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경영 스타일- 삼국지 경영학과 조조

삼성경제연구소 최우석 부회장이 잡지에 연재하는 ‘삼국지 경영학’이라는 내용을 보고 있다. 이 분은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아버지를 잘 아는 몇 사람중 한분이다. ‘삼국지 경영학’은 아버지를 모델로 경영이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아버지 특유의 경영 철학을 조조를 통해 되살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나의 관심을 끌었다. 아버지는 조조처럼 비범한 인물로서 시대를 초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철저할 수 있었다는 점과 미래에 대한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아버지와 조조는 감성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란 공통점도 갖고 있다. 조조는 아주 냉철하고 차가운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감성적인 면이 풍부하다.

감성과 덕의 경영

경영자의 능력 중에서 감성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위대한 경영자들은 대담하고 합리적인 경영능력과 더불어 뛰어난 감성을 발휘했다. 그런 탁월한 감성이 없으면 보통의 경영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위대한 경영자는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경영에서 탁월한 감성으로 발휘된 것으로 생각한다. 기업은 결국 사람이므로 정말 반해서 미치도록 따르는 사람없이는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남이 자기에게 반하게 하려면 자기가 먼저 사람에게 반해야 한다. 사람에게 반하려면 따뜻한 인간미가 전제돼야 한다. 또한 남이 자기에게 반하려면 인간적 매력도 있어야 한다. 누구나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엄격한 신상필벌과 이성적 판단이 깔려있으면서도 그 위에 따뜻한 인간미와 인간적 매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적 매력은 타고난 성품이며,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천부적 자질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감성 리더십은 타고나야 한다. 여기에 부단한 내공이 쌓여야 빛을 발하는 법이다.오다 노부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모두 다른 감성과 다른 판단력을 가진 지도자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보기에 이 세 지도자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용인술은 여느 지도자와 다른 점이 많았다. 그 중에서 인재의 능력을 더 중시해, 주변에서 덕망이 없다는 평가를 해도 인간성보다는 능력을 더 우선시해 중용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나 덕망이 없으면 신뢰하지는 않으셨다. 덕망은 지도력과 식견과 도량을 겸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그토록 중요시했던 덕이란 인과 의를 바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위로서, 타인이나 자기 자신 모두에게 득이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덕을 가진 사람은 자비로움과 너그러움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노력하지 않더라도 옳고 그름에 대해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성품이 몸에 배어있다. 그 사람의 언행만으로도 존엄성과 품위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합리적 경영 강조

아버지는 합리적 경영을 강조했다. 만사에는 선후가 있다고 믿었으며, 기업경영에서는 비약보다 진보를 더 중요시했다, 진보란 합리를 무시하고 단계를 뛰어 넘으려는데서 오는 파국의 위험성을 배제하고 한 단계씩 상황에 맞추어 발전해 나감을 의미한다. 아버지의 합리정신은 경쟁사회에서 기업이 성장하기 위한 철칙이다. 능률적인 경영을 통해 한국의 경제사회를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합리적인 경영이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경영철학이었다. 아버지가 오늘날 대한민국에 삼성과 같은 일류기업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릇이 크고 전략이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합리경영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시대적 상황이 극히 어려운 때에 창업해 세계 수준의 기업으로 일궈냈다. 그 저변에는 합리적인 진보를 추구한 점이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메모광에 철두철미한 경영자

아버지는 지독한 메모광이었다. 종이를 빼곡히 채워가며 메모했고, 수십번도 더 점검하고 확인하며 철두철미하게 일을 관리했으며 미결사항은 메모지에서 지워지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메모하는 습관을 배우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우리 형제들 중에 가장 많은 수첩을 가지게 되었다.

대소 완급의 조절

아버지는 대소완급을 조절할 줄 아는 분이었다. 모든 일은 계획이 우선이었고 즉흥적인 것은 없었다. 신중하게 결정하지만 일단 결정되면 진행 스피드는 상상을 초월할만큼 빨랐다. 아버지는 잘 알다시피 골프를 무척 즐기셨다. 한솔 이인희 고문이 미국을 다녀와 미국 골프장에서는 스프링클러를 사용해 잔디를 관리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아버지는 안양골프장에 스프링클러 도입을 검토하라며 다음날 바로 미국으로 사람을 보냈다.하지만 모든 일을 빠르게만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안양 골프장은 겨울에 잔디에 서리가 내리면 잔디의 허리가 보인다는 표현을 하실만큼 잔디에 만족하지 못했다. 어느날 코스를 돌던 아버지는 14번 그린 근처에서 겨울철에도 힘있는 반평정도 규모의 잔디를 발견했다. 아버지의 표현에 의하면 서리를 맞아도 빳빳하고 허리가 보이지 않는 잔디였다. 이 잔디를 연구하고 번식시켜 골프장 전체에 옮기는 데 약 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6년간 이 잔디가 조금씩 늘어가는 과정을 즐기셨으며 손님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다리는 끈질긴 집요함이 있었다. 그 후에 그 잔디는 완벽했다.

아버지와 이건희 회장

아버지와 삼성 이건희 회장을 비교한 어느 글을 보니, 아버지는 규칙적, 계획적, 통제적인 사람이며, 이건희 회장은 유연하고 철학적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없이 관대하다고 했다. 또 아버지는 예리한 직관력을 지녔고, 이건희 회장은 동물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곁들여 있었다. 실제로 아버지는 시간을 잘 지키고 계획된 일정에 따라 철저하게 움직이는 분이셨다. 그런 점에 비하면 삼성의 이회장은 조금 다른 측면을 지닌 사람이다. 그러나 예리한 직관력이나 동물적인 감각은 결국 같은 내용이라고 생각한다.“창업의 거장이 탄생하려면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와 풍부한 사회적 자원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삼성 이회장도 아버지의 그러한 직관력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우리 형제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 안정되게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모두 아버지의 철저한 자녀교육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신세계에서 일하게 된 계기

내가 39세가 됐을 때 신세계에서 일을 해 볼 것을 권유한 것은 아버지였다. 당시 아버지의 지론은 “여자도 가정에 안주하지 말고 남자 못지않게 사회에 나가서 활동하고 스스로 발전해야 한다” 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강요에 나는 현모양처의 꿈을 접고 신세계에서 일을 시작했다.

첫 출근시 아버지가 주신 가르침

출근 전날 아버지는 나를 불러 몇 가지 지침을 주셨다. 그 첫 번째가 “서류에 사인하려고 하지 말라. 疑人勿用 用人勿疑(믿지 못하면 아예 쓰지를 말고, 일단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였다. 사인을 하지 말라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맡겼으면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뜻이었다.나는 그 후 그 지침을 한 번도 어긴적이 없다. 신세계 그룹의 결재라인에 ‘회장’ 사인란이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아니면 안된다” 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의 경영방침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전문 경영인을 선임하는데 주력했다.전문 경영인이 보다 큰 책임과 권한을 갖고 내외 환경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어야 남보다 앞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너가 항상 자리를 지키고 앉아,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해서 기업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굴러가고 진화할 수 있는 체계화된 조직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두 번째는 “남의 말을 열심히 들어라. 어린이의 말이라도 경청하라”이다. 말을 많이 하면 실언을 할 수도 있고, 남의 말을 열심히 들으면 많은 것을 얻게 된다는 뜻이었다.세 번째는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하지 말라”이다. 이 말은 표현과 행동을 절제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업무의 중요성을 따져 챙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확실히 구분지으라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아버지께 처음으로 심하게 꾸중을 들은 것은 25세에 결혼을 하면서 처음으로 구입한 토지를 그 후 이사하면서 팔려고 했을 때였다. 아버지가 “토지를 매각하면 세금이 얼마인지 아느냐” 고 물었을 때, 내가 세금관계에 대해 모른다고 하자 아버지는 그런 것도 모르고 땅을 팔려고 한다고 야단치셨다. 아버지는 나중에 몇 번이고 ‘유비무환’을 주지시켰다.네 번째는 “사람을 나무 기르듯이 기르라”고 말씀하셨다.

기업이 곧 사람이며 업(業)을 기획하는 것이 기업이다. 아버지가 평생 인재개발에 대한 투자를 강조한 것은 바로 이런 신념 때문이었다. 인재를 중시한 아버지는 신입사원 채용 때 직접 면접을 보셨다. 항간에는 아버지가 관상을 본다고 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아버지는 얼굴의 편안함, 눈의 힘, 그리고 태도와 언행을 살폈다. 그러나 항상 만족스러운 인재만을 뽑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교육을 통해 좋은 인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미국에서는 사람의 후천적인 교육을 중시하고, 선천적인 능력 즉 소질은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선천적 소질 내지는 능력을 60%, 후천적 교육에 40%의 비중을 두었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2년 전에는 “능력이 90%, 교육이 10%” 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아무나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을 할 수 있는 능력도 따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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