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자동차, 현대백화점, 동부…국내의 대표적인 대기업들이다. 이들은 재벌그룹이라는 점 이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현재 그룹의 오너 세대에서 아들로의 경영권 이양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에서 정의선 기아차 사장, 현대백화점은 정몽근 회장에서 정지선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이양 움직임이 한창이다. 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경우는 자제들이 아직 경영일선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이들을 염두에 둔 경영권 넘기기 프로젝트는 한창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들 오너가 2세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10년이 넘는 장기 프로젝트를 세우기도 하고, 그룹 계열사를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증권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해 회사 지분을 넘기는 것이 가장 ‘인기’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재벌 오너들이 2세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티끌모아 태산형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김 회장의 외아들 남호씨는 지난해까지 외국계 컨설팅사에서 근무를 했으나, 현재에는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다. 동부그룹 및 계열사에서 근무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김남호씨는 동부정밀화학의 대주주(지난 2월말 현재 21.14% 보유)이고, 동부화재(14.06%), 동부제강(7.4%) 등 계열사 주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올해 스물 아홉인 남호씨가 수백억원대의 주식 재산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김준기 회장이 10년 넘게 진행해온 프로젝트 덕분이다. 김남호씨는 지난 94년 동부화재(당시 한국자동차보험) 지분 0.1%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해 김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돈으로 유상증자에 참여, 회사 지분이 13.4%(67만주)로 늘어났다. 동부화재의 주가가 상승하면서 남호씨의 주식 재산도 불어났고, 이를 바탕으로 남호씨는 계열사의 주식을 차근차근 장내에서 매입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총 30여 차례에 걸쳐 동부 계열사의 주식을 장내에서 사들였고, 또 일부는 부친으로부터 증여를 받기도 했다. 일례로 김남호씨는 지난 2000년 2월, 개인 돈으로 동부정밀화학 주식 5,530주를 사들였고, 지난해 8월에는 부친인 김 회장으로부터 같은 회사 주식 84만주를 증여받았다.

첨단기법 발굴형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평범한 방법은 선호하지 않는다. 최첨단 기법을 곁들인 방법이 사용됐다. 이건희 회장이 외아들 이재용 상무에게 ‘대권’을 승계하는 과정은 복잡했다.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에버랜드 등 각 계열사가 동원됐고,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경영기법이 동원됐다. 이재용 상무는 지난 97년에는 삼성전자가 발행한 전환사채 중 450억원어치를 매입해, 같은해 9월 이를 주식으로 전환해 지분을 높였다. 또 지난 99년에는 장외시장에서 삼성SDS가 신주인수권부사채 320여만주를 발행한 뒤, 이재용씨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하기도 했다.

삼성그룹의 이런 최신식 기법은 줄 소송을 만들기도 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삼성전자의 CB를 문제삼아 ‘변칙 증여’를 이유로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또 국세청은 삼성SDS의 BW를 문제삼아 이재용 상무에게 증여세를 부과하기도 하는 등 삼성의 주식 승계는 숱한 이슈를 만들어냈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해 대권을 물려받을 방법을 모색 중이다. 비상장 계열사는 회사의 사정에 대해 일일이 공시를 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정 사장이 현대자동차 주식을 장내에서 직접 매입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현대차의 주가가 높아 대규모의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동원된 곳은 크게 글로비스와 엠코, 본텍 등 3개사다.

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의 물류 계열사이고, 엠코는 건설회사, 본텍은 카오디오 회사다. 이들 3개사는 현대차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순익 규모가 큰 ‘알짜배기’회사지만, 상장회사는 아니다. 정의선 사장은 당초 글로비스 지분 60%, 본텍 32%, 엠코 25%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 사장은 최근 글로비스의 지분 25%를 일괄 매각해 여유 자금을 만든 뒤, 장내에서 기아차 주식을 1.01% 사들였다. 비상장회사 주식을 팔아 ‘메인’회사의 주식을 조금씩 인수하고 있는 것. 이 방법은 오너의 자금 출처가 명확히 밝혀지는데다, 법적 하자가 없어 요즘 인기란다.

계열사 동원+∝형

최근 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의 주식 거래를 두고 말이 많았다.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은 지난 2003년부터 정직한 방법으로 회사의 경영권을 장남에게 물려줬다. 정 회장은 지난 2003년 2월21일 현대백화점 주식 67만주를 증여한데 이어, 같은해 3월24일 32만주, 2004년 12월3일 215만주씩을 각각 증여했다. 정 회장이 보유한 한무쇼핑의 주식도 비슷한 시기게 장남 정지선 부회장에게로 넘어갔다.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주식을 증여받았으니, 어찌보면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올초 현대백화점이 정지선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한무쇼핑의 주식을 사주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시작했다.

사실 정 부회장이 현대백화점을 비롯해 계열사의 주식을 모두 증여받기는 했지만, 백화점 그룹은 특성상 모든 계열사가 ‘현대백화점’을 정점으로 늘어선 구조다. 현대백화점의 대주주로서 전 계열사를 모두 장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정 부회장은 현대백화점, 한무쇼핑의 주식을 증여받은 것에 대해 본인의 지갑에서 세금을 내야하는데, 이번에 현대백화점이 한무쇼핑 지분을 인수함으로써 이런 골칫거리가 모두 사라졌다. 이같은 사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회사 주식을 인수한 것 역시 편법증여 방법 중 하나가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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