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의 정신을 되새기자’ 최근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창업 1세대를 추억하며 임직원들에게 초심을 잃지 말라고 주문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에 각 기업들은 창업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다양한 작업들을 벌이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은 창업주의 흉상제작. 각 기업들은 그룹 본사를 비롯 주요 사옥 로비 등 ‘눈에 띄는’ 곳에 창업주의 흉상을 제작, 설치함으로써 직원들에게 창업주의 혼을 불어넣고 있다. 흉상 제작에 가장 활발한 삼성, 현대, SK 등 국내 3대 기업 창업주의 흉상을 살펴봤다.3대 그룹 창업주 흉상은 창업주의 평소 성격이나 경영스타일, 기업문화만큼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3인 3색’ 의 흉상들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인자한 표정속에 적극적, 도전적인 모습의 컨셉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또, 몸통의 표현을 단순화해 얼굴에 시선이 모아지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삼성 이병철 회장
- 국내 대기업 중 가장 많은 동상 제작, 정작 삼성본관엔 없어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흉상은 국내 대기업 창업주들 중 가장 많다. 이 회장의 흉상은 삼성은 물론 CJ와 신세계에까지 자리잡고 있을 정도다. CJ그룹 본사 로비 벽면에는 이미 이 회장의 좌상이 자리잡고 있으며 신세계 이명희 회장도 본점 리모델링시 이 회장의 흉상을 제작하라는 지시를 내려 설치를 계획 중에 있다. 또, 신라호텔 정원, 호암미술관 등지에도 이 회장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신세계 이명희 회장, 이건희 회장 부인인 홍라희씨 등 삼성가 여인들이 미술품에 조예가 깊은 것도 이 회장의 동상이 광범위하게 자리잡은 이유 중에 하나다. 이 회장 동상의 컨셉은 ‘온화함 속에 묻어나는 기품’ 이다.

또, 흉상보다는 좌상이나 전신상을 많이 제작한 것도 특징이다. 여러 동상들 중 가장 대표적인 신라호텔 내 동상은 가로 2m, 세로 2m 10cm, 높이 1m 60cm의 청동상으로 지난 1973년에 제작되었다.이 회장 동상을 제작했던 조각가 김영중씨는 “삼성측으로부터 강해보이지만 사실은 인자하신 분이라는 설명을 듣고 감성과 냉철함이 조화되도록 컨셉을 잡았다” 며 “컨셉을 잘 살리기 위해 차가운 이미지와 따뜻한 이미지를 동시에 주는 청동을 사용했으며 인자함을 강조하기 위해 미소짓는 얼굴표정을 담았다” 고 설명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삼성본관’ 에는 흉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조각상이 실내에 있는 것보다 실외에 있는 것이 공간활용측면이나 주위와의 조화에서 더 나아 실외에 많은 것 뿐” 이라고 밝혔다.

현대 정주영 회장
- 검소한 이미지와는 달리 가장 화려해


최근 현대건설 사옥 로비는 분주하다. 6월 초 있을 정주영 회장 흉상 제막식을 위해서다. 당초 5월 24일 열릴 예정이었던 제막식은 현대가의 정세영 회장의 사망으로 6월로 연기됐다. 이에, 현대측은 커튼으로 흉상을 가리고 기자에게 공개를 꺼리며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처럼 최근 흉상 제작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그룹은 현대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정 회장 흉상의 특징은 ‘화려함’ 이다. 정 회장 흉상은 그 자체로도 화려할 뿐만 아니라 주위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타 그룹 창업주의 흉상이 조각품만 있는데 비해 정 회장 흉상 주변에는 정회장의 사진과 고인의 약력을 새겨 넣은 벽면 등 다른 볼거리들도 많다.

정 회장의 흉상을 제작한 울산대학교의 유형택 교수는 “생전 고인의 소박했던 모습과 대 경영인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도록 제작했다” 며 “이를 위해 약간 거친 느낌을 주는 퇴적암으로 왕회장의 소박함과 삶의 역정을 표현했다” 고 말했다. 현대건설에 세워질 정 회장 동상은 가로 90㎝, 세로 47㎝, 높이90㎝ 규모다.한편 지난 99년 현대건설에 앞서 현대해상은 먼저 흉상을 설치한 바 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사옥 리모델링을 하면서 새로 흉상을 설치했는데 직원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 며 “사무실에 들어가려면 로비앞의 흉상을 반드시 지나쳐야 한다. 출퇴근시에 다시한번 고인의 도전정신과 저돌적인 경영 마인드를 되새기기 위함” 이라고 전했다.

SK 최종건, 최종현 회장
- 은밀한 곳에 있어 타 그룹과 대비


SK그룹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과 동생 최종현 회장 동상의 특징은 ‘은밀함’ 에 있다. 타 그룹 동상이 사옥 로비 등 눈에 띄는 곳에 위치한 반면 SK그룹 흉상은 일반직원들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다. SK본사 내 최 회장 형제의 흉상은 35층 ‘SK클럽’ 이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SK그룹 라운지 역할을 하며 국제회의실, 세미나실이 있어 최태원 회장 등 그룹 총수들과 고위층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분확인 절차를 한 번 더 거쳐야 하는 등 일반직원들이 출입하기는 쉽지 않다.‘SK클럽’ 내 최종건 회장과 최종현 회장의 흉상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SK그룹 장자인 최종건 회장과 실질적인 오너였던 최종현 회장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의식한 듯 두 흉상은 서로를 마주보고 살며시 웃고 있다. 크기는 가로 22.5cm, 세로 25cm, 높이52.5cm 로 구리 재질을 사용했다.

SK 관계자는 “형제간의 우애와 창업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설치했다. 최 회장도 종종 이곳을 들러 아버지의 흉상을 보고 간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제작연도와 작가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최종건, 최종현 회장 동상이 일반 직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는만큼 지난 2002년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SK아카데미(그룹 연수원)에 전신상을 세웠다. 직원들이 연수를 받을 때마다 창업주의 정신과 기업 문화를 되새길 수 있을 것” 이라고 덧붙였다.이 밖에도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 회장 등 타계한 창업주들의 흉상도 관계사나 연수원 등지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위의 3개 그룹에 비해 ‘관심’ 은 덜한 편이다. 또,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이나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같이 창업주가 생존해 있는 기업들의 흉상 제작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잇따른 창업 1세대들의 타계와 기업정신 계승으로 ‘창업주 추억하기’는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창업주의 흉상도 그들과 함께 울고 웃을 전망이다.

# 흉상제작비는 얼마나 될까?- 최고급 자제 사용하고 전문가가 제작해 수억원 호가

흉상을 제작하는데 비용과 시간은 얼마나 들까? 위의 질문에 대해 각 기업에서는 한결같이 제작비용 공개를 꺼렸다. 그러나 미술계 관계자는 “흉상의 경우는 최소 4,000만원~5,000만원, 전신상의 경우는 최소 1억 이상의 비용이 든다” 며 “이는 일반인들의 경우다. 재벌들의 경우 미대 교수 등 전문가들을 직접 선임하고 최고급 재료를 사용해서 제작하기 때문에 최소 3억원 이상 들 것” 이라고 밝혔다.흉상 제작에 소요되는 기간은 대략 6개월 정도. 아프리카산 청동, 이탈리아산 대리석 등 최고급 자제를 들여오는데만 한 달 이상이 걸리고 ‘윗분’ 들의 요구가 까다롭기 때문에 타 작품들보다 공을 많이 들이기 때문이다. 모 대학 조각과 교수는 “기업들의 경우 자제에서부터 얼굴표정 하나하나까지 세심히 신경쓰는 편” 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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