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보는 대투를 비싼 가격에 팔 계획을 하고 있고, 하나은행은 싼 가격에 사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가격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대투 M&A 이후 구조조정 및 사후 손실 보전 문제, 공적자금 추가 투입 여부 등 산적한 사안들 역시 대투 매각 협상에 발목을 잡고 있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수들을 둘째 치고라도 대투의 ‘적정가’를 두고 예보와 하나은행이 대립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예보는 대투의 적정가격이 5,000억원 이상이라는 입장이고, 하나은행은 4,500억원이 적당하다는 입장이다.

예보의 관계자는 “대투의 미래가치 등을 종합해볼 때 매각 대금이 5,000억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하나은행 관계자는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가격을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한투증권의 매각가격(5,462억원)보다 대투증권의 인수가격이 낮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대투를 팔려는 예보와 사려는 하나은행 간에 500억원이라는 차이를 두고 한치의 양보가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두 회사는 모두 대투를 하나은행에 매각하겠다는 데에는 이견을 달지 않는다. 예보 관계자는 “하나은행과 가격차에 대한 이견을 상당 부분 좁혀놨고, 현시점에서도 건설적인 협상이 진행 중에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 역시 “(예보와) 의견 조율을 거쳐 대투를 인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예보가 반드시 대투를 하나은행에 매각해야하는 이유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 하나은행으로서도 반드시 대투를 품에 안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예보는 왜 대투의 매각가격을 5,000억원 이상으로 고집하고 있을까. 예보는 올 한해 핵심 가치 업무를 공적자금 회수에 두고 있다. 지난달 24일 예보는 국회 업무보고에서 올해 예보채 원리금(21조8,000억원) 및 차관 원리금(4,000억원) 등 총 22조2,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상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투증권 매각도 이와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예보가 스스로 밝힌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대투를 비싼 가격에 팔아야하는 상황인 것. 그렇다면 예보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하나은행은 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하나은행은 대투를 4,500억원 이하에 인수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예보의 ‘5,000억 발언’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여러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중 하나는 하나은행의 대투 매입이 실패할 경우, 장기 플랜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지난 2일 은행장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차기 하나은행장으로 김종렬 부행장이 추천됨에 따라 하나은행은 주총 이전에 지주회사 설립 계획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부적으로 정리했다.하나은행 고위관계자는 “의견 조율을 거쳐 반드시 대투를 인수한 뒤, 지주회사를 출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일선에서 물러날 예정인 김승유 행장 거취와 관련해서도 “김 행장은 행장직을 사퇴하고 이사회 의장직을 맡은 뒤 지주회사 초대 회장직에 오를 것이 확실시된다”고 말해 지주회사 설립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즉 하나은행으로서는 향후 지주회사 체제를 만들 예정인데, 이를 위해서는 대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나은행의 대투 인수가 물건너갈 경우, 장기 사업플랜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오는 3월말 퇴임할 예정인 김승유 행장의 거취와 관련된 사안이다. 김승유 행장은 향후 하나지주회사의 초대 회장직에 오를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행장에 대한 예우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하나은행이 대투 인수에 실패해 지주회사를 만들기 어려울 경우, 자연스럽게 지주회사 초대 회장직이라는 자리도 없어지게 된다. 쉽게 말해 김승유 행장이 옮겨야 할 자리가 아예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업계에서는 예보의 경우 ‘대의명분’ 차원에서, 하나은행은 지주회사 설립 및 김승유 전행장에 대한 거취 마련 차원에서 이번 대투 매각이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양사가 가격 문제로 인해 대립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서로의 필요에 의해 쉽사리 매각 성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여하튼 하나은행과 예보가 대투 매각에 있어 최대 핵심 쟁점 사안이었던 가격차를 좁힐 경우 이르면 3~4월 중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승인을 거쳐 본계약을 맺고, 대투에는 1조3,000억원의 추가 공적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아울러 하나은행은 대투 인수가 결정되면 지주회사 설립준비위원회를 세우고, 늦어도 상반기 중 지주회사를 모회사로 하는 ‘하나금융그룹’을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미묘하게 얽힌 두 회사의 ‘윈-윈’ 전략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는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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