 한 가지, SNS다. 오늘은 자기 트윗이 몇 번 리트윗되었고, 어떤 내용으로 후속타를 날릴까 회의를 한다.

보좌직원들은 개개인이 트윗 계정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트위터에 의원 관련해서 불리한 트윗이 올라오면 비상이 떨어지고 작전에 나선다. 이 의원실은 지역구 관리하는 직원 한둘 빼고는 거의 모두가 트위터에 매달려 하루를 보낸다.

저 의원이 이번 전당대회를 유심히 봤다면 오프라인의 현장 조직가들을 무시한 일부 온라인의 파급효과라는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는 면대 면을 기본으로 한다. SNS 선거 운동은 ‘새로운 지지자’를 발굴하는 수단이 아니다. 새로운 지지자에게 확실한 신뢰를 제공하는 굳히기 수단으로서의 유용성에 주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SNS정치는 믿고 싶은 것을 믿게 하고, 열혈 지지자로 변모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열혈지지자들의 씨앗을 뿌린 현실세계의 조직가들이다. 현실에서 악수하지 않고, 셀카를 찍지 않는다면 지지자를 얻을 수 없고 좋아요도 없다. 오프라인 만남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SNS선거 운동조차도. <이무진 국회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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