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사자의 전쟁, 승자는 누가 될까. 요즘 손해보험업계에서는 ‘고양이와 사자’전쟁 얘기가 한창이다.‘고양이’는 그린화재해상보험이고, ‘사자’는 쌍용화재해상보험이다. 이들은 각각 동물의 모습을 형상화해 회사의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전쟁을 선언하고 나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린화재는 쌍용화재를 인수하겠다고 선언했고, 쌍용화재는 오히려 본인이 그린화재를 인수할 계획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고양이가 사자를 집어삼키겠다고 선언하자, 사자가 발끈하고 나선 격”이라고 한다. 업계에서는 이 두 회사의 경영권 분쟁은 단순한 M&A전쟁이 아니라, 소형 보험업계에 드리워진 구조적 문제의 표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두 회사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현재 국내 손해보험업계는 삼성화재, LG화재 등 대기업 계열사들이 높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그린화재, 쌍용화재, 제일화재, 신동아화재 등 중소 보험회사들이 뒤섞여있는 상황이다. 손보업계의 시장 점유율을 기준으로 보면, 이번에 경영권 인수를 선언하고 나선 그린화재가 쌍용화재에 밀린다. 쌍용화재의 시장 점유율은 3.36%(7위)고, 그린화재는 1.65%(10위)다. 그러나 이 시장 점유율을 보면 중소 보험회사들이 처한 상황이 무척 열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IMF이후 중소형 보험사들의 경영난이 점차 가중되고 있다”며 “중소 보험사들끼리 새로운 탈출구를 찾지 않으면 궁극적으로는 같이 몰락하는 아노미 현상이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동안 중소보험업계에서는 각종 M&A설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그런 ‘설’들이 현실로 드러났다. 지난 3월21일, 증권가에는 그린화재가 쌍용화재를 인수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소식이 전해지기가 무섭게 쌍용화재의 주가는 뛰었고, 그린화재의 주가는 빠지기 시작했다. 증권거래소는 이 날 공시를 요구했고, 그린화재는 “아직까지 결정된 사항이 없다”며 일축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인 지난 3월23일. 그린화재는 태도를 완전히 바꿨다. 그린화재의 이완덕 전무는 “쌍용화재의 주주인 현대금속(주)에서 발행하는 교환사채를 인수키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4일을 기준으로 쌍용화재는 세청화학(주)가 11.79%로 대주주이고, 아이비씨앤아이(주) 6.38%, 중앙제지(주) 6.12%, 현대금속(주) 5.44%를 보유하고 있다. 그린화재 관계자는 “현대금속(주)으로부터 인수한 교환사채(90만주)를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8.16%의 지분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될 경우, 그린화재가 쌍용화재의 2대 주주로 뛰어오르게 되는 것. 현재 손보업계에서 그린화재와 쌍용화재가 각각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두 회사가 합쳐질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증권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그린화재의 M&A프로젝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린화재는 일주일 뒤인 지난 3월30일 베이시스M&A라는 회사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쌍용화재 주식 50만주를 살 수 있는 매수청구권을 획득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그린화재는 현대금속(주)와 베이시스M&A로부터 쌍용화재의 주식(또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을 인정받아 쌍용화재의 주식 12.14%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 경영권 확보가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이렇게되자 발끈하고 나선 곳은 쌍용화재. 쌍용화재의 대주주인 세청화학(주)는 적대적 M&A에 손 놓고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세청화학은 쌍용화재의 주주들을 일일이 설득해, 그린화재측에 주식을 넘기지 못하도록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린화재와 쌍용화재의 ‘먹고 먹히는’ 전쟁이 시작된 것. 그러나 단순한 M&A전쟁은 이윽고 각 회사의 대표이사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졌다. 그린화재의 이영두 대표이사 회장이 대화로 문제를 풀 것을 제안한 것. 이 회장은 “적대적으로 M&A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중소 손보업계 회사들의 생존을 위해서 대주주와 합의하에 회사를 합병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위협을 받은 ‘사자’의 자존심은 이미 구겨질대로 구겨진 상황이었다. 쌍용화재의 양인집 사장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쌍용화재가 그린화재를 인수하는 것이 낫겠다”며 찬물을 끼얹고 나선 것.

결국 회사의 경영권 분쟁에서 시작된 문제는 두 회사의 대표이사들의 자존심 전쟁으로 비화돼 업계의 핫이슈로 떠오르게 됐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쌍용화재가 그린화재 인수를 운운하는 것은 자존심이 구겨진 것에 대한 반발일 뿐, 실제로 회사를 인수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린화재의 대주주 장홍선(그린화재 전 회장)씨의 지분율이 34.8%로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남은 문제는 과연 그린화재가 쌍용화재의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부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분구도만으로 보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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