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 삼성촌 땅값 얼마나 될까고 이병철 회장의 자택인 장충동 110번지는 약 836평(2,760.3㎡)이다. 이 대지위에 건평 124평짜리 집을 지었는데, 공시지가가 65억원에 달한다. 이재현 회장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107-1번지 제원빌라는 각층마다 평수가 다르다. 1층 86평(286.62㎡), 2층 63평(210.20㎡), 3층과 4층은 각각 57평(189.20㎡, 189.56㎡)이다. 이인희 고문 일가가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106-1번지 땅은 약 486평(1,606.6㎡)이다. 여기에는 장충레지던스가 세워져 있는데, 층별로 평수가 다르다. 1층 174평(575.13㎡), 2층~4층 172평(569.36㎡), 5층 145평(481.75㎡)으로 150평이 넘는 초호화 고급빌라다.

올 초 CJ주식회사가 매입한 102번지 땅은 333평(1,100.8㎡)이다. (주)신세계백화점의 소유인 63-3번지 일대는 250평(825.1㎡) 규모다. 삼성가 이씨 일가가 장충동 1가 일대에 소유하고 있는 땅은 평수만해도 2,000평이 훨씬 넘는다. 부동산 관계자는 “공시지가와 실거래 가격이 차이가 있고, 사실상 거래가 이뤄지는 지역은 아니지만 (이씨 일가 보유의 땅 가격이) 적어도 200억원대는 넘는다”고 말했다. 장충동(奬忠洞).행정구역상 서울시 중구에 속한 동이다. 장충동의 이름은 구한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과 열사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제를 올리던 장충단(奬忠壇)에서 유래됐다. 이 지역은 장충동 1가와 2가로 나뉘어져 있는데, 장충단비, 수표교 등의 문화재가 이 지역에 있다. 그런데 요즘 이 지역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유서가 깊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장충동 1가에 위치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살던 자택이 재벌 회장의 집 중에서 가장 비싼 곳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동산 공시지가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고 이 회장의 자택은 65억원이 넘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이른바 현재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재벌총수의 집보다 훨씬 고가다. 고 이 회장이 생전에 지내던 자택의 정확한 위치는 동호대교 남단에서 북단으로 건너자마자, 오른편에 위치한 삼성생명 건물 뒤쪽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시 중구 장충동1가 110번지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른바 삼성가의 모태가 된 ‘장충동 110번지’를 중심으로 삼성가 사람들이 한 때 땅 매입에 열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여태까지 삼성가 사람들의 거주지라고 하면 용산구 한남동을 떠올렸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현재 한남동(그는 곧 이태원으로 이사할 예정이다)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삼성가 사람들의 신경은 온통 장충동에 쏠려 있었다.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자택이야말로, 삼성가 사람들의 진정한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삼성가 사람들은 ‘장충동 110번지’ 일대를 두고 10여년 전부터 극비리에 땅 사기 전쟁을 벌여왔다.

지난 10년 동안 ‘장충동 110번지’ 일대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기자가 장충동 110번지를 방문했을 당시, 이 일대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고 이병철 회장의 자택에는 한동안 사람이 방문한 흔적이 전혀 없어 보였고, 잘 다듬어진 나무만 덩그러니 서있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이 집은 비어 있으며, 관리인이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방문해 집을 돌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 이 회장의 자택 주변은 곳곳에 시멘트가 널려있고 공사장 인부들이 목재를 열심히 나르고 있었다. 대대적인 공사가 이뤄질 조짐이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땅은 고 이 회장의 자택 맞은편에 있는 땅. 이곳은 행정구역상 장충동 102번지인데, 텅 비어 있다. 이 땅의 주인은 개인이 아닌 CJ주식회사였다.

이 회사는 고 이병철 회장의 장손이자 CJ그룹 회장인 이재현 회장이 이끌고 있다.<일요서울>이 이 지역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CJ주식회사는 지난 1월17일 매매예약과 동시에 이 땅에 대한 소유권을 이전했다. 올 초 CJ(주)는 이 땅 333평(1,100.8㎡)을 김 아무개씨로부터 매입했다. 이 지역은 모두 주거지역인데다가, 땅의 면적이 그다지 크지 않아 회사 건물, 연구소가 들어서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J는 올 초 회사 명의로 이 땅을 사들였다. CJ그룹에서조차 회사측의 땅 매입 사실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CJ는 왜 300여평 규모의 이 땅을 올해 매입한 것일까.

업계에서는 CJ가 이 땅을 매입한 이유에 대해 고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거주했던 자택과 근접한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구나 업계 관계자들은 이재현 CJ회장이 개인 명의로 이 땅을 매입한 것이 아니라, 회사 명의로 땅을 산 부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는 삼성가의 장손인 이 회장이 돌아가신 할아버지(고 이병철 회장) 자택 근처의 땅을 회사 이름으로 매입함으로써 CJ그룹이 삼성가의 ‘장손 기업’임을 스스로 공고히 하자는 뜻이 아니겠느냐는 시선이다. ‘장충동 110번지’.사실 이 지역을 둘러싼 삼성가의 신경전은 올해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지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 이 회장의 자택의 소유주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지난 77년 1월 토지와 건물을 모두 매입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회장은 장충동 집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지 않고, 한남동에서 따로 살았다.

고 이 회장의 자택이자, 이건희 회장의 소유인 이 집에 살았던 사람은 이재현 회장이었다. 이재현 회장은 1991년부터 1996년까지 고 이 회장의 자택에서 살았다. CJ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이 1996년까지 고 이 회장의 부인인 고 박두을 여사를 모시고 함께 살았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명의로 된 집에 이재현 회장이 할머니를 모시고 ‘전세’를 들어 산 셈이다. 업계에서는 삼성그룹의 대권을 물려받은 사람은 이건희 회장이지만, 집안의 대소사에 대해서는 장손이 책임을 진다는 가풍에 따라 이재현 회장이 홀로된 할머니를 모시고 산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1996년 말, 이재현 회장은 이 집에서 나왔다. 고 박두을 여사를 모시고 살았지만, 고 박 여사의 병세가 깊어지고 병원신세를 져야 하는 시간이 계속된 것이다. 이 집의 주인인 이건희 회장이 조카인 이재현 회장에게 집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는지, 아니면 이재현 회장이 스스로 이사를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즈음 이재현 회장은 이 집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재현 회장의 입장에서 보면 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소중한 집이기는 하지만, 이 집의 명의가 삼촌인 이건희 회장으로 되어있는 한 그다지 편할 상황은 아니었던 것. 그러나 이재현 회장이 이 집에서 나왔다고 해서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이 회장은 이건희 회장 소유의 집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퇴거 직후부터 여기서 불과 두 블록 떨어진 곳에 땅을 조금씩 사들이고 있던 터였다. 장충동 107-1번지였다. 이곳에는 철근콘크리트조 연립주택인 제원빌라가 있다. 현재 이 빌라의 4개층은 모두 이재현 회장 직계가족의 소유다. 이재현 회장은 1995년 1월 이 빌라의 201호를 샀다. 또 그의 어머니인 손복남씨가 이듬해인 1996년에 나머지 3개의 집에 대한 등기를 끝마쳤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이 한 차례 감정다툼을 벌였다는 얘기가 새어나온 것은 이즈음이었다. 고 이병철 회장의 자택이 이건희 회장 소유라면, 인근지역의 땅에 대해서는 이재현 회장이 조금씩 세를 확대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장충동 110번지를 둘러싼 가족들의 미묘한 감정다툼은 이렇게 시작됐다.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심정은 아직 남아있는 것일까.

이재현 회장은 올 초 이 근방에 땅이 매물로 나오기가 무섭게 다시 땅을 사들였다. 이건희 회장의 소유인 고 이 회장 자택에서 나간 지 꼭 10년만이다. 물론 ‘장충동 110번지’를 둘러싸고 장손인 이재현 회장과 대권을 승계받은 이건희 회장 둘만이 신경전을 벌였던 것은 아니다. 고 이 회장의 맏딸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도 이 부근의 땅을 모조리 사들였다. 106-1번지 일대다. 여기에는 철근콘트리트조 6층 아파트인 장충레지던스가 있다. 이 아파트는 이재현 회장 일가의 제원빌라 바로 옆 건물이다. 건물 총 6개 층 중에서 5개층이 이인희 고문 일가의 몫이다. 지난 94년에는 이 회장의 삼남인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이 이 아파트 201호를 샀다. 이후 지난 2001년 이 고문과 장남 조동혁 한솔그룹 명예회장 등이 각각 한 개층을 샀다. 생전에 고 이 회장으로부터 무척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도 고 이 회장의 자택과 조금 떨어진 곳에 사무실을 차렸다.

장충동 63-3번지로, 지난 97년 (주)신세계백화점 명의로 사들였다. 현재 이곳은 신세계법인사업부와 신세계상품과학연구소가 입주해 있다. 고 이 회장의 자택 인근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서 살고 싶은 후세들의 열망에 따라 현재 이 일대는 모두 삼성가 이 씨 명의로 돼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빌라가 여러 채로 이뤄져 있어 각기 다른 사람들이 주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속을 뜯어보면 삼성 일가 사람들이 번지수 별로 ‘땅따먹기’ 식의 구획정리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일대의 땅에 대해 현재 가장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인 듯하다. 그가 10여년 만에 또다시 이 부근의 땅을 매입한 것도 이같은 애정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이재현 회장의 ‘장충동 110번지’ 부근 땅 매입이 향후에도 계속 이뤄져 ‘이건희는 한남동, 이재현은 장충동’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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