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법원의 대법정 입구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저울은 공명정대함을, 왼손에 들고 있는 법전은 엄격한 법 집행을 상징한다. 언필칭 판사를 국민을 보호할 ‘최후의 보루’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판사는 힘없는 국민들에게 한없는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랬던 판사들이 최근 들어 그 위상이 땅에 떨어져 판사가 아닌 ‘판새(판사새X)’라는 비속어로 비아냥댐을 들어야 하는 지경까지 돼 버렸다. 
이 같은 비아냥거림은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45)가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해 특검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뒤 절정에 달했다. 
그를 비판하는 국민들은 박 판사가 올 3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바로 발부한 사실을 들이댔다. ‘이중잣대’가 아니냐는 것이다. 박 판사는 김경수 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유로 공모 범행 가담 정도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 증거인멸 가능성이 부족한 점, 피의자의 주거, 직업 등을 종합하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러자 국민들은 박 판사가 이 전 대통령 구속영장 심사 때는 검찰이 적용한 혐의와 관련해 다툼의 여지가 없고,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어 영장을 발부했느냐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살아있는 권력은 무죄(生權無罪), 죽은 권력은 유죄(死權有罪)’라는 주장이다. 
또한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하루아침에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에게 집행유예 선고를 내린 판사는 ‘국민적 공분’의 대상으로 낙인찍히고, 비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여성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확산되는 사태를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  
판사들 입에서 “판사 노릇하기 정말 힘들다”라는 탄식이 나올만하다.
그러나 그 같은 푸념을 하기 전에 판사들은 먼저 자신들을 되돌아봐야 한다. 목적에 맞춰 법의 의미를 축소 또는 과장한 일은 없었는지, 궤변으로 법을 왜곡하지는 않았는지, 동일한 사안에 ‘이중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았는지를 말이다. 이런 것들에서 자유로운 판사에게 ‘판새’라며 비아냥댈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한때 ‘튀는 판결’로 세간의 화제가 된 판사가 있었다. 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성매매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또 예비군 훈련에 불참해 벌금 100만 원을 구형받은 피고인에게는 오히려 4개월의 징역형을 내리고, 억대 내기골프를 한 기업인들에게 도박 무죄 선고를 내렸다.
그런 판결을 한 이유에 대해 “내 판결이 튀었다면 항소심에서 많이 뒤집혔을 텐데 상급심에서 변경된 것은 10% 안쪽이다. 판사가 연구와 고민을 거듭하다 내린 결론에 대해 튀는 게 두려워서 소신을 접어버리는 것이 옳다고 보느냐”고 당당하게 말했다. 
‘국민정서는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법리만 따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사법부는 법을 적용하는 곳이다. 다수결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법이 정서에 어긋난다면 법을 고쳐야 옳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 ‘정의의 여신상’에는 두건으로 두 눈이 가려져 있다. 학연, 지연, 혈연 등 그 어떤 유혹에도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의의 여신상’은 두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눈을 부릅뜨고 정확히 판결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