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과 SK그룹 오너 2세들이 최근 느닷없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회사 주식을 시장에 내다팔고, 현찰모으기에 열을 올리고 있어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 2세들은 지난 3월 중순에서 말 사이에 본인들이 보유했던 그룹 계열사 주식을 친인척들에게 넘겼고, 그 결과 불과 사흘 만에 수백억원 대의 현찰을 확보했다. 이렇게 되자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들이 갑자기 회사의 주식을 처분한 이유를 두고 여러 가지 말들이 오가고 있다. 특히 이들이 이번 주식 거래를 통해 확보한 자금이 무려 200억원대 이상의 거액이라는 점에서, 이 자금을 기반으로 ‘깜짝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현찰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주인공은 구자극 LG상사 미주법인 회장과 최재원 SK엔론 부회장. 구자극 회장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으로 구본무 회장에게는 숙부인 LG그룹의 2세다. 또 최재원 부회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남동생으로 SK그룹 최씨 일가의 2세 경영인이다. 그는 당초 SK텔레콤에서 근무했으나, 지난 2004년 2월 SK그룹 사태 때에 경영진 일괄퇴진 방침에 따라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들 중에서 먼저 회사 주식을 처분하기 시작한 사람은 구자극 LG상사 미주법인 회장. 그는 지난 3월17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보유주식을 대량으로 내다팔아 현금을 빨아들였다. 구 회장은 지난 3월17일 (주)LG의 주식 100만주, 18일 20만주를 각각 장내에서 팔았다. 그의 (주)LG주식 120만주는 LG오너 일가의 가족들이 모두 사들였다.

지난 3월17일 매도한 주식 100만주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12만주,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 28만주, 구자엽 가온전선 부회장 44만주, 최병민 대한펄프 회장이 16만주를 각각 나눠 사들였다. 구본준 부회장은 구자극 회장의 조카이고, 구자엽 회장은 친형, 최병민 회장은 조카사위다. 구 회장이 이튿날인 지난 3월18일 매도한 주식 20만주는 친인척인 이욱진씨가 고스란히 사들였다. 구자극 회장은 이틀 동안의 주식거래를 통해 (당일 종가를 기준으로 계산할 때) 약 280억원의 현찰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구 회장은 현찰을 손에 쥔 대신에 (주)LG의 지분이 0.39%(6만8,570주)로 뚝 떨어졌다. 사실상 (주)LG에 대해서는 오너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LG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구 회장이 개인적으로 자금이 필요해 일가 친척들이 주식을 사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구 회장의 이런 행보에 대해 본인의 뿌리인 재벌그룹보다는 새로운 개인 비즈니스를 위해 자금을 모으고 있지 않겠느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구 부회장의 주식거래가 있은지 10여일 후에는 SK그룹의 2세인 최재원 SK엔론 부회장의 주식거래가 시작됐다. 그의 주식거래는 지난 3월30일, 31일, 4월1일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으며, 최 부회장은 이 거래가 끝난 이후 300억원 대의 현찰을 손에 쥐게 됐다. 최 부회장은 지난 3월30일 시간외매매를 통해 SK(주)주식 35만주, 장내에서 6132주, 3월31일 장내에서 3만주, 4월1일 시간외매매를 통해 21만주를 각각 팔아치웠다. 최 부회장은 단 3일 만에 그동안 보유하고 있던 SK(주)주식 59만6,132주(0.47%)를 모두 털었고, 약 350억원의 현찰을 손에 쥐었다. 재계에서는 최 부회장이 구자극 LG상사 회장과 달리 SK(주)의 주식을 단 한 주도 남기지 않고 모두 처분한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SK(주)의 주식을 모두 팔았다는 것은 향후 SK(주)의 경영권과는 무관하게 지내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거래를 두고 최 부회장이 새로운 개인 사업을 준비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SK그룹의 사태로 인해 대주주 일가가 전면 퇴진했을 당시, SK그룹의 본사 사옥 부근에 사무실을 얻고 여러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돌기도 했다. 특히 최 부회장은 유학파 출신으로 SK그룹의 주력사업인 정유, 텔레콤 등의 기간사업보다는 최첨단 전자사업 등에 관심이 깊었던 점으로 미뤄볼 때, 그룹과 상관없이 개인 비즈니스를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이번 거래가 SK그룹의 계열분리의 수순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섣부른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SK그룹 관계자는 “최 부회장이 개인적으로 자금 확보를 위해 주식을 팔았을 뿐, 회사와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구자극 회장은 누구인가

중소기업 인수…1년만에 주가 2배구자극 회장은 LG그룹 구씨 일가의 직계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오너 경영인이다. 이는 그가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구 회장은 지난 80년대 말 일찌감치 LG상사(당시 럭키금성상사)에 둥지를 틀고,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줄곧 미국에 머물렀다. 그는 지난 94년 LG상사 미주법인본부장, 98년 동사 사장을 지낸데 이어 지난 99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구자극 회장은 LG상사미주법인에 소속돼 있기도 하지만, (주)엑사이엔씨라는 중소기업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엑사이엔씨는 전자부품, 전자유도자 등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인데, 지난해 구 회장이 회사를 인수했다.

재벌 오너 회장이 규모가 작은 중소업체를 직접 나서서 인수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현재 이 회사의 사장은 구 회장의 장남인 구본현씨가 맡고 있고, 구 회장은 대주주의 역할만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중소기업이기는 하지만, 구 회장이 인수한 이후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에 주가가 2배 가까이 뛰어 오르는 등 실적이 좋아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전례로 비춰볼 때, 구 회장이 이번에 확보한 자금으로 또 다른 중소기업을 인수하거나, 기존에 인수한 회사의 주식매집에 사용할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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