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일일이 동요하지 않겠다” 애써 담담한 표정이 사건이 처음 불거진 것은 지난 2002년. 당시 인천지검 특수부 수사요원들은 관내 폐기물 업체들의 자금흐름이 이상하다는 첩보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던 중 한 폐기물 업체에서 의문의 뭉칫돈이 빠져나간 사실을 발견하고 수사를 본격화했다.

4년전 사건 다시 도마위에 올라

검찰은 사라진 뭉칫돈들이 ‘삼지산업’이라는 폐기물 업체를 거쳐 대상그룹 유아무개 경영지원본부장에게, 다시 임창욱 회장의 재산관리인인 박씨를 거쳐 임 회장의 계좌로 입금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이 자금이 ‘비자금’이라고 확신, 같은 해 7월 유씨와 박씨를 ‘횡령혐의’로 구속기소한 뒤 임 회장의 공모여부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수사 결과 인천지검이 밝혀낸 비자금 총액은 모두 72억원. 이 돈은 대상그룹이 서울 방학동에 있던 대상타운을 건설하면서 나온 폐기물처리 대금의 일부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상그룹이 1997년 당시 방학동 조미료공장을 군산지역으로 이전하고 이 지역에 ‘대상타운’을 건설하면서 나온 공장페기물 처리를 삼지산업에 일괄 도급하고 이에 대한 처리비용을 지불했는데, 이 비용 중 일부가 다시 대상 고위인사들에게 재유입돼 결과적으로 임 회장의 비자금으로 사용되었다는 게 검찰의 추정이었다.

실제 이 돈은 삼지산업이라는 폐기물 업체를 통해 임 회장의 계좌로 입금됐는데, 삼지산업 역시 나중에 대상그룹과 관련 있는 곳으로 드러났다. 대상의 경영지원본부장이던 유씨가 1998년 1월 관련 회사에 근무하던 김아무개에게 지시해 10억원에 이 회사를 인수한 곳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와 관련 “유씨는 김씨에게 ‘하청업체들을 물색해 방학동 현장의 폐기물을 재위탁하고 실제 대금보다 금액을 높게 책정해 원가와의 차이를 현금으로 돌려 달라’고 요구한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삼지산업은 1998년 6월 대상측과 톤당 9만7,000원에 방학동에서 나온 폐기물 처리계약을 맺었고, 이 폐기물들은 또 다른 업체들에 재위탁됐다.

하청업체 통해 임창욱

명예회장 구좌에 72억 입금서울고법 판결문에 따르면 삼지산업은 톤당 1만4,000원에 페기물처리 하도급을 줬고, 운반업체와도 톤당 1만5,000원에 계약했다. 하지만 장부상에는 이 보다 훨씬 높은 가격인 톤당 2만4,000원과 2만1,000원으로 기재하는 수법으로 해 총 72억2,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 이 자금은 이후 잠실운동장 같은 한적한 곳에서 유씨에게 전달됐고, 임 회장의 재산관리인이던 박씨를 통해 임 회장의 개인 계좌로 들어갔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다시 삼지산업으로 입금됐다. 이 사실을 파악한 인천지검은 2002년 7월 유씨와 박씨 등을 ‘횡령’ 혐의로 구속기소한 뒤 같은 해 11월 내사 중이던 임 회장에게 소환을 통보했다. 세 차례에 걸쳐 소환에 임했던 임 회장은 결국 신병을 이유로 소환을 거부하다 해외로 몰래 출국해버렸다. 이른바 도피를 한 셈. 임 회장의 변호인단 관계자는 “수사팀이 억울하다는 임 회장의 해명을 믿지 않고, 무조건 구속하려 해 피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임명예회장 해외 도피했다 귀국해 혐의 인정

이런 가운데 인천지검은 구속됐던 유씨와 박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임 회장의 공모로 비자금이 조성됐다’고 공소장을 변경했다. 대상의 비자금 조성을 명령한 주인공이 임 회장이라고 단정지은 것이다. 검찰은 임 회장의 공모에 대해 공소장 변경까지 완료한 상태에서 결국 지난해 1월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태였다”면서 “비자금 조성을 위한 첫 번째 단계였던 삼지산업과 대상그룹과의 폐기물처리계약을 맺을 당시 대상그룹 조달팀장이었던 박씨와 환경팀장이었던 최씨의 진술을 들어야 했지만 이들은 이미 해외에 머물고 있었다”고 참고인 중지 배경을 설명했다. 대상그룹 이삼기 부장에 따르면 조달팀장이던 박씨는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대상에서 퇴직한 뒤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환경팀장인 최씨는 2002년 말 출국했다는 것.

서울고법은 그러나 “임원급 인사들의 진술이 나와 있는 상태에서 실무자의 진술로 사건에 대한 새로운 입증 사실이 없을 것으로 보이며, 실제 임 회장과의 공모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된 재판 과정에서도 변호인 쪽에서 이들의 진술을 들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면서 “임창욱 명예회장의 비자금 조성 공모혐의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문제는 검찰측에서 사실상 기소를 포기한 임 회장에 대해 법원측은 그의 범죄혐의를 인정한 셈이다. 이와 관련 인천지검 정홍기 검사장은 “현재 판결문과 사건기록을 분석중”이라며 “참고인 진술 없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임 회장에 대한)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