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벌가 여인들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이들은 회사 경영은 물론이고 바깥에 출입하는 것 자체를 무척 꺼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재벌가의 여인들도 계열사의 경영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이 중에서도 유독 삼성과 현대차 여인들의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국내의 ‘빅4’그룹 중에서 여성들의 경영 참여가 가장 두드러지기 때문. LG그룹이나 SK그룹과는 사뭇 대조되는 부분이다. 더구나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모두 슬하에 딸을 세 명씩 둔 데다, 이들의 활동이 본격화되고 있어 관심이다. 하지만 삼성가와 현대차의 여인들에게는 큰 차이점이 있다. 삼성가 여인들이 ‘베테랑급’ 경영인이라면, 현대차 여인들은 떠오르는 ‘슈퍼루키’다.

삼성가 여인들, 90년 후반부터 경영일선에 나서

삼성가의 여인들은 지난 90년대 후반을 전후해 그룹 계열사의 경영에 뛰어들어 이미 오랫동안 회사 경영을 맡아오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씨는 지난 93년부터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를 맡아왔고, 장녀인 부진씨와 차녀 서현씨는 지난 2000년을 전후해 각각 회사 경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현대가 여인, 올해 경영 합

반면에 현대차의 여인들은 올해 처음으로 경영 일선에 뛰어들어 아직 ‘신참내기’다. 정몽구 회장의 부인인 이정화씨와 장녀 성이씨는 각각 올해 처음으로 회사 계열사 경영일선에 합류한 것. 이런 이유 때문에 현대차 그룹은 요즘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다. 정 회장의 사위들은 줄곧 계열사 경영에 참여했지만, 안주인들이 직접 나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사람은 정 회장의 부인인 이정화씨. 이 씨는 지난 3월 현대차 리조트 계열사인 ‘해비치리조트’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씨의 나이는 올해 만 65세로 경영 일선에 참여하기는 적지 않는 나이다. 때문에 현대차 내부 관계자들조차 이씨가 경영 참여를 선언했을 때, 적잖이 놀라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씨의 행보가 그동안 비교적 베일에 가려져 있었지만, 사실 그는 회사의 행사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특히 이씨는 지난 2002년 12월, 아들인 정의선 사장이 주관한 현대카드 출범 행사에 딸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 그룹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이씨는 세 딸과 함께 이 행사가 열린 H호텔을 방문, 앞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앉아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현대차 안주인들은 비교적 바깥 출입을 자제하는 편이지만, 이씨가 상당히 이례적으로 딸들을 모두 대동하고 행사에 참석해 그룹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정 회장의 부인이 경영 참여를 선언한 지 한 달만에, 맏딸인 성이씨도 계열사에 참여할 것임을 밝혔다. 현대차 그룹의 광고대행 계열사인 ‘이노션’의 대주주로 합류할 예정인 것.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성이씨가 이노션에 자본을 출자하고, 고문직함으로 경영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의 차녀 명이씨와 3녀 윤이씨의 경우는 아직까지 딱히 회사에 직함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남편들이 계열사의 임원을 맡고 있어 본인들이 희망할 경우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삼성가 막내딸 윤형씨, 행보 관심

그런가하면 삼성가는 일찌감치부터 여인들의 경영 참여가 활발했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씨는 지난 93년부터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를 맡았고, 현재 삼성리움미술관장을 맡고 있다. 장녀인 부진씨는 호텔신라를, 차녀 서현씨는 제일모직의 경영을 맡아 일찌감치부터 여성 경영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삼성가의 여인들 중에서 아직 경영일선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3녀인 윤형씨. 윤형씨는 지난해 2월 이화여대를 졸업한 이후, 1년 반이 다 되도록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윤형씨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유학 준비를 해왔으며, 올해 안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삼성가의 여인들의 사회적 활동이 활발하고, 이 회장의 두 딸이 20대 후반의 나이에 경영에 뛰어들었다는 점을 볼 때, 막내 윤형씨 역시 유학을 마친 이후 곧장 회사 경영에 합류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국내의 대표적 재벌그룹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베테랑급’인 삼성가의 여인들과 ‘슈퍼루키’현대차 여인들이 어떻게 회사를 일궈갈지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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