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 ‘프레임 전쟁’ vs 黃 ‘보수 적자’ vs 金 ‘보수 대통합’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정치권 올드보이들의 기세가 무섭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바른미래당 손학규·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에 이어 자유한국당에서도 올드보이들이 전면에 나설 태세다. 현재 한국당은 김병준 비대위원장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김병준 호의 ‘약한 리더십’과 ‘혁신의 부재’로 인해 당내 시선은 벌써부터 차기 지도부를 향해 있다. 이미 당내에선 홍준표 전 대표와 김무성 의원, 황교안 전 국무총리, 김태호 전 경남지사 등 당내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당권을 향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각에선 이들의 최종 목적지를 ‘당권’이 아닌 ‘대권’으로 분석한다. 이번 전대에서 선출되는 당대표에겐 2020년 총선 공천권이 주어진다. 이들이 일단 대표로서 총선 공천권을 행사해 정치적 세력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대선 후보로 서는 ‘당권 찍고 대권’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는 관측이다.

 
   
- 드디어 날개 펴는 황교안, 여론조사서 ‘범보수 1강’… 친박계 ‘반색’
- 김무성, 정계 개편 기치로 ‘세 불리기’… 정진석과 ‘공동 전선’ 관측도

 
김병준 체제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다 되는데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답보 상태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병준 비대위’가 강력한 리더십으로 당을 장악하기보다 일단 관리형 지도부의 성격을 띠는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김병준 리더십’ 시험대,
기지개 켜는 ‘올드보이’

 
일각에선 당이 김 비대위원장에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혔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원조 친노’ 인사의 보수 정당행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의 한 인사는 “왼쪽을 보며 오른쪽으로 걸어가니 제대로 걸어질 리가 있나”고 조소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20~30%포인트나 곤두박질했는데도 반사이익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전국 유권자 2507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95% 신뢰수준, 표본오차 ±2.0%p),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55.2%로 또다시 최저치를 기록했다.
 
민주당 역시 지난 주간집계 대비 0.5%p 내린 41.4%를 기록하며 하락세를 보였다. 반면 한국당은 18.8%로 여전히 20%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김 위원장을 영입해 환골탈태를 다짐했던 한국당의 초라한 현주소다.
 
상황이 이쯤 되자 한국당 당내에선 지방선거 참패 직후 잠시 나왔던 자성의 목소리는 쑥 들어가고 오는 2019년 1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 관심이 쏠린다. 이미 당내 중량감 있는 인사들은 하나둘 당대표 출마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장 6·13 지방선거 패배 후 미국에 머무는 홍 전 대표는 ‘페이스북 정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홍 전 대표는 지난 7월 11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떠나기 전 ‘페이스북 절필’을 선언했지만 그는 미국 체류 중에도 여러 번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때부터 정치권에선 홍 대표의 정계 복귀가 조심스레 점쳐졌다.
 
그리고 지난 2일, 홍 대표의 정계 복귀는 기정사실화됐다. 홍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페이스북에 글을 쓰는 건 내 생각을 정리하고 공유하고 역사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며 “언론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내 뜻이 왜곡되는 걸 막기 위해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적었다. 7월 11일 도미하면서 ‘페이스북 절필’ 선언을 한 뒤 2개월도 채 되지 않아 페이스북 정치 재개를 공식화한 것이다.
 
그는 이어 “앞으로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다른 다양한 방법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이달 15일께 귀국한 뒤엔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 재개에 나설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홍준표가 돌아온다?
당엔 ‘득’일까 ‘독’일까
 

지선 패배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홍 전 대표가 정말로 정치 일선에 복귀할 때 당내 후폭풍은 상상 이상일 것이 자명하다. 홍 전 대표에겐 이 모든 것을 빨아들일 ‘블랙홀’이 필요한 상황이다. 홍 전 대표는 ‘프레임 전쟁’ 이슈를 들고 득의만만한 기세로 나올 것인가.
 
홍 전 대표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헌법 제119조 제1항은 경제 자유화를 천명하고 있다. 경제 자유화가 (국가 경제의) 기본 원칙”이라며 “우리는 마치 경제 민주화가 원칙인 줄 잘못 알고, 그것이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정책인 양 잘못 알고 있었다”고 적었다.
 
그는 이틀 전에도 ‘보수 우파의 프레임 개발’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정치 현실을 분석했다. 그는 “정치판은 프레임 전쟁이다. 상대방의 프레임에 갇혀 이를 해명하는 데 급급해 허우적대다 보면 이길 수 없는 전쟁이 된다”고 밝혔다.
 
홍 전 대표는 “(보수 우파가) 탄핵과 대선 때는 국정농단 프레임에 갇혀 있었고, 지방선거 때는 적폐 청산과 위장평화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며 “앞으로 총선 때는 연방제 통일 프레임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만든 프레임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저들의 프레임에 다시는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물론 아직까지 홍 전 대표의 전대 출마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귀국해 당에서 목소리를 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혁신 성과’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는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는 더욱 흔들릴 것이 자명해 보인다.
 
김 위원장과 홍 전 대표의 당 운영 방식, 스타일에 차이가 있어 우려는 더욱 크다. 홍 전 대표는 정무에 무게를 많이 싣고 김 위원장은 정책에 더 주안을 두는 모양새다. 결국 홍 전 대표의 속내엔 귀국 직후부터 비대위 체제를 흔들고, 기세를 몰아 전대에 출마하려는 의도가 관측된다.
 
하지만 홍 전 대표의 구상이 어찌 됐든, 당장은 상황이 녹록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대선을 3년 이상 앞둔 시점에서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선 오히려 보수 표심이 홍 전 대표보다 황교안 전 총리에 쏠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준표 대항마는 황교안?
여론조사서 독보적 1위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27∼31일 전국 성인 2507명(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을 상대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홍 전 대표는 황 전 총리 등에 밀려 괄목할 만한 지지율을 얻지 못했다.
 
보수층 대상 조사에선 황 전 총리가 25.9%를 기록, 1강 구도를 보였다. 이어 오세훈 전 서울시장 9.9%,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 9.2%,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8.4%, 홍 전 대표 6.9%,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6.6%, 김무성 한국당 의원 5.3% 등이었다.(8월27일~31일 487명 대상, 표본오차는 ±4.4%p)
 
한국당 지지층만 따로 떼어보면 황 전 총리의 지지율이 34.7%로 더 올라갔다. 홍 전 대표는 11.8%였고, 오 전 시장 10.6%, 김 전 지사 7.6%, 유 전 대표 5.5% 등이었다.(506명, ±4.4%p)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지지층을 합쳐 봐도 마찬가지다. 황 전 총리 28.6, 유 전 대표 10.8%, 홍 전 대표 9.8%, 오 전 시장 9.1%, 안 전 대표 9.0% 순이다.(674명, ±3.8%p) 어떻게 따져봐도 현재로선 홍 전 대표의 지지율이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기사에 언급된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에 가장 반색하고 나선 쪽은 당연히 친박계다. 홍 전 대표가 2020년 공천권을 거머쥘 시 친박계는 또다시 저울대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처지에 놓일 공산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거의 유일한 친박계 당권주자인 황 전 총리의 괄목할 만한 지지율이 친박계에겐 한 줄기 빛과 다름없다.
 
이 같은 친박계의 마음을 헤아린 것인지 때마침 황 전 총리도 정치적 기지개를 켜며 존재감 부각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는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저서인 ‘황교안의 답’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정치권에서 출판기념회는 선거자금을 확보하는 유용한 수단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편 홍 전 대표와 황 전 총리 외에도 비박계 수장인 김무성 의원 역시 당에서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현재 측근 등을 통해서는 차기 당권에 대한 뜻이 없다고 하면서도 연달아 세미나를 통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미 당내에는 김용태 사무총장과 홍철호 비서실장, 김세연 중앙연수원 등 김 의원의 측근 그룹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다수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 김 의원의 당권 도전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홍 전 대표가 당권 쟁탈을 위해 ‘프레임 전쟁’을 꺼내 들었다면 김 의원은 ‘공화주의’를 기치로 한 ‘보수대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달 23일 ‘벼랑 끝에 몰리는 자영업자·서민과 서민금융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어 정부 경제 정책을 세게 질타한 데 이어 27일에는 ‘길 잃은 보수정치, 공화주의에 주목한다’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공화주의’ 꺼내 든 김무성,
‘복당파+잔류 비박계’ 세 확장

 
김 의원이 꺼내 든 ‘공화주의’는 ‘정계개편’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과거 구 바른정당 소속 당시 “공화주의 철학에 기초한 보수 혁명을 해야 희망을 만들 수 있다”고 ‘공화주의’를 늘 강조해 왔던 만큼 결국 바른정당 출신 복당파인 김 의원이 ‘공화주의’를 매개로 보수대통합을 위한 정계 개편 구상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달 20일 복당파 출신인 김성태 원내대표가 “보수 진영의 임시 분할 체제를 끝내고 통합 보수 야당 건설을 위한 재창당 수준의 리모델링을 심각하게 고려하겠다”고 역설한 데 이어 28일 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나온 홍문표 의원의 “한 발짝 양보하면서 대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서 그 일을 해내는 것이 우리가 문재인 정부의 독주를 막는 길이 아닌가”란 발언에 비춰 봐도 비박계의 정계개편 추진 의사는 여전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지난 6월 의총에서 김 의원 본인 역시 “보수 통합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천명했던 바 있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결국 김 의원이 ‘공화주의’를 꺼내 든 데는 정계개편을 구심점으로 복당파에 비박계까지 끌어들여 세를 불린 후 전대에서 당권을 차지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환으로 일각에선 김 의원과 정진석 의원의 ‘공동전선’ 구축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 의원은 지난 4일부터 토론 모임인 ‘열린토론, 미래’ 활동을 재개했는데 정 의원은 해당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매주 1회 이상 꾸준히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정 의원 역시 당권 주자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 의원은 지방선거 전부터 홍 전 대표에게 쓴소리를 내왔다. 정 의원은 일찌감치 ‘잔류파’로 일컬어지는 옛 친박(親박근혜)계의 차기 당권주자로 인식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황 전 총리가 실제로 출마하고, 여기에 홍 전 대표까지 가세하는 구도가 된다면 김무성 의원과 정진석 의원의 ‘공동전선’ 가능성이 커지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세미나에는 김용태, 홍철호, 홍일표, 권성동, 김영우 등 복당파 출신 외에도 과거 친박계로 꼽혔던 이만희, 최교일, 추경호 등을 비롯해 잔류 비박계인 나경원 의원에 이르기까지 계파를 가리지 않고 모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살생부’에 거명됐던 의원들을 중심으로 인적 청산을 추진하지 않을 만한 인사를 당대표로 세우기 위해 계파를 떠나 모이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밖에도 김태호 전 경남지사 역시 향후 진행될 전당대회가 보수통합을 위한 장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물밑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김 전 지사는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비록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패했지만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전 지사는 최근 도지사 선거를 도왔던 인사들과 원로들을 만나며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처럼 당내 굵직한 인사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당권 경쟁의 서막을 알리자 일각에선 결국 당권 경쟁은 대권 전초전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단 대표로서 2020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해 정치적 세력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대선 후보로 다시 서는 ‘큰 그림’이다.

김병준 비대위원장 역시 한국당의 대선 깜짝 카드로 주목되고 있다. 물론 김 의원장이 이에 대해 “너무 높이 평가한 것”이라며 부인했지만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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